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이명박. 그리고 윤석열.
이렇게까지 치열했던 선거가 있었을까 싶었던 20대 대선이 2번의 승리로 끝났다.
24만 7077표, 0.73% 차이.
선거가 끝나고 사람들을 만나니 자연스레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내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2번을 찍었다는 것을 알았다.
"네? 2번을 찍었다고요?! 아니, 저도 현 정권에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윤은 정말 아니었잖아요... 차라리 홍이 되었으면 이렇지는 않을 텐데, 2번이 대통령이라니... 전 정말 이해가 안 가네요."
처음엔 나도 모르게 이런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내 이런 반응에 오히려 그들이 더 깜짝 놀란다는 사실이다. 마치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제 주변 친한 친구들은 모두 1번인데, 전 그냥 2번 찍었어요. 한쪽만 너무 밀어주면 안 돼요. 그래도 정권 교체는 되어야죠. 그리고 설마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망하기야 하겠어요? 잘하겠죠 뭐."
기시감을 느껴졌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
"난 이명박이 대통령 되면 정말 잘할 것 같아."
2007년 대선 선거를 앞둔 어느 날, 회사 동료 중 한 명이 저녁을 먹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이랬다.
"이명박이 교회 장로거든, 그래서 왠지 정치도 깨끗하게 잘할 거 같아."
당시의 나는 투표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완전한 정치 무관여층이었다. 정치인은 거기서 거기. 누가 해도 똑같다는 시니컬한 양비론자.
강원도 출신의 약간은 답답하지만 순박해 보이는 그가 이명박을 지지하는 이유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난 투표도 안 할 건데 뭐. 다 거기서 거긴데 달라지기야 하겠어?
그가 지지하던 이명박은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
"저 사실... 박근혜 빠에요. 이번에는 다들 문재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잘 될 것 같아요."
2012년 대선 선거를 앞둔 어느 날, 커피를 같이 마시던 회사 동료 중 한 명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이랬다.
"대통령이 되면 자기는 깨끗해도 가족들 때문에 비리를 저지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결혼을 안 해서 혼자잖아요. 전 박근혜가 되면 그런 게 없을 것 같아요."
당시의 나는 더 이상 정치 무관여층도 시니컬한 양비론자도 아니었다. 이전 이명박 대통령에서 있었던 납득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사건을 거치며 정치가 사회를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훈훈한 인상과 겉모습을 가진 그분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그 이유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괜한 정치 이야기를 꺼내 나름 사이가 좋았던 그와의 관계를 서먹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지지하던 박근혜는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
지금은 2022년 3월이다.
대선은 끝났고, 윤석열은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
난 가끔씩 문득 궁금할 때가 있다.
예전에 자신 있게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하고 대통령으로 선택한 그들은 그 뒤에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이야기들을 지켜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했을까? 아니면, 이건 모두 음모며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까?
...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지금부터 끝까지 해야 하는 것 하나,
그건 바로 똑바로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2번을 선택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이 맞았는지.
1번을 선택한 사람들은 2번을 선택한 사람들의 판단이 맞았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난 이번에는 그 이야기의 끝이 좀 다르길 바란다. 진심으로.
:
2022년 3월 12일 밤
늦은 저녁을 먹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
2022년 3월 13일 새벽
집에 돌아와서 정리하여 오랜만에 브런치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