아르고(2012 / 벤 애플렉)
얼마 전까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다양한 위기를 극복해가는 영웅 또는 히어로 무비들이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슈퍼맨, 아이언맨 등 다양한 히어로 중 당신은 어떤 히어로를 가장 좋아하는가? 나는 스파이더맨을 가장 좋아한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시민인 피터가 히어로가 되어 큰 힘을 얻지만, 가난하고 힘든 삶도 동시에 열심히 살아내는 모습이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명언 또한 나의 마음에 닿았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내는 현실에는 이런 히어로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지루할 일상 혹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히어로가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실제로 히어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우습겠지만, 그럼에도 악당들을 판사나 검사 대신 응징해주었으면 좋겠다. 특히 형량 적게 받는 악당들을. 특히 이겨낼 수 없는 위기들을 극복하고 해결해가는 히어로들의 모습이 너무나 멋있고, 갖은 위기에도 악인들을 벌하는 통쾌함이 우리의 속을 시원하게 해 준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그들에게 종종 투영한다. 우리의 삶이 그리 정의롭지 않고 불합리함이 가득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히어로들을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은 힘들고 어렵고 정의롭지 못한 비루한 세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며 이러한 세상을 바꿔보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 속에는 히어로처럼 큰 힘은 없지만,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마 그들이 히어로에 가까운 존재들이 아닐까.
미국 영화계에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엄친아가 한 명 있다. 누굴까?. 한번 누군지 맞춰보자. 한 명을 떠올려보시라! 떠올렸는가?
자, 정답은. 바로 맷 데이먼이다. 물론 글쓴이의 생각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맷 데이먼을 생각하는 이유를 이야기하자면, 맷 데이먼은 하버드 영문학과를 다녔던 수재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녀를 보내고 싶은 워너비 학교를 다녔던 공부를 매우 잘했던 학생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는 저명한 사회학자인 하워드 진* 교류하기도 했다.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 혹은 사회학적인 지식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연기자로서의 평판도 매우 훌륭하여, 연기를 잘하는 믿고 보는 흥행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미국의 여느 영화인들처럼 정치적인 참여나 발언도 활발하게 하는 편이며, 미국인이지만 미국의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치뿐 아니라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개발도상국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것과 깨끗한 위생시설을 돕는 water.org의 공동 창설자이기도 하다. 뿐 만 아니라 총 37개의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대외적인 활동만큼이나 사생활도 깨끗한 개념 충만한 멋진 엄친아이다. 이 정도로는 대표 엄친아가 되기에 아직 부족한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이 엄친아가 27살에 절친과 함께 그 유명한,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말하고 있는 <굿 윌 헌팅>의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굿 윌 헌팅>에서의 연기만으로도 부족해, 각본을 썼다니. 이 정도면 이제 그만 엄친아로 인정하자! 아.. 근데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맷 데이먼이 아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렇게 누구나 인정하는 엄친아 또는 히어로 곁에 조금은 혹은 많이 부족한 절친이 한 명 있다. 이번에도 누군지 맞춰보시라. 누구나 다 예상을 하셨겠지만 엄친아 멧 데이먼의 절친은 바로 벤 애플렉이다. 그 둘은 10살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지금까지 할리우드 대표 절친이기도 하다. 그리고 멧 데이먼과 영화 <굿 윌 헌팅> 시나리오를 함께 작성한 공동저자이다. 하지만 이렇게 히어로에 가까운 삶을 살아내는 멧 데이먼과는 달리 벤 애플렉은 여러 구설수가 있는 약점이 많은 인간이기도 하다.
그의 연기는 맷 데이먼과 달리 부침이 있어, 때로는 혹평을 받기도 한다. 성추행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고, 이혼으로 인해 알코올 중독에 빠져 허우적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심기일전하여 <할리우드 랜드>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영화 <나를 찾아줘>로 꾸준한 연기를 보여주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또한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에서 엄청난 연기로 배트맨을 소화하였다.** 또 하나의 재능이 있다면 그가 감독과 각본가로서는 굉장한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첫 감독으로 그가 만든 영화 <가라, 아이야, 가라>는 미국 아동보호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고 여러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수상한 이래로 이후 영화 또한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요약하면 그는 맷 데이먼과 달리 그의 연기는 부침 있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성추행까지 한 불완전한 개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너지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는 멧 데이먼처럼 평소 생각하고 추구하는 가치 혹은 방향성들을 영화로 표현하기도 하는 모습이 마치 이런 멋진 이야기들은 구설수가 없고, 도덕적으로도 완벽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영역에서 사람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우리의 눈에 그는 멧 데이먼처럼 마치 연예인으로 보이기보다는 나약한 인간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그가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아르고>는 그의 실제 삶과 매우 흡사하다.
