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조지아 여행기-9

9. 트빌리시-바투미 (3.23-24)

by Local Park
20.jpg 우중충한 날씨의 바투미


한국인 여행자 두 분과 헤어지고 터미널 안을 둘러보던 중, 떠나기 직전 마지막 호객을 하는 바투미행 마슈롯카가 보였다. 이미 4시간을 불편한 의자에 앉아 온 터라 엉덩이가 아팠는데, 숨 쉴 틈 없이 7시간가량 걸리는 바투미행 마슈롯카를 타게 된 것이다. 나는 마지막에 탄 터라 그중에서도 좋지 않은 자리인 덩치 큰 두 남자 사이에 끼여가는 자리에 앉게 됐다. 바투미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지루했지만, 이동 중에 본 조지아의 자연 풍광은 참 좋았다. 조그만 마트와 엄청나게 더러운데 요금까지 받는 화장실이 있는 휴게소를 딱 한 번 들르고, 약 7시간이 걸려 바투미에 도착했다. 그날 총 11시간 정도 버스만 탄 셈이었다.



조지아의 서쪽 면은 흑해와 닿아있는데, 바투미는 그 흑해 연안의 휴양 도시다. 시골인 카즈베기에서 너무 지루했던 터라 번화한 바투미에 온 것인데, 처음 도착한 바투미의 모습은 유흥의 도시 같았다.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즐비한 환전소들. 밤이 다 된 시간에도 길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어렵사리 예약해 논 호스텔을 찾아 체크인을 했다. 조그만 규모에 6인실, 4인실 도미토리룸이 2개 있는 숙소였는데, 좀 더 쾌적하게 쉬고자 4인실을 선택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숙소는 깔끔하고 침구류도 깨끗하고 보송보송했다. 호스트도 친절했다. 굉장히 작은 규모의 호스텔이라 주방 바로 옆에 내가 묵는 4인실이 있었고, 6인실은 우리 4인실을 거쳐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즉, 우리 방은 10인실이나 다름없는 데다 문은 양 쪽으로 두 개나 있어서 여닫는 소리만 시끄러운 방이었다. 또 이 숙소는 어쩌다 다들 친해진 건지 이른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요리를 해 먹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 방으로 끊임없이 음식 냄새와 연기가 들어왔고, 방음 기능이 거의 없는 문이라 웃고 떠드는 소리도 무척 시끄러웠다. 또 6인실에 들어가기 위해 들락날락하는 사람들까지. 그래도 호스텔 분위기는 호스텔답게 젊고 활기찼다. 나는 긴 이동의 여독으로 씻고 바로 잠을 청했다.




21.jpg 조지아의 명물 하차푸리!


나는 조지아에 와서 첫날 오후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햇빛을 보지 못해서 맑고 따뜻한 날씨가 그리웠다. 바투미는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의 휴양도시라고 해서 날씨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바투미의 일기예보는 내가 도착한 그날로부터 쭉 구름 끼거나 비 오는 날씨였고, 첫 관광을 나선 그날 아침부터 예보대로 날씨는 우울했다. 아침 10시경에 숙소에서 나섰는데 주말이라 가게들 대부분이 닫혀있고 거리가 한산했다. 바투미의 골목은 여느 유럽의 골목 같았다. 정교회 성당만이 조금 다른 특징이랄까. 유럽 스퀘어와 피아자 스퀘어 모두 숙소 인근의 관광지였는데 작고 아담한 광장이었다.



조용한 거리를 떠돌다 바닷가로 향했다. 웬 강아지가 한참 졸졸 따라다녔는데, 바투미 거리에는 귀에 노란 표식을 단 개들이 많았다. 인접국가 터키에서는 많은 길 개, 고양이들을 시에서 관리하고 관리 중인 개들 귀에는 노란 표식을 달아 놨었는데 조지아도 비슷하게 개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지저분하지 않고 느긋한 것이 거리의 삶도 살만해 보였다. 한참 따라오다가 재미 볼 게 없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직 아침 시간이라 바닷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터키에서도 흑해를 본 적이 있지만, 왜 이름이 흑해-black sea 인지 잘 몰랐는데, 바투미의 흑해는 물 색이 짙었다. 그날 바람도 많이 불었고 파도도 높았는데 그 때문에 더 검게 보였을 수도 있다. 바투미의 해변은 모레가 없고 대부분 자갈밭이었다. 긴 해변을 따라 길이 잘 조성돼있고, 사진 찍을 수 있는 조형물들이 간간히 있다. 해변 인근에 야자수가 심긴 큰 공원도 조성돼 있고 이런 부분은 관광 도시의 면모가 살짝 보였다.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 다니다 점심시간 즈음이 돼서 유명한 하차푸리 맛집을 찾아갔다.



하차푸리는 조지아 전통 음식인데, 타원에 끝이 뾰족하고 가운데가 오목한 빵 가운데 치즈를 가득 채운 뒤, 계란이나 버터를 더해 먹는 음식이다. 엄청난 치즈 폭탄의 충격적인 비주얼인데 크기도 엄청나서 삼시 세끼는 먹어야 할 양 같았다. 식당에서 음식을 기다리며 다른 손님들 테이블을 관찰한 결과, 끝까지 남김없이 다 먹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실 재료는 단순히 빵과 치즈니 예상한 맛이 있었는데, 하차푸리는 생각보다 많이 짰다. 늘 한국인의 염분 섭취에 대한 우려 기사를 많이 봐서 여태껏 우리나라가 제일 짜게 먹는 나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지아에서 먹는 모든 음식이 다 짜게 느껴져서 찾아보니 어떤 통계에 의하면 조지아는 세계 나트륨 섭취 순위에서 한국보다 더 상위에 랭크된 국가였다. 조지아는 산이 많고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어서, 음식을 짜게 만들게 됐다는 설이 있다. 최대한 열심히 먹었지만, 난 하차푸리를 5분의 1도 먹지 못하고 많이 남겼다. 그 길로 여기저기 유유자적 다니다 대학교 앞을 지나고, 또 다른 예쁜 공원에서 한참 앉아있고 사람 구경하고. 커피가 몹시 고파져 쉴 예쁜 카페를 찾던 즈음에 이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 비까지 내리다니. 너무한 처사의 날씨였다.


DSC05388.JPG 바투미로 향하는 길 들른 휴게소의 댕댕이.
DSC05395.JPG 바투미 해변가의 페리스 힐. 밤에 멋지다.
DSC05432.JPG 이것이 흑해의 바닷물 색깔.
IMG_20180324_094400.jpg 줄 것이 없는 나를 졸졸 따라오던 댕댕.
IMG_20180324_095316.jpg 흑해 인근의 고층 빌딩들. 바투미는 조지아 주요 상공업 도시이기도 하다.
IMG_20180324_111800.jpg 갓 나온 하차푸리. 하차푸리의 거대한 비주얼.
IMG_20180324_113042.jpg 다 먹은 하차푸리. 정말 열심히 먹었지만 이것밖에 먹지 못했다.
DSC05442.JPG 광장. 비가 곧 쏟아질 기세다.
IMG_20180324_130242.jpg 비를 피해 들어온 바투미의 예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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