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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100명으로 그리는 지금 서울의 얼굴.

D+50. FACE DRAWING SEOUL, 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

by 릭킴
나는 왜 페이스 드로잉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페이스 드로잉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Project Face Drawing(프로젝트 페이스 드로잉)"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한창 했던 'Facebook'에서 불특정 타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 얼굴을 그려가는 아카이브 작업을 하면 재미있겠다 싶어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딱히 무언가 고민을 하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이 작업이 나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Artist)'의 길로 이끈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 이 질문은 지난 몇 년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개인의 얼굴'이라는 소재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점차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었고, 점차 우리가 모여 사는 이 사회, 조직,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이 프로젝트로 모아졌다.



'FACE DRAWING SEOUL
페이스드로잉서울 2025'


더 이상 서포터의 정체성이 아닌 '작가의 정체성'으로 살아보겠다는 나의 첫 선언문 같은 이 프로젝트가 어느새 딱 50일이 되었다.


9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100일간 초대되거나 선정된 100명.


그들과 만날 약속을 잡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그것을 영상으로 담고,


그 영상을 영상 편집을 위한 드라이브에 올리면,

영상 편집을 진행하고,

편집이 완료된 영상을 다시 보며 자막 작업을 하고,

그 자막 작업을 기본으로 그 인물에 대한 기록을 글로 남기고,


그 글과 영상을 다시 보며 그 인물을 그릴 준비를 하고,

라인 드로잉을 그리며 머릿속으로 그림의 구상을 하고,

대화의 기록을 바탕으로 컬러 팔레트를 뽑아내고,

라인 드로잉 위에 컬러를 입혀 완성한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완성된 얼굴 그림(Face Drawing)에 이름을 붙인다.


몽상가, 지망생, 윙크닥터, 카탈리스트, 키 시커, 솔로프리너, 핑크 알고리즘, 프리즘, 퓨리탄, 재발견자, 항해사, 앵커, 세컨드 라운드, 아키텍트, 소셜 익스페리멘터, 샘, 아티장, 라이브러리안, 리미널, 가드너, 미디에이터, 플레이스메이커, 연주자, 메신저, 결정론자, 크리슬리스, 익스플로러, 프루버, 태퍼, 더 미러, 문지기, 복싱코치, 연꽃...


작업을 하다 보면 이건 확실히 초상화라기보다는 그 인물이면서도 그 인물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일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100명을 100일 동안, 섭외와 기록과 공개를 동시에 한다는 것. 각오는 했지만, 막상 해보니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나마 함께 하는 크리에이터 팀원들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겨우 빠듯하게 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 그래도 여전히 그려야 할 그림들은 쌓여있다.


매일 한 두 개씩 공개되는 일정에 맞추려면 낮에는 선정된 인물을 만나러 돌아다니고, 새벽이나 밤에는 그림을 끊임없이 그려야 겨우 겨우 맞추는 생활을 하고 있다. 즐겁지만 동시에 죽을 것 같은 느낌? 하하


"릭, 이정숙선생님 그림을 내일 오전으로 미루고
오늘은 글을 하나 남겨보는 건 어떠실까용?


소피가 몇 시간 전 디스코드에 올린 글.

벌써 절반이구나. 알겠다는 의미로 엄지 이모티콘을 달았다.



이 글은 내가 다들 모든 일들 뒤로 하고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지금을 사는 100인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지금을 촬영하고, 그들의 얼굴을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해이든'에게 감사를.

이 프로젝트는 나 혼자였으면 절대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봄, '해이든'이라는 동료를 만나 이 프로젝트의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영상을 찍어보며 아이디어를 조금씩 키워나갔다.


다음으로 '소피'에게 감사를.

9월 초에 이 프로젝트를 조금씩 알리는 과정에서 만난 '소피'가 멤버로 합류하면서 비로소 우리는 '2025년 9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100일 동안 서울 100명의 현재를 기록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굴러가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좋아해 주시고, 이번 시즌 인물 섭외를 함께 해주는 수많은 분들.


큐레이터 캐리, 브리스 님, 허윤정 님, 이효석 님, 최경희 님, 정혜정 님... (혹시나 빼먹은 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던가.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명백히, '멀리' 가야만 하는 길이다.



닥쳐오는 세 번째 파도 앞에서, 나는 나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는 보통 나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가진 수많은 정체성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나의 진짜 모습은 "나는 내가 말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가?"라는, 스스로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 속에 존재할 것이다. '태도가 곧 본질'이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 가상 세계를 만들던 온라인 게임 기획자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셜 프로젝트 기획자로, 그리고 다시 캔버스 앞에 선 나는 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두 번의 거대한 파도를 넘어, 이제 AI라는 세 번째 파도가 밀려오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나는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다시 묻는다. 개인의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것은 그저 거창한 담론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앞으로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가장 현실적인 질문이다.



