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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YEU Weekly

한국형 PE의 미래는 ‘행동주의 파트너십’

구조적 변화에 베팅하는 투자 전략

by 정진

최근 홈플러스와 고려아연 사례를 보며, LBO의 본질과 행동주의 펀드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마침 일본 나라(nara) 지역을 여행 중인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KKR을 기준점 삼아 투자에 대해 다시 한번 정리해보게 됐다.




KKR은 전통적인 의미의 행동주의 펀드는 아니다. 엘리엇이나 서드포인트, 아이칸처럼 소액지분을 가지고 언론 플레이를 펼치고,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을 강하게 압박하며 단기적인 주주가치 상승을 도모하는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있다. 그러나 KKR은 투자 이후 피투자기업에 대한 깊은 개입과 구조적인 변화 추구라는 점에서, 행동주의적 성격을 분명히 내포하고 있다. 다만 그것은 파괴가 아닌 ‘친화적 행동주의(Friendly Activism)’라 부를 수 있는 방식이며, 기업을 흔들기 위한 개입이 아니라 함께 키우기 위한 개입이라는 차원에서 그 정체성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런 철학은 KKR이 아시아 시장에서 보여주는 투자 방식에 잘 드러난다.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최소한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상태에서 전략 수립, 운영 개선, 글로벌 확장, 자본구조 최적화 등을 통해 기업의 내재가치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린다. 싸우기보단 설득하고, 부수기보단 구축하며, 단기 수익보다는 장기 성장에 베팅하는 방식이다. 물론 실행 과정에서 잡음은 생길 수 있지만, 추구하는 방향과 당위성은 분명하다.


이러한 방식은 행동주의가 지향할 수 있는 한 형태이자, 한국 시장에서 PE가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기도 하다. 한국의 상장사, 혹은 비상장 중견기업들에는 여전히 지배구조의 비효율성과 저평가 요소가 널리 존재한다. 그러나 서구형 행동주의가 들어서기에는 정서적, 문화적 장벽이 높다.


오너 중심의 폐쇄적 기업문화, 외부 투자자에 대한 경계심, 공개적인 경영 비판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은 전통 행동주의가 작동하기 어려운 토양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아까 언급한 친화적 행동주의, 다시 말해 기업과의 신뢰 기반 개입 전략은 실질적으로 유일한 대안이자, 유효한 전략이 될 것 같다.


나는 이를 한국형 PE 전략의 다음 진화 지점으로 본다. 전통적인 바이아웃 전략, 재무적 투자자(FI)의 논리, 그리고 전통 행동주의 펀드의 단기적 전술을 넘어선,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이 모델은 단순히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전략적 사각지대를 메꾸고, 내부 역량을 재편성하며,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함께 설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실제로 프로젝트르 하며 만나온 중소·중견기업의 오너는 대개 자신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회사를 키워왔기 때문에 외부 투자자에게 경계심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스템 고도화, 회계 투명성, 브랜드 전략, 수출 채널 구축, 후계자 승계 등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영상의 난제들이 존재하고, 이 지점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실행해주는 투자자가 있다면 그들은 마음을 연다. 그 문을 여는 열쇠는, ‘나를 흔들러 온 사람이 아니라 도우러 온 사람’이라는 인식이 아닐까 싶다.


나는 PE가 단순히 자본을 제공하는 존재를 넘어서, 기업 내부의 ‘행동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컨설팅 파트너, 전략 파트너, 데이터 파트너, 운영 파트너로서 먼저 관계를 맺고, 이후 전략적 지분 투자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 파트너로 진화하는 방식. 이 구조를 반복 가능하게 만든다면, 전통적인 펀드 구조를 넘어, 펀드를 조성하지 않고도 전략적 보유지분(Strategic Holdings)을 축적해나가는 새로운 투자모델이 가능해진다. 이 방식은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도 탁월할 뿐 아니라, 소수지분으로도 깊은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주의형’ 구조다.


KKR의 Co-CEO인 Scott Nuttal 과 Joseph Bae, 출처: KKR

나는 회사를 운영하며 그 전략을 구현해나가고 있다.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그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이 기업이 가지고 있던 비효율을 단기적으로 압박해서 수익을 내기보다, 회계 체계 정비, 유통 전략 재편, 브랜드 방향성 재정립 등을 통해 기업 내부의 구조적 변화와 성장을 유도하고 있다. 이는 단지 기업 하나의 변화가 아니라, 투자자가 기업의 진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증거다.


이 모델이 잘 정착된다면, 단지 성공적인 딜 하나를 넘어서 한국의 중소·중견기업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실천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이유는 그 변화의 현장에, 행동주의자이자 파트너로서 깊이 개입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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