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컴퓨터, 당당히 영웅이 되다.

영화 <히든 피겨스>

by 정주원
<히든 피겨스>는 '숨겨진 공식'이라는 뜻이다. 미국인들은 인간을 우주에 보내고, 달에 보내기 위한 '수학 공식'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것은 '수학 공식'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NASA의 직원들이 찾은 수학은 새로운 것이 아닌, 옛날 수학이었다. 옛것이 좋은 것이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옛날 수학'을 발견해 나사를 구한 건 캐서린이었다. 단어 'Figure'는 인물이라는 뜻도 있다. 낡은 차별이라는 조개 껍데기 안에 들어있던 캐서린과 메리, 도로시라는 '진주'. 바로 그들이 찾던 '히든 피겨스'였다.

지난 2월 26일 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시상하러 나온 <히든 피겨스>의 세 주연 배우들 뒤로 노파 한 분이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그녀는 바로 영화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인 타라지 B. 헨슨이 연기한 캐서린 존슨 본인이었다. 미 항공우주국 NASA의 일원으로서 미국이 우주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데 큰 공을 세운 분이란다. 그래서 NASA에는 그녀의 공적을 기려 그녀의 이름을 딴 건물을 지었단다. 'The Katherine G. Johnson Computational Research Facility'라고 하는.

힘들게 'Thank you very much'라는 한 마디를 뱉어내고 캐서린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아카데미 상이니까, 미국 최고의 영화 시상식이니, 미국의 영웅인 사람에게 당연한 처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짧은 생각이었다. 이 영화의 세 주인공인 캐서린 존슨과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었다. 미국을 진정한 미국으로 만든 이들이었다.


1. 자유와 관용의 나라 미국...?

모두가 알다시피 1960년은 미소 양국이 서로의 이념으로 으르렁대던 냉전 시대였다. 60년대의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이 더 우월함을 세계에 보이기 위해 경쟁에 경쟁을 거듭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위성, 우주선으로 대표되는 우주 기술 경쟁이었다.

오늘날엔 철저한 계획과 절대적인 평등으로 모든 인민이 움직이는 공산주의 체제보다 자유와 관용으로, 능력과 능률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더 우월함은 이미 입증되었다.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들의 몰락으로 실제적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우주 기술 경쟁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세계 최초의 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것도, 유리 가가린 소령을 세계 최초로 우주로 올려 보낸 것도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이었다. 여기서 아직 자유와 관용의 가치가 무르익지 못했던 당시 미국 사회의 미숙한 면이 드러난다.

1960년의 미국은 진정한 자유와 관용의 나라가 아니었다. 차별과 부조리의 국가였다. 능력이 있어도 유색 인종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없었다. 여자라면 더더욱 그랬다. 자유가 가진 고귀한 가치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었다. 다양한 프레임으로 편을 가르고, 더 우월한 편에 선 집단은 아닌 집단에 이유 없는 차별을 가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종 차별이다. 흑인과 백인은 버스 내에서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었고, 그것이 자유국가를 표방하는 당시 미국 사회의 민낯이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낱말은 'colored'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버스 뒷자리에 앉아야 하고,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그에 비해 소련은 모두가 평등한 인민들이다. 미국처럼 흑인과 백인 차별하고 편을 가르지 않았다. '동반자'라는 뜻을 가진 스푸트니크처럼 모두가 합심하여 서로를 북돋우는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편을 가르고 힘을 분산시키는 미국이 소련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2. 'Colored Computer'

지금처럼 뛰어난 연산 능력을 지닌 슈퍼컴퓨터가 없었던 1960년대의 미 항공 우주국. 그곳에는 인간 컴퓨터가 있었다. 정말 계산을 직업으로 하는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Computer'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기계 컴퓨터가 아니다. 전산원으로 번역할 수 있는 그들은 모두 여성이다. 남성들은 모두 더 높은 책임자이자 과학자로서 더 중요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전산원 여성들도 동관과 서관에서 각각 흑인과 백인으로 나뉘어 업무를 한다. 이 영화는 건물을 통해, 'Colored'라는 말을 통해 그 차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번쩍번쩍한 대리석으로 마무리된 백인들의 업무 공간에 비해 흑인 여성들의 업무공간은 지하실을 연상하게 한다. 흑인이어서, 여성이어서 차별당하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여과 없이 영화에 담아냈다.

