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일에서는 모두가 개근거지

방학 외에는 학교를 빠질 수 없다

by 팬지

얼마 전에 듣고 충격을 받은 단어가 있다. 학교를 결석하지 않고 말그대로 개근하면 돈이 없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라는 의미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개근거지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 때는 아파도 학교 가서 아프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학교를 꼬박꼬박 나가며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큰 칭찬거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개근하면 거지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공교육이 권위와 의미를 잃어가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독일에서는 다르다. 아직 학교를 안 보내봐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주변에 아이를 그룬드슐레(4학년까지 있는 초등학교)를 보낸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연휴 전날 아프다고 학교에 거짓말을 하고 공항에서 비행기릉 타다가 발각되면 벌금까지 문다고 한다. 방학 때 외에는 해외여행을 갈 수 없다.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오는 일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교육도 상당히 엄격하다고 한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학교에는 학생용 감옥이 있다고 한다. 시간 내에 필통에 연필과 펜을 다 끼우지 못하는 등의 규칙과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20분 길게는 40분 동안도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필통도 안전 우선을 위해 그냥 주머니식이 아닌 펜 자루 하나하나를 다 꽂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필통을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수업도 1,2교시 합쳐 90분 가량을 아이들이 한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고 3,4교시 시작 전에 놀이터에 애들을 풀어 놀게 하고 또 3,4교시 합쳐 90분 가량을 수업한다고 한다. 어른도 90분 앉아 수업 들으라고 하면 엉덩이가 들썩일 텐데, 불과 만 6~10세 아이들에게 그런 수업 환경을 제공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 학교를 보내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 우리 아이는 매일 감옥에 갈 것 같다. 적응을 잘 못하면 난 매일 학교로 불려갈 것이고 아이를 데리고 집에 그냥 와야 하는 상황도 생길지 모른다. 결국 1년 늦게 학교를 들어가는 게 그래도 안정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첫째 아이가 얼마 전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해서 알아보니 뉘른베르크 출발행 비행기는 런던이 가장 저렴했다. 런던을 다녀와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어차피 초등학생이 되면 마음대로 여행도 못 간다. 프리랜서라는 내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여행도 결국 남들 갈 때 가야 한다. 그럼 학교 들아가기 전에 많이 가야 할까? 그것도 엄두가 안 난다. 아직 둘째가 만 2살이다. 자신이 없다. 돈을 들여 다녀왔는데 그 값어치릉 못할 것 같다. 물론 내가 차고 넘치게 번다면 고통을 무릅쓰고 다녀오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것도 아니고 최대한 아껴야지 집을 사든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다. 이렇게 미루다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 독일에 온 것도 있는데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못 가다니, 억울한데 그냥 다녀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서 무리해서 간 적도 있다. 애가 하나였을 때까지는...

그런데 둘이 되니 한 명의 사정이 더 생겨났다. 우린 이제 네 식구다. 넷의 욕망과 욕구가 끝없이 충돌한다. 최근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고 뭐고 지금 우리의 일상을 누리고 지켜가면서 건강도 챙기고 마음도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닐까? 사실은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는 배움보다는 지리하게 반복되는 이 꾸준한 일상에서 만나는 배움이 인생의 진짜 배움 아닐까?


이렇게 우리는 아직 학교도 안 들어갔지만 벌써부터 개근거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