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조지아 여행기-8

8. 카즈베기-트빌리시 (3.23)

by Local Park


카즈베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산 꼭대기에 위치한 '게르게티 성당(Gergeti Trinity Church)'과 성당까지 오르는 트래킹 코스, 그리고 룸스 호텔이다. 카즈베기에 오는 도중 외교부로부터 눈이 많이 왔었으므로 산행에 조심하라는 문자가 왔다. 카즈베기 트레킹 코스 후기는 대단한 찬사들 뿐이다. 조지아를 가리켜 저렴이 버전 스위스라고 할 때, 꼭 등장하는 곳이 카즈베기의 트래킹 코스다. 그 멋진 풍광을 나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산이라면 질색하면서도 여기까지 왔지만, 이 날씨에 나 홀로 산행은 위험하기도 하고, 엄두도 나지 않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몇 년 전 중국 여행 중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경험 이후, 혼자서 산에 가는 것의 위험성을 깊이 배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각이기에 숙소에서 나섰는데, 전쟁이 휩쓸고 간 도시처럼 황량했다. 사람들을 찾아 룸스 호텔에 가보기로 했다. 목 좋은 곳에 위치한 호텔로 테라스의 카페는 투숙객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가게들 보다는 물론 비싸지만 조지아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식사와 차를 마실 수 있다. 나는 별로 배고프지 않아서 커피를 마셨다. 조지아를 다녀왔다고 했을 때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캔음료 '조지아 커피'의 그 '조지아'가 이 '조지아'냐는 질문이었는데 나도 잘 몰라서 찾아보았다. '조지아 커피'는 일본 코카콜라에서 론칭한 커피 브랜드인데, 코카콜라 본사가 있는 미국 조지아 주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결국 이 코카서스 국가 '조지아'와는 아무 관련 없는 셈이다.


듣던 대로 룸스호텔에서의 풍경은 너무 좋았다. 성수기의 푸른 잔디로 깔린 풍광도 멋졌겠지만, 이 쓸쓸한 겨울산 풍경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호텔 테라스에서 커피라니 이 무슨 호사냐! 이곳이 유명 관광지긴 한 건지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인을 봤다. 4인 가족 여행객과 중년 여성 두 분이었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한국인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기 때문에 반가웠지만 인사를 나누지는 못 했다. 카즈베기에 오면서 1박만 할지, 2박을 할지 고민했었는데 눈 때문에 게르게티 성당을 가 볼 엄두를 못 내게 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보였다. 동네는 너무 적막하고 쓸쓸해서 돌아다닐 엄두도 안 나고, 오늘 하루 경치 구경은 많이 했기 때문에 내일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트빌리시로 돌아간 뒤 어느 도시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 잠이 들었다.





카즈베기에서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트빌리시행 뿐이었다. 카즈베기뿐만이 아니라 조지아의 대부분 소도시은 서로 연결돼있지 않고 트빌리시를 거쳐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경기도에서 다른 경기도로 이동할 때 대부분 서울을 거쳐 가는 것처럼) 카즈베기에 도착했을 때 촬영해 둔 버스 시간에 맞춰 터미널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과 상관없이 차가 꽉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조지아 공통인 듯하다. 한참 기다려 차가 출발하는데 어제 룸스 호텔에서 본 한국인 중년 여성 두 사람이 차에 탔다. 며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나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고 인사를 드렸다. 두 사람도 내가 한국인인지 아닌지 긴가 민가 했었다면서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렇게 트인 대화는 트빌리시 올 때까지 이어졌다.


두 분은 한국에서 온 것 이상으로 나와 같은 도시, 심지어 나와 같은 동에 살고 있는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이었다.(이런 인연이!) 4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대화는 정말 재밌었다. 두 사람은 베트남에서 시작해 네팔을 거쳐 러시아까지 간 뒤 동유럽으로 내려왔다가 조지아까지 도달하며 100일 넘게 여행 중이었다. 내가 살면서 직접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 것 같다. 반년 동안 동안 아프리카 일주를 했었고 , 몇 달간 미국 서부 횡단을 했었으며, 남미 대륙 일주도 했었고, 아이슬란드에서 1개월 살기, 인도 배낭여행 등등. 두 분은 아는 언니 동생 사이라고 하셨고 약 50대 정도의 연배로 보였는데, 가뿐히 매고 있는 큰 배낭을 봐서도 나보다 체력이 월등히 좋아 보였다.


나는 원래 트빌리시로 간 뒤 '메스티아'라는 조지아 북부 도시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두 분은 조지아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루트였기 때문에 메스티아를 방문했었는데, 그곳은 카즈베기보다 눈이 훨씬 더 많이 와서 차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했다. 현재는 그런 날씨 상태라, 이 도시에 기대하는 자연 풍광을 접하기도 힘들거니와 돌아다니기도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메스티아를 방문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방문하고자 했던 다른 도시인 바투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두 분도 향후 일정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셨는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인근의 코카서스 국가인 '아르메니아'가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것을 알려드리게 됐다. 원래 아르메니아는 입국 시 비용을 내고 비자를 발급받아서 입국할 수 있었는데 내가 출국하기 단 며칠 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국가로 전환됐다.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이번 여행은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두 분은 길게 여행 중이라 그 뉴스를 접하지 못했다가 나와 대화 중에 알게 됐는데, 그 길로 두 분은 아르메니아로 가기로 결정했다. 몇 시간의 긴 대화 후 카즈베기로 출발할 때 왔었던 트빌리시의 버스 터미널로 도착했다. 나는 바투미로, 두 분은 아르메니아로. 즐겁고 건강한 앞으로의 여행을 빌어주며 우리는 헤어졌다.


카즈베기 숙소의 고양이
거리를 자유롭게 노니는 소들. 황량한 카즈베기의 거리.
카즈베기의 상점. 똑똑똑
룸스 호텔 테라스에서 보이는 카즈베기 전경.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게르게티 성당.
멋진 카즈베기의 풍광
산 아래 위치한 룸스 호텔의 멋진 전경.
구름이 잔뜩 낀 그날의 날씨.
출세했네. 호텔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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