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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조언을 들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사람은 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념을 만든다

by 팬지

어제는 차로 20분 거리에 사는 한국인 친구 집에 다녀왔다. 근 한 달간 너무 힘들고 바빠서 쌓였던 마음 속 응어리나 정신적 피로감을 수다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힘든 시간을 보낸 이유를 시간적으로 쭉 읊자면, 올해 첫 가족 캠핑 이후에 내가 아파서 한 2주간 앓아 누웠고 지난주에는 남편이 큰 작업이 있어서 일상 회복을 하지 못하고 또 우리 둘 다 너무 힘든 한 주를 보냈다. 한 명이 아프거나 일이 많으면 나머지 집안일과 육아는 모두 한 사람 몫이 된다. 이것이 아이 둘을 돌보며 가장 어려운 점이다. 게다가 지난주 주말에는 첫째 아이의 수영 수업이 시작되었다. 피곤한 남편을 집에 혼자 두고 나는 둘째까지 데려가는 강행군을 택했다. 첫째는 물속에 얼굴을 담그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자꾸 나오려고 하고 둘째는 겁도 없이 자꾸 들어가려고 했다. 지옥 같은 40분이었다. 이후에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에 아이 둘을 풀어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쉽지 않았던 주말이었다.

친구 집에 빈 손으로 가기 조금 망설여졌던 나는 Lidl 슈퍼마켓에 들러 빵 조금과 쿠키 조금을 사서 신 나는 마음으로 친구 집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어제 본 것처럼 반겨주는 친구의 목소리에 조금은 지친 마음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또 늘 그렇듯 맛있는 커피를 내려 주었다. 내가 사온 빵과 달다구리들이랑 곁들여 마시면서 우리는 그동안 있었던 육아 이야기, 가족 이야기로 회포를 풀었다. 한참 또 얘기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이웃에 한국인 언니가 살고 있는데 오늘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단다. 같이 가 볼 거냐고 물어서 조금 망설였다. 왜냐면 내가 친구 집에만 오면 집에 돌아가지를 못하는데, 오늘은 꼭 한두 시간만 있다가 집에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근데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러 가자고 하니까 난 궁금해서 못 참는다. 오늘 일은 잠시 접어 두자.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 그 언니 집으로 향했다. 사실 지난번에 친구를 통해 언니가 만든 김치를 맛본 적이 있는데, 진짜 해외에서 먹은 김치 중에 제일 맛있었다. 달면서 매우면서 시니까 볶음김치인 것 같기도 하고 정말 내 취향 김치였다. 보자마자 김치 너무 잘 먹었다 인사하면서 거기서도 수다보따리를 풀었다. 김치볶음밥에 연어구이를 곁들여 먹었다. 독일에서 이런 귀한 김치볶음밥 같은 음식을 먹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물론 커피랑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는 불렀지만 역시 한국 음식은 배불러도 들어간다.

그 언니의 아들은 만 8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친구 아들은 만 7살, 초등학교 1학년,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만 4살, 2살로 가장 어리다. 먼저 경험한 육아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서 참고가 많이 됐다. 하지만 얘기를 들으면서 자꾸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우리가 주로 동의했던 얘기가 아빠들이 애들을 너무 윽박질러서 엄마가 자기도 모르게 애들을 아빠로부터 보호하려고 한다는 그런 주제였는데, 나랑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친구랑 언니는 애들이 기죽지 않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는데, 그래서 그 언니는 아이에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엄마가 너를 위해서 매일 매일 더 노력하겠다는 약속은 할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부분에서 좀 의아했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아이한테 저렇게까지 말해야 하는 걸까? 물론, 그 아이의 기질과 그런 것들을 나는 모르기 때문에 엄마인 언니가 제일 잘 알고 아이에게 가장 좋을 것 같은 말과 행동을 선택하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뭔가 의아하면서 풀리지 않은 의문을 품고 그럼에도 좋은 정보와 우리 가족에게 좋을 수 있는 조언을 많이 들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나는 둘째를 하원시키기 위해 그 자리를 나왔다.

가는 내내 또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센 성격의 언니 밑에 태어난 둘째로 매일 내 주체적인 생각을 잘 말하지 못하고 자랐는데, 원가족과도 헤어지고 남편이랑도 수없이 부딪치면서 내 중심이 생긴 것 같다. 누군가가 내 의견과는 다른 자신의 의견을 얘기해도 그게 마치 사실인양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나 헷갈리지 않는다. 다만,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집에 와서 남편이랑 얘기하다 또 깨달았다. 그 언니와 내 친구는 아이가 한 명밖에 없고 나는 아이가 둘이다. 나는 둘을 키우면서 또 하나 있을 때와는 다른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 가장 큰 깨달음은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기질을 타고 나며, 그게 일생을 좌우한다는 생각이다. 부모는 같은데 애들은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산다. 물론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부모라는 사람들이 고작 그 아이의 인생에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의 사회라는 곳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아주는 일밖에 없다. 그것도 그 아이들의 기질에 맞추어 안내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육아는 어려운 것이다. 아이를 잘 파악한다고 해도 내 계획대로 내 욕망대로 내 신념대로 애들은 움직여 줄까 말까 한 것이다. 그냥 아이들은 자기의 기질에 맞는 길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의 안내는 참고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뭐 많이 못해줬다고, 내가 뭔가 잘못했다고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면 좋을 테지만 그것도 그 아이 스스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줄 뿐인 것이다. 부모가 많은 것을, 아니 심지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만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능력치를 자연의 섭리를 초과할 만큼 높게 잡는 그런 오만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특히 성취욕이 높은 한국 사람들은 이런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난 이러한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첫째와 둘째가 너무 성격도 성향도 달라서이기 때문에 더 빨리 깨달은 것 같다. 아이들은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정답은 아니지만 좋은 방향을 가르쳐야 할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가르침도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는 요즘이다.

친구와 그 언니와의 대화를 곱씹어 보니 그저 아이가 하나고 아이가 둘인 엄마의 경험이 다르다는 점에서 온 견해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아이가 없는 친구보다는 있는 친구와, 한 명인 친구보다는 둘인 친구와, 아이들이 나이 차이 나는 집보다는 또래 아이를 갖고 있는 친구와 말이 더 잘 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의 경험이 다른 사람보다는 비슷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저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다양한 경험을 지닌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또 내가 겪고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맞는 해답을 알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은 또 사회활동도 삶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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