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없이는 5분을 넘기기 힘들다...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는데, 그 중 매일 6시간 넘는 시간이 미팅이었다. 원래 회사 일의 절반이 미팅이라고 하지만, 특히나 다른 사람들하고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기빨림'이 생겼고, 금요일 오후에는 거의 탈진한 채로 퇴근했다.
이대로 집에가면 주말 내내 기절해 있을 거 같아서, 목욕탕을 찾았다.
온탕에 몸을 담그자 뭉친 몸이 녹아내렸고, 땀이나 좀 더 빼려고 사우나에 들어갔다.
뜨거운 공기에 몸이 한 번 더 풀렸다. 열기에 쪄진 나무 냄새.
자리에 조심히 앉아서 벽을 보는데, 모래시계가 걸려 있어야 하는 벽이 비어 있었다. 모래시계를 걸어두는 고리는 있는걸로 봐서, 깨뜨렸거나 망가진 것 같았다.
뭐, 땀을 쭉 빼고 나가야지
하고 앉아있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다.
시계가 없는 상황에서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나 말고도 다른 아저씨 둘이 비슷한 시간에 들어갔는데, 이 분들도 사우나 꽤나 즐길 포스였지만 좀 힘들어 보였다. 어릴 때, 아버지랑 사우나를 가면 아저씨들끼리 미묘한 경쟁심이 발동하는지 조금이라도 더 버티는 모습을 봤었다. 그런데 모래시계가 고장난 사우나에 같이 들어간 사람들은 경쟁심이 불 붙기도 전에 다들 헉헉하면서 밖으로 튀어나갔다.
휴대폰이나 시계를 다 두고 들어가는 사우나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모래시계뿐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없으니, '한 100까지 세면 1분이겠네, 조금만 더 참고 10분 채우자' 같은 목표를 정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1분짜리 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5분이라는 장기(?) 목표에 대한 성과를 평가할 수가 없게 된다.
우리는 어떤 일들에 대한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목표를 할당 받는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집에서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뭔가를 말할 때도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나 수단이 없는 경우에는 성과를 내기 위한 행동을 지속하기도, 또 그렇게 만든 성과를 평가하기도 어렵게 된다.
모래시계라는 단순한 측정장치의 부재는 사우나에서의 5분을 힘들게 만들었다. 일상에서는 이런 일들이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