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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교육

부모로서 난 어떤 걸 가르치고 싶은 것인가

by 팬지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독일이 한국과 가장 다른 것은 다양한 인종과 민족과 종교를 접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첫째아이 유치원에는 아랍 문화권, 아프리카 문화권, 동유럽 문화권 등 많은 곳에 뿌리를 둔 친구들이 모여 있다. 동아시아권은 아직 우리 아이 하나이지만...

한 번은 첫째 아이가 집에 와서 "범수 얼굴은 노란색"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 살던 나는 이게 무슨 인종차별적 발언 아닌가 하는 무지에서 나오는 의문을 품었다. 누군가 범수한테 피부가 노랗다고 놀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다음날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아, 유치원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너는 노란색 나는 하얀색 그리고 저 친구는 까만색. 하지만 우린 모두 같은 사람이고 친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다양한 인종이 사는 국가에서 자라지 않다 보니 잘 모른다고 답했더니 본인이 흑인이고 그렇다 보니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혹시 책 같은 거 추천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래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는데, 이래저래 선생님도 정신없고 나도 바빠서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도서관을 다녀왔다. 사실 ChatGPT 같은 AI 발달로 난 오래 전부터 꿈꿨던 1인 출판을 계획 중이다. 첫 도서로 독일 아동도서를 해보고 싶은데, 주제가 뭐가 좋을까 하다가 한국에서는 잘 배울 수 없는 다양성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 한국에도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으니 이런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으로 몇 가지 아동 도서를 목록으로 뽑아 도서관에 가서 찾아보았다. 대부분 인종이나 가족 형태에 다한 얘기였는데 그중에는 성소수자 이야기도 섞여 있었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는 "Raffi und sein pinkes Tutu"라는 제목의 책이 인상 깊었다. 내용도 좋고 메시지도 명확하다. 내용을 읽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친구한테 보여줬는데 한국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뒤에 성소수자 가족이 나오는데 그것 때문이라고 한다. 애들한테 그걸 가르쳐 주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다고 한다. 문득 예전에 터키에서 독일로 온 2세 출신인 이웃 파티와 나는 대화가 생각났다. 학교에서 대체 그런 걸 왜 가르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했다. 애들이 그런 게 있다는 걸 접하는 것도 싫다고 애들은 다 따라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따라하면 어떡하냐고 하면서 무척 흥분을 했다. 나는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가면서도 보수적이면 그렇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친구가 한국인의 99.9%가 같은 생각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런 일을 겪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실 독일에 와서 그런 부분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으면서도 많이 배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생각들이 이해가 안 되진 않으면서도 그 태도 자체가 다양성과 포용성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성과 포용성이란 무엇인가. 모든 개개인이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그게 어떤 점이든 사회의 법률이나 윤리에 위배되지 않는 한 말이다. 물론 성소수자에 대한 법률과 윤리적 기준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가 있다. 사회적, 시대적 분위기라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망 아래에 모든 나라가 소통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 각자 나라에 대해서도 다름을 인정해야 할 만큼 다양성과 포용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어렸을 때 접해 따라할까 봐 정말 우리 아이가 게이가 될까 봐, 트랜스젠더가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도 알겠지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만 1살만 지나도 아이들은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한다. 아이가 이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정체성을 찾았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사람은 타고난 것이 90프로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 아들은 자기가 타고난 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10프로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교육과 놀이 모두를 아우르는 경험은 불과 10프로인 것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나는 똑같은 가르침을 주는데도 두 아이의 반응은 다르다. 똑같은 놀이를 해도 각자의 방식이 있다. 그럼에도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경험을 기반으로 선택지가 정해진다. 많은 경험을 할수록 선택지는 넓어진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서로를 탐하는 선택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경험으로 다른 세계를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른 선택지를 알게 된다. 전자를 택할 수도 경험으로 알게 된 후자를 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이를 선택하는 데에도 고유의 기질이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후천적으로는 선택지만 더 주는 것이지 다들 타고난 기질대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모로서 경험과 훈련을 통해 사회화에는 힘을 쏟되, 모든 걸 다 해주려는 과욕은 부리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오직 올바른 사회화만이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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