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다행
다행이다.
먹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난 맛있는 것을 먹고 배불리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사실 배가 고프지 않고,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딱히 안 먹어도 상관이 없다.
즉, 나에게 식욕이란 건 단순히 배를 채우고 생존을 위한 하나의 도구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맛있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함으로 인해 힘든 적이 다소 있었다.
상대적으로 여자가 많은 전공과 직장을 다녔고, 연애를 할 때,
대개 맛있는 것에 대한 정교하고 분명한 입맛을 가진 비율은 남자보다 여자가 높은 것이 나의 경험으로는 대부분이기에, 나의 무미건조한 반응으로 인해 오해와 갈등이 생기곤 했다.
그래서 때론 나의 무미건조함과 식욕 없음이 참
별로 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참 다행이다 싶다.
왜냐하면, 슬프지만, 엄마의 음식이 상대적으로 덜 그립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알고 그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내가 해 먹는 맛없는 요리를 먹거나,
시절과 때마다 얼마나 엄마가 많이 생각나고 그립고 슬펐을까 싶다.
다행이다.
먹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