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유토피아 01
내 몸이 강해지려면 운동을 해야한다, 회복하려면 최대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안 쓰고 저축하는게 최고다, 주식이나 투자 재태크 해야 돈 번다. 사람은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결혼이나 인생은 현실이라 조건을 봐야 한다. 풍경도 천천히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사는게 좋다, 목표로 가려면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좀 둥글둥글하게 살자, 손해보지 않으려면 각 세우고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이라는 총 시간을 가야할 길로 설정해 놓고, 시간 대비 가장 빠르고 정확한 루트를 내비게이션 없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며, 포기한 길에 대한 대가와 돌아가느라 늦어진 것에 대한 박탈감과 열등감을 모두 내 어깨에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게 인생이라면, 우주의 먼지 한 톨이라고 하기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인 것 같다.
'생애주기' 라는 것이 없는 세상을 꿈꿔본다.
그럼 중간에 포기하는 것도, 미련이라는 것도 없지 않을까? 늦었다는 것도, 이 길이 틀렸다는 것도. 나 홀로 내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는 걸 목표로, 천천히 가고 싶을 땐 꽃길과 날아다니는 나비도 구경하다가, 빠르게 가고 싶을 땐 엑셀 실컷 밟아 시원하게 달려가는 그런 인생. 이 길로 가다가 틀렸다고 걸음을 멈추지 않고, 조금 더 가다보니 누구도 밟지 않은 황홀한 길을 발견할 수도 있는 그런 인생.
다른 사람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고 비난 받지 않고,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포기해야하는 관계도 없을 수 있는 그런 유토피아를 꿈꿔본다. 서로를 비교하면서 상처받거나 위축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억지로 똑같이 해야 할 필요도 없는 삶을. 남들처럼 직장에 다녀야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매일매일 의문을 가지며 살지 않아도 되는 삶. 남들과 비슷한 결혼을 해야해서 지금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삶. 걸어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차를 타고 가는 사람,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 모두 교통질서만 잘 지킨다면 부딪힐 일 없는 땅 위의 흐름처럼 그렇게 서로 '질서'라는 것만 신경쓰고 살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그런 세상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내가 만들 수 있는 유토피아라는 차원이 있다면 생애주기라는 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