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기완>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바꿔 말하면 '희망'과 '현실'을 교환하는 일이 아닐까. 삶이 결국 태어나면서부터 내 수중에 지니고 있던 무수한 '희망'들이 나이가 들수록 점차 '현실'로 바뀌어가는 과정이지 않은가.
그런 시선으로 사람의 생을 볼 때, 이를 열심히 살아낸다는 건 스스로의 주변에서 그 '희망'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희망'이 '현실'로 치환되는 과정은 '희망'이라는 동전을 '현실'이라는 슬롯머신에 넣는 것과 매한가지다. 희망이 결코 현실의 '잭팟',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내 바람과는 다른 잔인한 답을 언제든 내어놓을 수 있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람의 '삶'이라는 엔진에 연료가 되고,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일 테다.
영화 <로기완>의 주인공 '기완'(송중기)은 삶을 향한 의욕으로 충만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북한 땅을 탈출했고, 연길에서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 '옥희'(김성령)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머나먼 이국 땅인 벨기에에 발을 디딘 그였다. 기완은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살았다. 공병을 주워 겨우 벌어낸 동전 몇 푼으로 산 빵을 쨈 용기에 구멍이 날 것처럼 꾸역꾸역 먹었다. 헌 옷 수거함에서 옷을 주워다 입었고, 목이 마르면 심지어는 변깃물까지 마시며 버텼다. 중국 땅에서 이별하게 된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꼭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너래 죽지 말고....좋은 땅에 가 살아남으라.
떳떳하게...니 이름 갖고, 사람답게...사람답게 살라.
한편, 기완이 벨기에에서 만나게 되는 여자 주인공 '마리'(최성은)도 삶을 '닥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닥치는 대로' 산다는 것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 '기완'과 달리, 삶을 하찮고 의미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녀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한때 촉망받는 사격 선수였지만 엄마의 죽음 이후 삶에 대한 애착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엄마의 죽음이 사실 안락사였으며, 아빠가 이를 찬성했다는 사실에 아빠에게 큰 배신감과 적개심을 품게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불법 도박장에서 사격 선수로 뛰며 마약과 같은 범죄로 점철된 일상을 보낸다.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내야 하는 기완과 반대로, 그보다 충분히 많은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그것을 외면한 채 '희망 없는 낙오자' 행세를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 둘의 만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트 큐트'(Meet-Cute)처럼 운명적이라 볼 수 있으리라. 삶을 놓아버리고 싶은 여자와 어떻게든 삶을 부여잡고 싶은 남자. '엄마의 부재'라는 거대한 사건을 매개로 둘은 서로의 삶에 부족했던 색으로 서로를 채운다.
영화를 보며 어쩌면 이 땅에 사는 우리도,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나도 모두 '마리'같은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의 순간마다 곳곳에 놓여있었을지 모를 '희망' 과 '기회'를 외면한 채 말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 속에서 사격 선수로 과녁에 총구를 겨누는 '마리'의 모습과도 같다. 10점이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는 듯, 우리는 '10점' 혹은 '완벽'이라는 조그마한 장소에 처음부터 입주권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곳 주변은 늪인 것처럼 그곳에 닿지 못한 삶을 '실패한 삶'이라 규정하고 깊은 진창 속으로 빠져 들어가곤 한다.
물론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삶에는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듯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삶을 놓고 싶어 놓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분명 누구에게나 다들 그럴만한 사정은 존재한다. 이른바 'N포 세대'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 땅에서 청소년으로, 또 청년으로 근 20년을 살고 있는 나 또한 그런 불행의 터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허나 그런 어두운 시기를 지날 때, 너무 쉽게 내가 가진 것까지 모두 놓아 버리려는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삶은 결코 태어난 순간부터 고상하거나 고귀한 것이 아니다. 삶이 소중하고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그의 재산 정도나 집안의 사회적 명망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삶이 지닌 무한한 '희망'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아주 작은 것에서라도 목적을 갖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그 삶은 어느새 고귀해지고 무엇보다 소중해진다. 영화 속 '기완'의 모습처럼 하루하루의 그 삶에 대한 악착같은 애착이 삶을 고귀하게 만든다.
삶에 답이 보이지 않을 때는,
오히려 삶 자체가 답일 때가 많다.
삶에는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 그저 이어질 뿐이다. 언젠가 나타날 도착 지점까지 끝없이 이어진 길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 희망을,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당신에게 주어진,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삶과 그 삶을 이루고 있는 희망들에 대한 예의이며 그것이 당신의 삶을 고상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영화 <로기완>은 그렇게 삶에 대한 태도의 대척점에 선 두 인물을 통해 '삶'에 대한 예의에 대해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