백인 여성처럼 승진할 수도 없고, 따로 식사를 해야 하며, 심지어 화장실도 따로 사용해야 하는 그녀들. 흑인 여성은 NASA에서 가장 낮은 계급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건 미국에 만연한 차별의 프레임이 NASA 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캐서린과 메리, 도로시는 NASA의 가장 낮은 곳에 임해 있는 흑인 여성들이다. 캐서린은 뛰어난 수학 능력을 지닌 '수학 영재'이고, 메리는 여느 백인 남성 과학자에 뒤지지 않는 능력과, 엔지니어가 되고자 하는 꿈을 지녔다. 그리고 도로시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몇 년간 주임이 부재한 전산실의 숨은 리더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그녀들도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종의 벽, 성별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백인들의 공간에서 캐서린과 메리를 차출한다.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위성에 사람까지 쏘아 올린 판국에 NASA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숫자를, 기하학을 다룰 줄 아는, 엔지리어닝에 빠삭한 사람이라면 흑인이라도 일단 차출하는 NASA.


하지만 그들이 캐서린과 메리의 능력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계산을 검토하고, 이것 저것 백인들의 업무를 '보조'하기 위함이었다. 전혀 다른 공간으로 옮겨진 캐서린은 백인들 사이에서 극심한 차별을 온몸으로 받는다. 화장실을 쓰기 위해 왕복 40분이 되는 길을 오가야 한다. 커피포트도 따로 사용해야 한다. 메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메리의 뛰어난 능력을 알아본 착륙선 설계 담당자 질린스키는 그녀에게 엔지니어가 되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여성은 엔지니어가 될 수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 게다가 흑인이라니 더욱 힘든 일이었다.


전산실에 남은 도로시와 나머지 전산원들의 상황도 나쁘긴 마찬가지다. 검은 컴퓨터들 사이에 진짜 '컴퓨터'가 등장해 버린 것이다. 24,000개의 곱셈을 1초 안에 해내는 괴물 기계 IBM의 등장은 전산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도로시는 '검은 컴퓨터'들의 리더다. 도로시는 뛰어난 리더십과 명석한 두뇌를 모두 지녔다. 도로시는 뛰어난 상황 판단으로 IBM을 다룰 수 있는 시스템 언어인 '포트란'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백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도서관에 들어가 몰래 '포트란' 책을 가져다가 공부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떳떳하다. 그녀는 자식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어갔다가 백인 경비원에 의해 문전박대당한다. 그러나 도로시는 창피해하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올바른 행동만 했다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떳떳이 행동하라고 자식에게 가르치는 도로시. 캐서린과 메리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서슬 퍼런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한다. 낭중지추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녀들은 굳건히 서있던 인종의 벽과 성별의 벽에 조금씩 균열을 가하기 시작한다.


3. '당당히' 인간이 된 검은 컴퓨터들

물론 그녀들도 부조리한 차별에 울었다. 세 사람이 서로 징징대기도, 서로에게 불평하기도 하며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백인들에 맞선 세계에서 '당당한' 검은 컴퓨터인 그녀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 앞에선 불평하지도 징징대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의연하게 자신의 능력을 보란 듯 마음껏 뽐냈다. 그래도 여기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향한 미국 사회의 가능성이 나타난다. 능력이 뛰어난 그녀들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능력 있는 그녀들을 위해 조금씩 기회를 제공한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알 해리슨'은 캐서린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가 동정심이 많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국가의 자존심이 소련에 짓밟힌 상태에서 NASA를 이끄는 그에게 필요한 건 '능력'이었다. 구태연한 인종 때문에, 성별 때문에 뛰어난 인재를 모른 채 하는 것은 그에게 직무유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제야 미국은 그들의 자유로운 사회가 가지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 시작한다. 알 해리슨은 망치로 유색 인종 화장실 팻말을 깨부수고, 유색 인종 전용 커피포트를 없앤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계산이나 검토하는 '검은 컴퓨터'가 아니었다. 백인들과 같은 아니, 더 훌륭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었다.


