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치 북클럽 <다독다독>
만약, 어떤 '신념'에 관한 이야기라면, 독서모임을 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것이 독서모임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는 분위기가 된다면 조심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빨치산의 딸'로 알려진 그분의 글이라는데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조금 마음의 부담을 주기는 했다. 그렇지만 궁금하기도 했고, 멤버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어도 지금의 북클럽이 1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라도 서로 나누고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솔직한 마음 깊은 곳에서는 화제성이 있는 책으로 책모임에 활력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다행스럽게도 북클럽에서 이데올로기나,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역사적 의미를 다루어야 하나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책을 읽고나서는 그 모든 마음이 사라졌다. 내가 읽은 이 책은 뭉클하고, 다정하면서도 유니크한 소설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작가의 태생과 성장과정이 있어서, 허구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작가님은 이 책이 '소설'이라는 점을 누누히 강조하셨다.)
01.
정지아 작가는 이전에도 <빨치산의 딸>로 부모님의 삶을 그린 작품을 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작가 부모의 삶이 담겨 있는 소설인데요.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 소재를 꺼내어 변주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작가를 어떤 마음으로 이해하셨나요?
- 작가 자신에게는 가장 꺼내기 쉬운 주제였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너무나 주관적인 시선의, 자기 자신만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했다.
- 작가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한다.
- 작가는 책 속에서 부모의 사상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하는,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 글을 쓰면서 작가 자신이 해방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우리에게도 sns를 통해 나의 경험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 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와 삶을, 대중들에게 이해시키고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 같다.
- 쉽지 않았을텐데 작가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다.
- 누구나 힘든 경험, 아픈 경험을 하고 나면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그 감정과 이야기를 어딘가에 토로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분을 갖게 되기도 한다. 부모의 이야기를 꺼내고 풀어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을 늘 갖고 살았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어주는 작가가 고맙기도 했다.
- 작가도 자신의 경험을 꺼내는게 쉬워서 썼을 수는 있지만,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도 된다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작가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서 아버지와, 이 세상 사람들과의 화해를 시도했다고 느껴진다.
- 부모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하면 한이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았을 것 같다. 그들의 딸로 태어났기에, 딸이니까 가졌던 어떤 의무감에서 쓰지 않았을까. 기본적으로 정지아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워낙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02.
부모님은 사상을, 빨치산을 자신들의 의지로 선택했지만 소설 속 아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 '빨치산의 딸'이라는 삶을 어쩔 수 없이 살아냈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살아낸 주인공(또는 작가)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셨나요?
- 자신의 사상을 선택하고 평생 그 신념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낸 부모를 보고 자란 딸이어서, 한편으로는 행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 삶을, 올곧은 자세로 바라보고 실천하는 방법을 알려준 아버지의 딸이었기 때문에 행복했을 것 같다.
- 아버지는 좌익이었지만 인간적이고 분별력이 있는 모습으로 살았던 사람이기에, 사상과는 별개로 옳은 사람의 모습을 가졌다. 아버지의 삶도 그랬지만 '구례'라는 지역이 작가에게는 보호막이 되고 한편으로는 위안이 된 것으로 보였다.
- 주인공이 살아낸 삶이 한때는 고단했을지 몰라도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화해하고 이해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빨치산이라는 존재에 대한 역사 속 세상의 시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한 것 같다. 아버지의 인간적인 면이 아름답게 그려졌고, 장례식장의 풍경은 잔치처럼 밝고 가깝게 다가가게는 느낌이었다.
- 이 소설에서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소재일뿐이고, 그저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읽혔다.
- 자신의 삶을 거부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벗어날 수도 있었는데 결국 자신의 삶으로 내재화하면서 살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딸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 자신의 태생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부모의 모습과 사고방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긍정적으로 선택하고 살아낸 것으로 보여진다.
03.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소감과, 오늘 북클럽 시간을 통해 달라진 느낌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격하게 느끼는 저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모습. 내가 알지못하는 타인의 사정... 보이는것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전 누구에게나 좀 더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사정을 듣지않아도 내가 대하는 태도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지않을까요. 사람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상대방을 얼마나 많이 변화시키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 저는 정지아 작가의 삶이 힘들었을거라는, 나만의 프레임을 씌우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부모의 사상과 선택이 세상에 맞지 않은 시대를 성장과정에서 고스란히 겪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그런데 작가님이 선택한게 아픔이나 견디는 게 아니라 그런(올곧은 신념으로 살아낸) 부모를 두어 오히려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었을 거라는 북클럽에서 나눈 이야기가 제게는 신선했습니다. 이데올로기도, 신념도 저마다 자기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것이지 옳고 그름을, 쉬운것과 어려운 것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작가가 빨갱이라는 굴레에 얼마 나 힘들었을까 라는 안쓰러움과 세상이 바뀌어 이런 소설도 가볍게 풀 수 있는 날이 왔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이런 환경이면 실제 소설 속 아리처럼 부모와 거리를 두거나 원망할 법도 한데 정작 본인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 사이가 좋았으며 대학생이 된 후에는 완전히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물리적인 환경보다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이 자녀를 성장시키는데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됩니다.
-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장례를 통해 아버지도, 나도, 어머니도, 친족들도, 이웃들도 삶이라는 굴레에서 해방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도 해방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 어쩌면 부모님을 이해하는 작가는 대인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쩌면 작가로서는 금수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이 책을 보며 갑자기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떤 장례식이 될까 궁금해 졌습니다. 우리 아버지 장례식이 꼭 슬프지만은 않기를... 그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싶어지기도 했습니다.
- 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데올로기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인간적으로 다가 왔습니다. 멋진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이데올로기 이야기를 정면으로 하는 작품이라기보단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지켜보고 견뎌주고 사랑을 나누며 살았는가를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했던 작가님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또 이 세상에 쓰이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 저마다 다른 삶의 무게와 모양 형태 그대로 각자 다 귀하다는 것.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