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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do Lee Mar 02. 2023

From Baltimore to New York

왜 뉴욕으로 이사를 왔나요?

뉴욕에서 살기 시작하면 자주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하게 된다. 특히 처음 정착을 하고 이곳저곳 (친구들을 통해 소개받는 새 친구들 혹은 동네 세탁소나 그로서리스토어의 사람들과)에서 대화가 시작되면 꼭 이 질문을 듣게 된다.


"어째서 뉴욕에서 살게 되었나요?"


사람들은 이 질문으로 뉴욕이 얼마나 매력 넘치는 곳이고, 그 사실을 이방인인 나에게서 들어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의 100% 이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뉴욕으로 이사 온 이유는 뉴욕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저 없이 말하면 모두가 "뉴욕이 안전하다고요?"라고 다소 실망한 듯(?) 되묻는다. 이 또한 거의 100%로 일어났던 일이다.


음. 내가 어째서 뉴욕으로 이사를 갔더라?


 



2013년 7월 6일, 엊그제 끝나버린 독립기념일의 여운과 뜨거운 햇살의 나른함이 뒤범벅된 볼티모어 Lanvale Street에서, 나는 문자 그대로 죽을 뻔했다. 문제는 당연하게도 내가 볼티모어에 머물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 테다. 볼티모어는 디트로이트와 더불어 심각한 불황과 치안문제를 안고 있는 실패한 미국 도시의 표본 중 하나다. 40%가량의 충격적인 주거 공실률, 매년 순위권 안에 드는 강력범죄 비율등의 문제를 떠안고 있는 이 도시의 위험성을 나는 너무 얕봤던 것이다. 


집 바로 앞의 공동묘지로 숨어드는 마약상인들과 그들을 쫓는 경찰헬기, 보통의 승용차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나오는 사복경찰등을 늘 보며 지냈음에도, 어째서 그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것일까? 




그날, 나는 볼티모어에 남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을 전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MICA,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의 졸업식은 5월에 끝났지만, 앞으로의 거취와 전시준비 그리고 비자문제등을 하나하나 처리해야 했기에 나는 작은 집을 잠시간 빌려 볼티모어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급한 일들을 모두 처리한 후, 앞으로 자주 활동하게 될 서부로 이사를 갈 것인지 아니면 아무래도 생활비가 저렴한 이 볼티모어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제3의 선택지가 나타날지, 적어도 그날까지 아무런 예측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폭염에 가까운 날씨에 나는 에어컨을 풀파워로 켜 놓고도 거의 옷을 벗은 채로 컴퓨터 앞에 앉아 비자 관련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비자 관련 서류는 미국이니 어쩌니를 떠나 일단 관공서용 문서이기 때문에 작성할 때 아주 신경이 쓰였고, 나의 신경은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빌렸던 집의 뒷마당을 찍은 사진 | 만만한 동네가 아닙니다


그렇게 서류를 작성하던 두 시 무렵, 집의 1층에서 온통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룸메이트들이 학교에서 돌아왔겠거니 생각하고 열린 방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때였다. 내 머릿속에 '이건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든 것은.


방문을 가운데 끼고 나와 마주한 사람들은 내 생전 처음 보는 흑인들이었다. 한 명은 농구공을 들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째서 남의 집을 털러 들어올 때 농구공 따위를 들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그 흑인 일당을 처음 봤을 때 떠오른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비자서류를 작성하느라 신경이 곤두서있던 나에게 그 이상함은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방어기제로 작용하지 않고 되려 짜증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 자식들 대체 어떤 친구들을 데려온 거야? 가뜩이나 정신집중이 안되는데 저놈들은 대체 뭐란 말이야?' 이런 짜증이 솟구친 나는 대뜸 소리를 꽥 지르고 말았다.


 "Who the fuck are you looking for!? Eduardo? huh?"


약 2초간의 긴 정적이 흐른 후, 그제야 일갈을 내지른 나도, 그리고 그 흑인 일당들도 '뭔가 이상하다.'에서  '뭔가 아주아주 이상하다?!'라고 사고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 같았다. 그들에게는 빈 집이었어야 할 곳에 왠 벌거벗은 동양인이 소리를 꽥 지르고 있는 상황이, 그리고 나에게는 정말 난생처음 보는 흑인 무리가 나를 바라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광경이 펼쳐졌던 것이니까.


그리고 찰나의 그 순간 그들은 몸을 돌려 우당탕탕 계단을 내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머릿속이 헝클어져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아 이 신경 거슬리는 상황은 대체 뭐야? 에두아르도나크리스가 집의 문을 안 닫고 가서 저런 것들이 멋대로 집에 들어온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순간이 얼마나 위험했던 순간이었나를 인지조차 못하고 말이다.


나는 1층으로 내려가며 룸메이트 중 하나인 크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화부터 냈다. "야 크리스! 너 문 안 닫고 학교 갔냐? 방금 집에 웬 이상한 놈들이 들어왔었다고!"라고.


"뭐라고!?!" 크리스는 크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가 곧바로 침착하게 내게 말했다. "너 괜찮냐? 안 다쳤냐? 그 이상한 놈들이 물러간 게 맞아? 당장 911에 전화해!"




그 통화 이후 집안의 문을 꼭 걸어 잠그고 911에 전화해 집안에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왔었다고 신고를 하고 경찰들이 집에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약 5분간의 시간 동안, 그제야 나는 몸이 덜덜 떨려왔다. 내가 집에 없었으면 집은 홀랑 다 털렸을 것이란 가정 그리고 그들 무리가 조금이라도 다른 행동을 했더라면 말 그대로 내 목숨이 온전히 붙어있지 못했을 것이란 가정을 그때서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건을 당한 Lanvale street | 벽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결국 빈집일 뿐이다




이 일이 있은 이후 2주 동안 나는 뉴욕으로 올라가 새로 살 집을 구했고, 다른 룸메이트 셋은 뿔뿔이 흩어져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했다. 사실상 이 사건이 없었다면 나는 볼티모어에 그대로 둥지를 틀었을 수도 있고, 저 멀리 미국 서부지역에 새 보금자리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정신 번쩍 드는 사건이 있은 후엔 가능한 한 빨리 새 살 곳을 정해야 했기에 볼티모어에서 가깝고 안전(?)한 뉴욕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이후로 나는 뉴욕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 대부분이 물어보는 "뉴욕에서 살기로 한 이유가 뭔가요?"에 대해 "뉴욕이 안전하니까요!"라고 활짝 웃으며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이 안전하다고요?" "그럼요. 전 볼티모어에서 이사 왔어요." "아!" - 바로 이렇게, 인사말이 간결하고도 완전하게 끝나게 되니까, 그것 하나는 정말로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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