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주 1회 투자 검토대상 기업에 상주하며 실사를 시작했다. 재무자료 검토와 함께 기업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면밀히 파악하고자 하는 과정이었다. 첫 업무는 창업 멤버 중 한 명이자 회사의 관리직을 책임지고 있는 담당자와의 깊이 있는 대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기업은 개인사업자로 출발해 여러 브랜드의 총판을 거쳐,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의 라이선스까지 확보하며 앞으로가 더 기대가 되는 회사다. 이런 성과를 이루어낸 자수성가형 경영진의 열정과 책임감이 향후 사업의 발전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었다.
회사의 성장 과정은 사무공간 확장에서도 잘 드러났다. 처음 한 층으로 시작했던 사무실은 이제 여러 층으로 확장되어, 1층과 5층 등 여러 공간에 분산되어 있다. 이렇게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신규 인력의 충원과 조직 확대가 계속되고 있다. 기업의 연혁을 살펴보고 부서별 역할과 책임(R&R)을 파악하며 매출 구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던 중, 자연스레 투자 유치 시 필요한 개선 사항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관리직 담당자의 대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공간에 대한 투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조직이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고 봐요. 사무실이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다 보니, 서로의 일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떨어지기 쉬워요. 저도 면접을 보고 직접 뽑은 직원들인데, 각자의 강점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물리적 거리가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일 진행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많죠. 공간이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요즘 절실히 느껴요."
이 대화 속에서 느낀 바는 단순한 물리적 통합의 중요성을 넘어, 공간이 조직 문화와 구성원 간 신뢰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사옥 투자는 공장이나 기계장치처럼 즉각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이상의 무형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빠르게 성장하는 조직에서는 물리적 공간의 분절이 부서 간 소통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의 혁신 역량과 성장 동력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제 주 1회 상주 실사를 통해 막연했던 초기의 고민은 보다 구체적인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부서의 핵심 인재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재무제표나 경영 보고서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기업의 잠재력과 내재된 가치를 발견해내고자 한다. 현장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투자자로서 기업의 가치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서도호의 카르마, 바닥에서 위로 올라가 보면 ‘나’의 어깨에 앉아있는 나의 업보들, 혹은 무수히 많은 조상들의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있기까지 기여한 존재를 보여주며 지난 세대, 시간과 끊임없이 관계 맺고 있음을 드러낸다. 마치 나무의 뿌리, 가지, 잎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작가는 이러한 상호 연결성을 ‘가계도(family tree)’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카르마>는 서로에 대한 의지, 존재의 기원 등을 보여준다.
https://www.mmca.go.kr/artResearch/newsLetterInfo.do?nlId=202201280000719&nlCd=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