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의 이야기는 교회를 다녀보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저에게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3가지 내용이 있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에덴동산에 먹으면 안 되는 과일나무를 심어놓으셨을까?
그리고 왜 굳이 엄청 맛있어 보이게 만들어 놓고 제일 잘 보이는 동산 중앙에 딱 심어놓으셨을까?
마지막으로, 사탄(뱀)을 왜 에덴동산에 출입할 수 있도록 방치하셨을까?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의 환경이 일종의 괴롭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에덴동산의 환경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며 살도록 하기 위한 배려로 느껴집니다. 완벽한 환경을 꾸며놓고 잘 먹고 잘 놀게 해주는 것은 '사육'일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선악과를 보고도 유혹을 받지 않도록 아담과 하와의 마음을 조종했다면, 입력된 명령어에만 따르는 로봇과 같은 삶일 뿐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의 설계는 사육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양육' 시스템입니다. 선악과와 사탄의 존재는 스스로의 의지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쫓겨나는 벌을 받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의지'에 수정을 가하거나 그것을 필요에 따라 조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자유의지, 즉 우리의 마음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귀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또는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행동은 마음이 외부로 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려는 것과 행동을 바꾸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시도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당연히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사소한 일이건 큰 일이건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꾸려는 시도'에 있습니다.
설거지 문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깨끗하면서도 잘 정돈하면서 설거지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내가 설거지를 하고 나서 가끔 밥풀이 숟가락에 남아있거나, 식기세척기에 종류별로 가지런히 식기들이 놓여있지 않으면 불편한 마음이 생깁니다. 한편, 아내는 빠르게 설거지를 하고 다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싱크대 앞에서 세월아 내월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설거지를 오래 한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가끔 아내가 설거지를 한 후에
'밥풀이 그대로 묻어있네~ 식기세척기에 넣기 전에 이런 거는 수세미로 빡빡 닦아야 깨끗해져.'
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즉시 냉랭한 분위기로 전환되며, 저의 바람대로 아내의 행동이 바뀌지도 않습니다. 말을 하는 저의 톤도 불평스럽고, 아내 역시 나름의 이유와 기준이 있기 때문에 더 길게 얘기할수록 싸움의 판만 커질 뿐입니다. 지금은 밥풀이 묻어있는 수저나 밥그릇이 보이면, 조용히 싱크대로 가져갑니다.
아내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패던도 다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정 먼저 샤워를 합니다. 그래야 빠르게 일 모드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저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아침밥을 먼저 챙깁니다. 그러다 보니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저는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아내는 제대로 씻지도 못한 상태에서 업무 전화를 받고 일을 시작하는 때가 있습니다. 만일 이런 아내에게
'아침밥 대충 하고 먼저 씻어~ 아니면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씻고 아침밥을 하던가~'
라고 말한다면 역시 갈등 상황으로 바로 전환될 것입니다. 사실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변화는 없으며 서로의 감정만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마음과 나의 행동뿐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적용하는 것이 평화와 행복을 앞당기는 지름길입니다. 사실,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은 말 몇 마디로 상대방이 나에게 맞춰지기를 바라는 매우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 역시 누군가의 좋은 말을 듣거나, 좋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않습니다.
배우자의 못난 태도만 바뀌면 부부생활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마음은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외부 조건에서 행복을 찾는 습성은 새로운 불평 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절대로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행복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하루의 시작이 늦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아내로 인해 아침식사를 잘 챙겨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족을 위한 식사를 챙기면서도 이른 아침 가끔 걸려오는 업무 전화에도 대응을 잘하는 모습이 훌륭하게 생각됩니다. 게다가 제가 하루를 평소보다 일찍 시작하는 날에는 아내도 같이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내가 변하는 것이 행복한 삶의 시작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방법을 알았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는 않지요. 내가 먼저 변한다는 것이 막상 실천하려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갈등이 자주 발생하는 영역에서는 더욱이 그렇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훈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효과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훈련의 영역이고, 이를 통해 부부의 결혼 생활은 한 층 더 성숙하고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다음 연재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