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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이팔 Jul 14. 2021

스터디카페에서 다리 떨면 생기는 일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선 일정이 취소되어 다음 약속 시각까지 3시간 정도 남은 적이 있었다. 집에 가서 쉬다 나오기엔 집이 너무 멀었고, 그냥 카페 가서 쉬기엔 이번 주 밀린 일들이 데드라인 종을 울렸다. 점점 달궈지는 보도블록 위에서 고민하다가 지도 앱을 켜 근처 스터디카페 위치를 확인했다. 다행히 도보 5분 거리에 프렌차이즈 스터디카페가 있었다. 망설임 없이 스터디카페로 향했다.


키오스크에 3시간을 입력하고 자리 선택 후 결제를 마쳤다. 노트북실에는 다행히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휴대가 용이한 무소음(급)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지만, 혹여나 공부하는 분들에게 방해가 될까 항상 키보드를 이용할 때는 카페를 가곤 했었다. 근데 막상 노트북실을 이용해보니 내 키보드 소리는 소음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이날 무소음 키보드가 두두두 눌리는 소리보다 마우스 소리가 더 크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조용한 백색소음 덕분에 만족스러운 3시간을 보낸 뒤 스터디카페를 나가려는데 자동문 버튼 옆에 형광색 포스트잇이 달려있었다. 내용은 굉장히 간단했다. 내용인즉슨 다리를 떨면  진동이 책상에 붙어있는 벽과 다른 책상에도 미치니, 다리 떠는  자제해 달라 라는 내용이었다. 근데 그 뒤에 반응이 더 놀라웠다. 볼펜으로 쓰인 글자 아래 파란펜으로 써진 문장 하나.  아닌데요. 그리고 그 아래 샤프로 다른 한 줄이 더. 되게 예민하시네요. 불편하면 자리를 옮기세요. 글자색, 글씨체, 심지어 내용마저도 판이한 필담이었다.


자동문 버튼을 누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아까 다리를 떨었을까?'였다. 다행히 다리는 떨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포스트잇 하나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던 건지, 자기 전에도 그 간단한 세 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세한 상황을 모르기에 온갖 상상을 하다 허무하게 내린 결론. 역시 인간관계가 제일 어려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인간관계가 제일 어려운 이유는  떨어지는 정답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똑같은 문장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 두 사람. 톡 쏘는 말투에 불쾌했을 수 있지만, 그 대답이 완전히 틀렸다고 답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이름이 다르듯, 각자의 배경지식과 성격, 환경이 모두 다르다.  모든 결과물이 지금 우리를 가리키는데, 어느 누가 너는 틀렸어 라고 말하겠는가. 그저 다름만이 존재할 뿐이다. 물론 내가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잘 모르는 사람인지라 성찰이나 깨달음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학생 때가 그립긴 하다. 학교에서는 주로 정답이 있는 지식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너무나도 많단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정해진 답이라도 모두 알려줄게. 그리고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 인간관계를 조금씩 배워보렴. 친구를 사귀는 법, 싸운 후에 감정을 다스리는 법, 내가 아프게 내뱉은 말에 뒤늦게라도 연고를 발라주는 법,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하는 법, 다시 같이 웃는 법. 선조가, 어른들이 내리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학교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또한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볼 수 있는 선생님들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계시고, 아직 어리고 미성숙하니까 라는 무한한 이유로 무언가 그르치거나 몰랐을 때 도와주는 어른들이 계셨다. 게다가 교과서에 빼곡히 살아있는 선조들이 끊임없이 말을 걸기도 한다. 내가 이런  알아냈어! 너의 시간을 아낄  있어서 다행이야. 이제 나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 내가 미처 못한 다음 이야기는 네가 이어줘.  부탁해.


만약 저 포스트잇 필담에 참여한 사람이 내 친구나 지인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눈앞이 깜깜하다는 거 하나는 알겠더라. 나는 아직도 이렇게나 배울 게 많은 사람인데 왜 나에게 학생(學生)이라는 단어에서 졸업시켰는지 의문일 때도 종종 있다. 그리고 평생 배우며 살아야 한다는 걸 미리 알려줬으면 수능까지 그렇게 전력 질주를 하지도 않았을 듯하다.


만약에 지금도 나에게 선생님이 계신다면 여전히 물어보겠지. 이런 포스트잇을 발견했어요. 전 아닌데요라는 글을 쓴 사람은 무엇 때문에 필담을 남겼고, 만약에 다리 떤 사람이랑 책상 진동에 불편했던 사람이 싸우면 어떻게 해요?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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