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에서 나온 티셔츠들을 접을 때 세 번을 접어 차곡차곡 드레스룸에 정리합니다. 옷가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반듯반듯하게 빨래를 접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지러웠던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잘 접힌 옷들이 자기 자리에 딱 위치해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아내가 빨래를 접을 때에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그냥 접기 쉽게 반씩 턱턱 접어놓는데, 이렇게 접으면 옷들 마다 사이즈가 달라서 쌓아 놓았을 때에 울퉁불퉁 보기 싫게 됩니다. 게다가 아내는 접어 놓는 것까지만 하지, 드레스룸에 정돈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거실에 대충 접힌 빨래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으면 드레스룸에 정돈하는 일은 저의 몫입니다. 물론, 이때 빨래는 다시 세 번 접어서 반듯하게 쌓아 올립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기껏 접어놓은 빨래를 다시 접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고, 제 입장에서는 대충 정리하고 마는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의 배경에는 둘의 각자 다른 사고관 또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하게 빨래를 접는 문제만으로 볼 일이 아닙니다. 저희 부부의 경우에는 같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태도가 일을 할 때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아내는 속도와 효율을 중요시하고, 저는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제가 답답하고, 제 입장에서는 아내가 덤벙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배우자가 지속적으로 할 뿐만 아니라 행동을 바꿀 의지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일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자기야, 빨래 접을 때에는 세 번을 접어야 좋아. 정돈도 잘 되고, 보기에도 좋거든."
대화의 기술을 배운 사람이라면 "I Message"를 사용하여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빨래가 두 번만 접혀있으니까, 내가 빨래를 정돈할 때 다시 접어야 해서 힘이 드네~ 앞으로는 세 번 접어주면 좋겠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말을 하더라도 아내의 행동은 변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배려와 양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질적으로 '당신의 가치관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입장을 바꿔보면 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뭘 그렇게 빨래 하나에 시간을 들이고 힘을 빼~ 사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빠르게 정리하고 쉬거나 책이라도 한 자 더 보는 게 더 가치 있는 것 같아."
만일 이런 말을 제가 들었다면, 저는 바로 전투 모드로 돌입했을 것입니다. 표현이 거칠든 부드럽든 상관없습니다. 그 의도가 상대방의 행동을 나에게 맞추려는 것이라면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성공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의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더욱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최악의 방법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자 험담을 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상대가 친구들 혹은 직장 동료들이 되는 것이지요. 얘기를 하는 순간에는 희열감과 공감을 얻을 수 있겠지만, 나와 배우자 모두에게 악영향을 주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나의 배우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혹시라도 함께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들이 나의 배우자를 어떻게 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자신의 배우자가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나면, 나는 어떨까요?
말은 나의 내면에 가득 찬 생각이 표출되는 것입니다. 험담하는 말을 할 때에는 그 사람의 마음에 그 생각과 감정이 가득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내면의 상태는 나의 무의식에도 차곡차곡 쌓이게 되어 부정적인 사이클을 만들어냅니다. 즉 배우자에 대한 부정적인 무의식적 태도는 부정적인 생각과 말로 표출되고, 이것은 다시 나의 무의식에 그대로 피드백되어 골이 깊어지게 됩니다. 어느덧 돌아보면 '어쩔 수 없이 사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쉽게 내뱉은 배우자에 대한 험담의 결과입니다.
배우자의 행동을 바꾸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우자 험담을 하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라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요? 사실 여기에는 공식과도 같은 정답이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과 사례를 통해서 검증된 방법입니다. 그 정답은 바로 '내가 먼저 변하는 것'입니다. 아마 이 정답을 듣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 것입니다.
"또 그 소리야? 난 또 뭐 대단한 소리 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 같이 안 살아봐서(안 당해봐서) 그래~"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이와 같은 반응에서 제가 유일하게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값진 보물을 얻으려면 그만한 값지불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자 그러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바꾸면 좋은 것일까요?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감사'입니다.
볼링에서 스트라이크를 치려면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을 '킹핀'이라고 부릅니다. 이 킹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가 마음을 채우면 배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사이클이 선순환 사이클로 전환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감사하는 마음의 효과가 얼마나 탁월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는 이론과 사례들이 차고 넘치게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를 하냐'는 문제일 것입니다.
감사에 대해서 심각하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감사가 '반응적'으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감사한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는 철저한 훈련의 결과입니다. 예컨대, 저희 집에는 지금 3돌이 막 지난 귀여운 둘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짜증을 내고 울고 소리를 지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안아서 달래고 있는데, 마음씨 좋으신 식당 직원분이 오셔서 사탕을 하나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3살짜리 아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일단 사탕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딸기맛 사탕을 먹을 생각에 울음도 뚝 그쳤습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는 입에서 스스로 나오지 않습니다. 손으로 머리를 눌러가며 제 입을 빌려 직원분께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이처럼, 좋은 감정이 든다고 해서 감사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배우고 학습된 결과인 것입니다. 예로부터 아이들이 버릇없으면, 부모를 탓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다면, 감사는 훈련하면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어떤 가혹한 환경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감사 역시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로 선택하는 것 대신, 감사할 만한 일을 찾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빨래의 상황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두 번 접혀있는 빨래 더미를 보면서 '하~ 또다시 접어야 하네'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렇게 생각하기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이런 면모 덕분에 사업의 속도가 나고 있지, 아내까지 나 같았으면 어쩔 뻔했어. 아직도 진도가 한참 못 나가고 있었을 거야. 참 감사하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감사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 내가 먼저 변하게 되는 '킹핀'이며, 그 결과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수많은 좋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