"여기 나사에선, 모든 사람이 같은 색깔의 소변을 본다."


알은 나사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사를 미국이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구태의연한 차별 의식도 버릴 수 있게 된 미국인의 새로운 모습이다. 글렌 대령을 우주 궤도로 올려 보내는 마지막 작전에서, IBM의 계산 착오를 검토하기 위해 캐서린을 찾는 상황실의 백인 남성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화장실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영화 초반의 캐서린. 이번엔 상황실의 백인 직원이 캐서린을 찾아 흑인들이 이용하는 동관 전산실까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관객들을 통쾌하게 만드는 명장면이다.

한편 흑인 '최초'의 엔지니어가 되려면 메리는 이수해야 할 필수 수업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수업은 백인 남성만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벽에 부딪힌 메리 역시 좌절하지 않는다. 법원에 수업을 듣게 해달라는 청원을 넣고 백인 판사 앞에 선다. 그리고 판사 앞에서 호소한다. 많은 면에서 '최초'였던 판사에게 메리도 '최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다. 다행히도 이 백인 판사 역시 벽을 깨기 위해 노력하는 메리를 돕는다. 그녀가 야간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

IBM이라는 거대한 괴물 기계에 가로막혔던 도로시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산실에 남은 도로시와 다른 흑인 여성들은 도로시의 주도 아래 '포트란'을 배우기 시작한다. 기계 컴퓨터와 소통하기 위한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컴퓨터는 컴퓨터끼리 통하는 게 있는 것일까. IBM 직원들 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쩔쩔매는 기계를 그녀들은 누구보다 쉽게 다룬다. 조금 더 진일보된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들보다 몇 천 배는 뛰어난 계산 기계 앞에서 전산원들은 그 컴퓨터를 다루는 '인간'이 되었다. 오히려 갈 곳이 없어진 백인 여성 전산원들에게 '포트란'을 가르친다. '당당한 검은 컴퓨터'들은 그들을 차별하는 벽을 깨부수고 인간이 되었다.


4. '당당함'은 '딱딱함'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그 '당당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나는 그 '당당함'을 '유연함'에서 찾는다. 힘들고 서럽고 억울한 상황에서 그녀들은 웃었다. 굳어 있지 않았다. 비아냥대며, 혹은 그저 웃으며 유연한 그들만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흑인 특유의 '낙천성'은 게으름의 유물이 아니었다. 높기만 한 차별의 벽 앞에서 그 벽을 무너뜨린 것은 그들의 '춤'과 '노래'였다.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흑인 특유의 비트와 음악들은 자칫 무겁고 눈물 일색 일 수 있는 불평등의 장면들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절대 울지 않는다. 물론 흑인들 사이에서도 비관적인 사람들은 많았다. 폭력 시위를 행하려던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말한다. 그들에게 진정한 평등을 가져다준 건 그들의 '낙천적인 유연함'이라고.



<히든 피겨스>는 '숨겨진 공식'이라는 뜻이다. 미국인들은 인간을 우주에 보내고, 달에 보내기 위한 '수학 공식'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것은 '수학 공식'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NASA의 직원들이 찾은 수학은 새로운 것이 아닌, 옛날 수학이었다. 옛것이 좋은 것이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옛날 수학'을 발견해 나사를 구한 건 캐서린이었다. 단어 'Figure'는 인물이라는 뜻도 있다. 낡은 차별이라는 조개 껍데기 안에 들어있던 캐서린과 메리, 도로시라는 '진주'. 바로 그들이 찾던 '히든 피겨스'였다.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잊고 있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지금까지 미국이 최고라며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치던 영화들의 논법과 매우 다르다. 오히려 그들의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다. 그녀들의 노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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