*영화 <굿 윌 헌팅>의 선생님의 모델이기도 하다
**전반적인 내용은 나무 위키를 참조하였다.
***배대슈는 전반적으로 혹평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영상을 보며 웃고 있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뒤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벤 애플렉을 보고 'sad affleck' 등 SNS에 각종 밈을 양산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가 각본으로 참여한 <굿 윌 헌팅>의 명대사를 활용해 '당신 탓이 아니에요, 벤'이라는 해쉬태그가 유행했다.
****벤 애플렉을 옹호하고자 글을 쓰는 것은 아니나, 전반적 내용이 오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 글을 명시한다. 잘못한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다.
영화로 대표되는 창작물에는 그 안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창작물을 즐기는 대중들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소재와 스토리텔링에 매료되기도 하고, 흔히들 ‘반전’이라는 창작물의 결말과 끝맺음을 두근거리며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과 내용이 누구나 알고 있는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감독의 영화적 고민이 시작된다.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감동을 선물하기란 여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화를 다룬 작품은 주인공의 성공기 또는 감동적인 코드의 장르로 특성화되어 있기도 하다. 만약 영화가 스릴러 장르라면 스릴러의 특성상 드라마에서 오는 긴장감들을 차곡차곡 쌓은 후 결말에서 '빵'하고 터뜨려하는데, 결말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온전히 전달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렇기에 <아르고>라는 영화는 감독에게 있어 매우 어려운 도전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감독으로서 엄청난 실력이 요구되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비해 벤 애플렉은 영화를 겨우 두 편 정도 만든 감독이다. 그는 과연 잘 연출할 수 있을까? 벤 애플렉은 <gone baby gone>과 <타운> 두 작품을 연출했으며 물론 감독으로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첫 연출작인 <gone baby gone>은 미국의 아동 보호의 문제점과 사회의 모순에 대한 비판을 영화에 잘 담아내 평론의 대호평을 받았다. 그에 비해 <타운>은 전작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 평론가에게 연기만 집중할 것을 주문받기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두 영화는 보스턴이라는 배경을 중심으로 진행된 영화로 그가 자라고 생활했던 곳이기에 아무래도 영화를 만드는데 이점으로 작용했을 터이다. 영화 <아르고>는 이런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1951년 이란의 모사데크 수상은 국왕의 외국 석유 이권 보호에 불만을 갖고 미국과 유럽이 차지하고 있던 석유 산업을 국유화시켰다. 이에 미국은 모사테크를 몰아내고자 팔레비 국왕의 쿠데타를 도왔고 팔레비 국왕은 1953년 모사테크를 제거한 후 군과 치안경찰을 강화하여 독재 기구를 확립하였다. 팔레비 국왕은 점심을 파리에서 공수할 정도로 사치를 일삼았으며, 시민들을 독재로 억압하였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삶이 궁핍해졌으며 빈민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여있었다.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차올랐고, 특히 미국이 쿠데타를 도운 것과 1971년 1월 미국이 친미 독재정치를 펼친 팔레비 이란 국왕의 망명을 허락한 사건으로 인해 반미감정은 크게 확산되었다. 결국 이것이 불씨가 되어 미국을 향한 이란 시민의 시위가 거세게 시작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1979년 테헤란에 있는 미 대사관이 성난 시위대에게 점령당하자 6명의 미국인 직원들은 주요 자료들을 파기하고, 캐나다 대사 관저로 은밀히 피신한다. 미국에서는 대사관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CIA 요원 토니 멘데스가 투입된다. 토니는 관료들과 함께 머리를 마주하고 방법을 강구하지만 구출 확률이 매우 희박한 상황에 직면한다. 토니는 집으로 와 잠시 머리를 식히던 중, 아들이 TV에서 보고 있던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에 영감을 얻고, 관료들에게 이 작전이 가장 성공확률이 높다며 그들을 설득시킨다. 그가 세운 계획은 바로 <혹성탈출> 영화를 촬영하듯이 팀을 만들어 이란에 잠입한 후 대사관 직원들을 빼내 오는 기상천외한 작전이었다. 결국 회의 끝에 작전은 통과되고 그는 SF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를 세웠으며, <아르고>라는 제목의 영화를 론칭한다. 토니는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협력해 가짜 시나리오를 만들고, 배우를 캐스팅해 대사를 낭독하는 기자 회견까지 여는 치밀함으로 전 세계를 감쪽같이 속인 후, 그는 로케이션 장소 헌팅이라는 명목으로 테헤란에 잠입하여 탈출을 도모한다는 것이 영화 <아르고>의 내용이다.
