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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아 Apr 20. 2022

깨찰빵이어서 다행이다

한 권을 채우자

어렵게 꺼낸 "괜찮아."가 상대에게 잘 닿았을 때. 내가 어른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잠깐 사회적으로 쓸데없이 몸만 자란, 속은 텅 빈 깨찰빵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논리 있게 말하지 못하고 누구 하나 설득할 수 없이 그저 떼굴떼굴 굴러다니기만 하는 깨찰빵. 그마저도 곳곳에 박혀있는 깨 때문에 제대른 방향으로 굴러가지 못하는 깨찰빵. 표면엔 여러 크랙이 가득한 깨찰빵. 그래서 속이 가득 찬 스콘 같은 반질한 어른과 단단한 어른을 시기 질투했다. 


"그래도 어른인데 너무 속 없는 얘길 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솔직한 이야기는 속 없는 이야기가 되었고 다시 솔직해지기 어려워 치사하게 부록이 되었다. 그 부록을 조심히 전해줬던 날 산책이라는 단어를 받았다. 그래. 혼자 밤에 산책 한번 해보지 않는 이가 무슨 맛이 있겠나 싶어 야심 차게 향했다. 처음 걸어보는 목적 없는 걸음은 천천히가 어색했고 곧 길을 잃었다. 시간은 밤이고 이 골목길엔 나 혼자고 지도는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거고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 떠뜸떠뜸 미로에서 벽을 짚고 길을 찾듯 한참을 돌고 돌니 한강이 보였다. 아는 길이 나오자 안도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목적 없는 걸음을 걷다가 결국 목적지를 만들어냈구나. 돌아오는 길을 모르고는 아무 데도 출발할 수 없는 겁쟁이구나. 이래서야 속이 채워질 틈이 없네.


사실은 전화를 걸고 싶었다. 메시지보다 전화 전화보다 만남인 옛날 사람이니까. 그런데 만남보다 전화 전화보다 메시지가 매너인 시대에 살고 있어서. 어느 정도가 무례 범주인지 고민하기엔 머리가 아파서. 또 어느 정도 길이의 메시지가 무례 범주인지 생각하기엔 승질이 나서.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한참 후에 긴 답변이 왔고 시간이 걸린 긴 답변을 보냈다. 적은 수의 긴 답변을 천천히 주고받았다. 통화를 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어렵게 어렵게 괜찮아를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괜찮아?라는 질문을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만큼 바보 같은 질문도 없다고 생각해서. 안 괜찮다고 하면 어떡할 건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비슷하게 괜찮아.라는 위로도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만큼 무책임한 말은 없다고 생각해서. 안 괜찮으면 어떡할 건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도.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아도 결국엔 물어보게 되고 위로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걱정 표현이라서. 무례 범주를 무시하고 정말 걱정되어 어렵게 어렵게. 그 표현이 나의 나이와 합쳐져서 상대에게 잘 닿게 되면 그때는 그래도 내가 깨찰빵이라는 몸뚱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스콘이었으면 이렇게 어렵게 표현하진 않겠지. 하지만 깨찰빵이어서 괜찮아가 어렵고 괜찮아의 대답으로 속을 채워 나갈 수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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