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바람과 함께

당신의 그림에서 바람을 떠올리며

by knokno
IMG_2988.jpg


2024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좋은 일도 많았고 나쁜 일도 많았던 올해를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기념하고 싶었고, 늘 머릿속에만 머물렀던 계획을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가까운 근교로 미술관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경기도권으로 가는 것은 언뜻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심에서 평생을 살아온 내게는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서울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약속을 잡으면 어디든 30분 내에 도착하고, 필요한 물건은 10분 거리에 있거나 쿠팡의 새벽 배송으로 해결된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면, 차의 시동을 걸고 서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


내가 처음 향한 곳은 원주에 있는 뮤지엄산이었다. 당초에는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곳을 가려 했지만, 양평과 가평에 위치한 미술관들이 하나같이 약속한 듯 문을 닫아버려 후보지에 있던 이곳을 가게 되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거리가 멀어서일 뿐, 강원도에 위치한 미술관 중 뮤지엄산은 단연 돋보이는 곳이며, 특히 겨울에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더 기대하게 되었다. 한 지인은 “뮤지엄산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야 한다”고 했는데, 그 웅장한 공간이 겨울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IMG_4193.jpg



뮤지엄산에서는 소장품 전시를 열고 있었다. 25년까지 이어지는 전시 주제는 ‘모든 것은 변한다’ 였는데, 미술관 안에는 연말의 분위기와 주제가 뒤섞여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공기를 자아냈다. 도착하기 전에는 거의 사람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평소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사람들이 있었고 가족, 연인 등 구성비도 다양했다. 문득 이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따뜻해졌다.

전시 중인 작품들은 대부분 한국의 근-현대 미술이었다. 첫 번째 갤러리에는 권순철, 이대원, 장욱진 등의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었다. 서양의 성모상을 본따 동양의 미를 가한 그림, 거대한 캔버스에 검은 붓으로 나이테 같은 얼굴의 주름을 그린 그림들을 지나쳤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는 한국 미술, 아니 한국 예술 전반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달았다. 나름 예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첫눈에 반해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작가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였고, 그의 그림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묻어나와 관객으로 하여금 정답고 따스한 마음을 가지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르누아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림을 보고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원했다.

그런 점이 한국의 예술로부터 멀어지게 했던 것일까? 가끔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우리 나라의 10대들에게 열정적이고 희망찬, 혹은 치열하고 의식적인 지성의 고찰 같은 이야기 대신 한가하게 노닥거리는 귀족의 시, 설렁탕을 사왔는데 먹지도 못하는 이야기 , 삼대의 비극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하곤 한다.



IMG_3016.jpg 이우환, <바람과 함께>


도슨트를 따라 두 번째 갤러리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우환 작가의 <바람과 함께> 였다. 손을 휘저으며 설명하던 도슨트가 옆에 걸린 작품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못박힌 듯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 무리가 갤러리를 떠난 뒤에도 계속. 고요함을 되찾은 공간에서 나는 벤치에 앉아 작품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처음에 느낀 것은 혼란스러움이었다. 1900년대 만주의 어딘가 혹은 먼지가 휘날리는 도로가 떠오르는 황토색 이미지 위로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는 선의 아우성이 들렸다. 짙어지기도 하고 옅어지기도 하는 선들은 마치 삶의 파노라마처럼 열정적이기도 했지만, 어쩐지 아련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가가 저 많은 선으로 담고자 했던 이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아직도 이 작은 별 어디에서 한곳으로 나아가다 꺾이고 부딪히길 반복하고 있을까? 아니면 빛을 잃은 채 사그라들었는가? 아무런 연고도 없을지언정 잊혀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삶은 유한하므로 아름답지만, 이 땅의 공기를 호흡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며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는 일들을 마침내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안타깝다.

그것은 혹 유대이기도 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바람이 우왕좌왕하며 굽이치는 몸짓들은 결국 공유된 소망과 행복을 향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감각이기도 했다. 사방에서 꿈틀대는 열정의 번뜩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카페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고 있을 때 불현듯 그것을 느낀다. 제각기 커피 잔을 관우의 술잔처럼 옆에 세워 놓고, 노트북이나 책과 노트를 펴들고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향해 나아가고 그것이 모여 마침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 되는 것 같아 벅차오르기마저 한다.



바람이 불어와

더이상 못 버틸 것 같아

다시 채워주면 안 될까

내 맘은 굳어가

의미를 잃은 것 같아

- Heize and Gaeko. “Jenga”


내게 바람은 시련이었다. 매서운 겨울을 지나도 봄은 꾸물거렸다. 손에 잡힐라치면 운명의 장난처럼 손끝에 온기만 남기고 멀리 달아나버렸다. 대신 돌아온 건 남은 한기를 꾹꾹 눌러 담은 바람이었다. 추위가 애달팠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몸을 더 웅크리고, 이윽고 고개도 들지 못하는 상태로 쭈그려 앉아 죽은 듯이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미련을 놓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듯이…


오랫동안 그림 앞에서 당신의 바람과 나의 바람을 생각했다. 삶과 바람은 어쨌든 불기 마련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때로는 장애물을 만나 방향을 바꾸면서도 끊임없이 불어간다. 나는 명랑함, 지성, 그리고 다정함 같은 것들이 스스로를 다음 장소로 향하도록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단수이면서 동시에 복수로 존재하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제 작품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절대 멈춰서지 않을 것. 삶의 제 1원칙이다.

keyword
구독자 10
매거진의 이전글미술 작가가 의미를 창조하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