테헤란의 성난 시위대는 대사관에 침입한 후 미국인들을 포로로 잡았으며, 미국인들과 친했다는 이유로 이란인인 동족마저 처형하기도 한다. 순식간에 폭도로 변한 시위대와 이란의 상황이 미국의 국민들에게 알려지자 미국인들은 분노하고 정의를 내세우기 시작한다. 보통의 미국 영화들은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성난 시위대를 아슬하게 피해 캐나다 대사관에 있는 미국인들을 구출할 것에 성공할 것이며, 이란 시위대에게 명분을 주지 않고 그들을 폭도로 묘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즉 미국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영화로 빠지기 쉽다. 하지만 놀랍게도 벤 애플렉은 기존의 허리우드 영화처럼 미국 우월주의라는 결로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을 정의롭게 표현하지 않고, 미국이 저지른 잘못 등에 대해 여과 없이 표현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영화 극 중 이란 여성이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국은 인권을 보호한다고 하면서, 정작 인권을 유린한 것은 미국이다.’
이 워딩은 단순히 극 중 이란인의 입장에서 이야기 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의 의지이자 생각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다. 또한 미국의 뉴스 매체를 통해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우월주의를 역설적으로 비판한다. 뉴스에서 미국 시민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대사관을 진입하는 상황을 말하며) 두어 명을 쏴버렸으면 진입을 막았을 것이다’라고 인터뷰를 했으며,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라고 자신을 표현하며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다시 군대에 입대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등 미국 국민의 편협적인 사고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더군다나 지난 미국 역사상 베트남 전쟁뿐 아니라 영화에 직접적인 배경이 되는 쿠데타, 독재자의 망명 등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이 영화는 곧 미국의 우월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영화는 그치지 않고 정치적인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제3세계 국가들을 얻기 위해서 망명을 받아줘야 한다.’라는 표현을 통해 독재를 일삼는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세력은 대부분 친미이며, 그들에게 이익을 얻기 위해서 미국은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의 액션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표현한다. 미국은 암암리에 부정의한 방법으로 세계의 패권을 휘두르고 경제적 이익을 얻어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겉으로는 국제적 정의와 평화를 말하지만 무기를 수출하고 군사를 파견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등 앞과 뒤가 다른 두 얼굴의 미국을 적나라하게 영화는 표현한다. 이는 국제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매우 비난을 받을 만한 사실임이 틀림없다.
영화는 물론 미국만의 잘못을 이야기하고 있지만은 않다. 이란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찬가지로 날카롭다. 민족주의적 세계관이 성난 군중을 지배할 때, 민중들의 잘못된 시민의식으로 인한 비극의 결과를 여과 없이 표현한다. 이란은 극에 달한 반미감정으로 미국인과의 친분을 가진 동족들을 처형하기도 하고, 실제로 크레인에 사람을 매달아 전시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들은 미국이 인권을 유린했다고 말하면서 포로인 미국인들을 총으로 사형시키는 척하는 등의 고문을 자행하는 장면을 영화는 교차로 편집하여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영화는 성난 이란 군중들의 잔인한 면을 부각함으로써, 미국뿐만 아니라 이란 역시 인권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지 않음을 말한다. 잠깐의 장면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성난 이란 군중들이 미국인 자체를 몰아내기 위해 무서운 일들을 자행하지만 정작 이란 사람들은 미국의 회사인 ‘KFC’에서 식사를 즐기는 장면이다. 영화는 이 식사 장면을 스쳐 지나가듯 무심히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완전한 모순을 통해 민족주의에 눈이 먼 사람들의 분노가 결국 냄비 근성에 기인한 분노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영화의 큰 축인 미국과 이란. 서로가 인권을 유린하였다며 비판하고 분노한다. 미국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재를 지원하고 시민들을 유린하였으며, 피해자였던 이란 또한 결국 분노로 인해 정의를 또는 인권을 평화적으로 관철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무런 의미 없는 이 탈주극은 그저 하나의 잘 만들어진 허리우드 액션으로 끝나는 것인가.