가상 세계, 그리고 '연결'이라는 화두


나의 이런 독특한 관점은 MMORPG 게임 기획자라는 이력에서 출발했기 때문일 수 있다. 수백만 명이 동시 접속해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활동하는 가상 세계. 나는 MMORPG(대규모 다중 접속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야말로 "진정한 메타버스"였다고 생각하는 그 안에서 세계를 만들고, 규칙을 세우고, 관계를 설계하는 일은 현실 세계의 시뮬레이션과도 같았다.


그러다 점차 깨달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경험은 나의 관심사를 '개인'에 대한 탐구에서 '커뮤니티'로 자연스럽게 확장시켰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때의 고민이 현실 세계로 이어진 결과물이다.



'죽음'이라는 가장 정직한 거울 앞에서


내 사유가 조금 단단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삶을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점 위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수 있다. 어린 시절 다양하게 겪었던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나에게 "나도 진짜 죽을 수 있구나"라는 실체적 감각을 남겼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경험이 죽음을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가 바꿔 주었다.


"2012년,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있었어요. 그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죠. 이듬해 2013년 제 삶의 방향을 크게 튼 첫 번째 분기점이었습니다."


내게 죽음은 삶을 재단하는 '필터'다. 이 필터를 통과하고 나면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걸러지고, 본질만이 남는다. "죽을 때 뭐가 제일 아까울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후회 없이 살아야겠다"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답 하나를 얻었다. 내가 바라는 만족스러운 삶이란, 대단한 명예나 부가 아니다. 훗날 누군가가 "릭 덕분에 이거 하나는 잘 쓰고 있다"거나 "릭이 이거 하나는 하고 갔지"라고 기억해 주는 것. 타인에게 유용한 생각이나 결과물 하나를 남기는 것. 그것이 내가 죽음 앞에서 찾은 삶의 이유다.



개인의 시대, 그리고 서울의 진짜 얼굴


시대를 진단해 본다. 20세기가 '조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단연 '개인의 시대'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누구나 거대 언론사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지금, 거기에 AI라고 하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도구로 인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역량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그럼 나라는 개인은 이 시대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원하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어떨까?


이 시대의 개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의 장(場)을 '서울'로 정했다.


처음에는 막연히 서울의 '멋진 사람들 100명'을 찾아 기록하고 연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구체화하며 나의 시선은 조금 더 본질적인 곳으로 향했다.


K-POP과 K-드라마로 포장된 서울이 아닌, 이 도시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고 싶다는 열망이다. 이태원의 어느 밤, 골목 안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길고양이 한 마리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듯, 천만 개의 얼굴을 가진 이 도시에는 천만 개의 우리가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했다.


100일 동안 서울에서 각자의 멋짐을 가지고 살아가는 100명의 찾아,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현재를 편집 없는 원테이크 영상으로 기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림, 글, 영상으로 아카이브 하는 것.


이것이 'FACE DRAWING SEOUL'이 지금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표다.



빙산의 일각, 아직 증명되지 않은 나를 향한 기록


주변에서는 감사하게도 나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으로 평가하지만, 첫 번째 인터뷰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실 안 그래요."


"지금 제가 보여주는 건 빙산의 일각 같은 거예요. 하지 못한 게 훨씬 많거든요. 이 갭을 줄이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2013년 이후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온 '두 번째 분기점'에 서 있다.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고, 자기 검열을 멈추고, 생각보다 행동으로 더 많은 것을 '질러보라'라고 나 자신을 다그치는 시기일 수도 있겠다.


그런 나에게 이 'FACE DRAWING SEOUL'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의 생생한 기록이자, 동시에 이 시기에 만난 서울 사람들의 기록이다. 이 여정을 함께해 주는 크리에이터 팀 동료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감과 지지, 후원을 보내주는 많은 분들이 아니었다면 이 여정은 할 수 없었을 거다. 절반의 반환점을 돈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난 다시 밀린 그림을 그리러 가야겠다. (웃음)


:

2025년 10월 20일,

갑자기 추워진 가을 늦은 오후,

서울 석촌호수 어딘가의 카페와

선릉 어딘가의 카페에서


#릭의어느날의생각 #페이스드로잉서울 #FaceDrawingSeoul




https://reeccu.com/FaceDrawing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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