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국제시장과 비교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매혈이라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소재를 바탕으로 쓰였지만, 비극적인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가족을 위해 한 몸 희생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비극적 역사, 아버지의 희생과 같은 주제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통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세계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많은 국가는 동시대의 비극을 공유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에 계속 기대어야만 했다. 그 시대 부모님들의 희생은 국가적으로도 한 가족의 구성원인 개인의 입장으로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감정을 일으킨다. 특히 작가는 어머니에 비해 자식들과 심적으로 먼 상대인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 감정을 배가시켰다.
이렇게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전 세계에 통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영화화는 더디었다. 이 소설이 짙은 역사적 배경이라는 안 좋은 조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당연히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쓰였다. 중국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소설이라는 형식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영화에서는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된다. 실제로 하정우 감독도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중국의 역사적 배경을 지웠고, 영화 허삼관은 문화적 장벽을 낮추어 한국 관객들에게 더 무난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역사적 배경이 삭제되어 허삼관 가족의 삶의 비극성이 약화되면서, 유머와 이웃 간의 정, 아버지의 희생과 같이 소설이 가지고 있던 매력이 반감되는 효과도 같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장애물을 치우면 영화가 평범해져 버리고, 그대로 놔두기에는 관객들 정서상 문제가 될 것이 뻔했다. 결국 완성된 영화는 원작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휴먼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소설이 가졌던 대중성을 놓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영화 <허삼관>의 실패는 두 가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첫째, 영화에서 다른 국가의 역사적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와 자국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둘째, 원작이 가진 매력 자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가능하다'이다. 완전히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타국의 역사적 배경을 한국화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성공적인 영화화로 증명했다.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충분했다'다. 이 주장을 뒷받침할 영화는 총 14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이다. 영화 <국제시장>과 소설 <허삼관 매혈기>, 영화 <허삼관> 모두를 접해 본 사람이라면, 영화 <국제시장>이 보다 <허삼관 매혈기>와 가까운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두 작품은 유사한 서사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가진 것 없는 한 남자가 격변의 역사 속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이야기다. 둘 사이에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국제시장>은 앞에서 언급한 위화의 소설이 가진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물론 거기에 더해서 <국제시장>은 위화의 작품이 가질 수 없는 매력까지 더했기 때문에 흥행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 매력은 바로 한국의 1950년대와 그 이후 역사를 다뤘다는 것이다. 이로써 영화는 평소에 극장을 즐겨 찾던 관객들 뿐만 아니라 중장년 층 관객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 글은 <국제시장>에 찬사를 보내기 위한 글이 아니다. <국제시장> 완벽한 영화가 아니며, 부정할 수 없는 정권 친화적인 영화로, 그 시대에 평범한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던 책임자들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비극적인 상황은 발생하지만 그 비극적 상황의 책임은 누구에게도 없는 이상한 나라를 상정했다. 나는 다만 두 영화를 비교했고, 분석했으며, <허삼관>이 <국제시장>과 같은 서사를 취했더라면 당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두 영화의 성적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