영화의 주인공인 토니 멘데스는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이란의 테헤란으로 잠입한다. 그는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분장시켜 영화 로케이션을 진행하는 등 탈출을 위한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한다. 그러나 억류된 직원들은 이미 희망에 물들어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작전을 취소하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토니에게 통보한다. 미국은 델타포스를 이란에 투입해 억류된 인질들을 구출한다는 작전으로 변경하고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한편 이란의 군인들은 대사관의 파기된 문서를 다시 복기하던 중 대사관 직원들의 사진을 발견하고 파기된 사진을 퍼즐을 맞추듯 작업을 진행한다. 일촉즉발의 상황. 미국로부터 작전이 취소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밤새 고민하며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던 토니. 그는 이미 취소를 결정한 미국 정부의 부당함을 떠나 정부의 결정을 핑계로 그저 안전하게 귀국 해 자신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작전을 실행하기로 결심하고 정부에 일방적으로 작전 실행을 통보하며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다. 또한 작전이 취소되었다며 테헤란에서 작전을 실행하는 토니를 도우려고 꾸며놓은 영화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인원들에게 철수할 것을 정부가 명령한다. 그러나 토니 멘데스와 함께 하기로 한 감독 레스터 시겔과 존 챔버스는 미국 정부의 철수 명령을 어기고 사무실을 마지막까지 지킨다. 결국 억류된 직원들과 원래 작전대로 영화사 직원으로 변장해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려는 토니와 일행들을 의심하는 군인들의 전화를 받아 그들의 신원을 확인해줌으로써 그들의 탈출을 극적으로 돕는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캐나다 대사관저에서 근무하고 있던 가정부 이란인에게 이상한 소문을 들은 동족들이 찾아와 미국인들의 행방을 묻지만,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거짓말을 하여 억류된 미국인들의 생명을 살린다. 이후 캐나다 대사와 가정부 또한 안전하게 이란을 탈출한다. 토니와 억류된 미국인들의 탈출은 그들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의가 쌓여 결국 성공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을 통해서 영화가 이야기하는 정의와 인권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남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애통해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이 행동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행동들이 모여 인권과 정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벤 애플렉은 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영화의 주인공 토니 멘데스는 억류된 미국인을 탈출시킨 위대한 영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직업적인 문제가 있었겠지만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가족과 별거하였으며, 이로 인해 토니는 술에 기대며 아내와 아들을 그리워하는 삶을 살아간다. 벤 애플렉이 연기한 토니 멘데스는 어쩌면 벤 애플렉의 삶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완벽하고 순백처럼 깨끗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위해 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선택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수투성이에 성추행이라는 잘못을 저지른 벤 애플렉은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히어로나 멧 데이먼보다 마음이 쓰인다. 그 이유는 아마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 그에게 투영되는 이유일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때로는 실수도 하고 때로는 남에게 상처도 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전하는 일을 하는 것. 히어로처럼 완벽하고 멋있지는 않지만 애쓰는 듯한 그의 모습이 더욱 사람답게 그려진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많을수록, 어제의 나의 이익보다 오늘의 남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내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정의와 평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이 작품 아르고를 통해 골든글로브를 비롯하여 여러 감독상을 휩쓸었지만, 애플렉의 수상이 당연하다시피 여겨졌던 아카데미상 감독상에는 후보조차 지명되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 미국을 비판한 그는 결국 미국에서 주는 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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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추행 이후 단 한 줄로 사과문을 올렸다. 진정 그가 반성했는지, 따로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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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이 발매되었다. 2017년 개봉했던 영화이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을 거쳐 스나이더 감독이 재완성 한 감독판 영화이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다른 블로그나 브런치를 찾아보시라)
여하튼 매우 놀라운 사실은 벤 애플렉이 위와 비슷한 결을 가진 배트맨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배트맨은 여러 오해와 실수로 결국 슈퍼맨을 죽게 만든다. 이런 자신의 실수를 회피하지 않고 뉘우치며, 외계의 침략에 지구를 지키기 위한 동료들을 묵묵히 모은다. 여러 히어로들에게 거절당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애쓴다. 결국 큰 위기를 맞은 지구는 배트맨으로 인해 히어로들이 함께 하나가 될 수 있었고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한다. 영화에서의 늙고 지친 배트맨이 마치 벤 애플렉과 맞아떨어져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다. 영화는 장장 4시간이나 영화 내 파트가 나누어져 있어 중간중간 끊어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