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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정체성 Dec 03. 2019

불편한 것들

굳이 왜 저러는 걸까.

불편한 퇴근길이었다.

여섯시반 강남의 지하철. 북적이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지옥철'이 돼버리는 시간과 장소.

매일 겪는지라 충분히 익숙한 환경이지만 오늘이 불편했던 이유는

내 앞을 차지한 검은 패딩의 커플 때문이었다.


누군가 가방으로 내 뒤통수를 밀쳐와 뒤로 확 돌아섰다.

그제야 그나마 편안한 공간을 마련했고 나는 불편한 시선은 감수해야 했다.

패딩과 패딩 사이로 서로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그 커플의 입술 간격은 5cm가 채 되지 않았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사람 많은 지옥철이니까. 연말이니까. 얼마나 애틋하겠어?

근데 계속 뽀뽀를 해댄다.

쪽. 쪽쪽. 쪽. 쪽. 쪽쪽쪽.

족히 20번은 넘었을 테다.


굳이 그렇게 사람이 맞붙어있는 지옥철에서. 굳이 백팩으로 날 밀쳐가며.

뽀뽀를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해대야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더라.

몹시 불편했던 시각과 청각 탓에 그 희한한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내 눈을 한 번이라도 마주치길 바라면서. 내 눈빛을 보고 제발 자중하길 바라면서. 부끄러워하길 바라면서!

세 정거장 정도가 지나칠 때까지 뚫어져라 그 여자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눈 위에 잔뜩 올려진 글리터 개수를 셀 수 있을 만큼 눈동자를 뚫어져라 주시했건만.

내게 눈길을 주긴커녕,

그 문제적 남녀는 패딩 속에 파묻혀 서로밖에 안 보이는 듯했다.


항복. 내가 졌다.

난 내 눈빛 공격을 거두고 다시 뒤를 돌았다.

뒤통수가 다시 그 커플의 백팩에 눌렸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쪽쪽거림이 내 에어팟을 파고들었다. 정말 화가 났다.


굳이. 굳이.


어제는 또.

이불에 누워 책을 읽으려는데 옆집에서 또다시 불편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들은 일 년 내내 신음 소리를 낸다. 그것도 아주 적나라하게.

경비 아저씨를 통해 두어 번 정도 민원 제기를 했었지만 소용이 없다.

거의 분노 조절 장애까지 안겨준 그 옆집 96 커플을 향해 그들이 절정에 이를 때쯤 나도 소음을 전했다.


챱챱. (손바닥으로 두 번 벽 후려치기. 그게 최선이었다)


소심했던 난 그 순간 "우리 집 초인종 누르는 거 아니야?" 걱정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턱없이 부족했던 복수였다.

이사 가기 전에 절대적으로 한 마디를 꼭 하고 이 집을 떠나리라!

너네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적나라하게 소리를 내는지에 대해서.

네 신상까지 다 알고 있다 옆집년아.


이쯤 되니 내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내가 보수적인 건가? 내가? 내가?? 내가 예민한 건가?

페이스북에서 여러 댓글들을 보며

"참. 세상에 불편할 것도 많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예민해지냐?"라고 읊조리던 난데.

정작 내가 그런 예민충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면서도.

또다시 분노하게 되고.

그래도 굳이..?


그래. 연말이잖아. 사랑이 넘치는 연말.

때와 장소와 정도를 가리지 않고 사랑이 넘치는 즐거운 연말이잖아!

남들의 불편함 따윈 눈에 안 들어올 정도로 너무 사랑하겠지.

이 도시엔 사랑이 마구마구 넘쳐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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