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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Nov 11. 2023

그림책 키워드 인터뷰 /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얼음 펭귄' 윤나라 작가 인터뷰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집 #얼음 #지구온난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그림책 작가 윤나라입니다.



언제 처음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회화를 전공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아기자기한 느낌과 달리 다소 오컬트적인 느낌의 그림을 그렸죠. 졸업 후에는 작업을 하기보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회사에 들어가 웹디자인과 편집 디자인을 했어요. 미술과 상관없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이었죠. 그러다 보니 마음이 외로워졌나 봐요. 공허했고, 목적이 사라진 것 같았거든요.



그런 때가 있죠, 경험해봐야 나에게 어떤 일이 더 맞는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셨나요?


처음엔 쉬면서 북카페에서 그림이나 그리자,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진로를 고민하던 도중 우연히 서점에서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어요. 당시에 즐겨 보았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그림책 작가로 성공하는 스토리였어서 관심이 가기도 했고요. 이후에 여러 그림책을 찾아보며 ‘그림책은 어린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편견이 깨졌어요. “나는 아기도 아닌데 이 책이 왜 감동적이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런 감동을 받을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그림책 세계에서 제가 알지 못했던 작품성과 예술성을 발견한 거죠.



서양화와 그림책은 매체가 다른 장르잖아요. 특히 그림책은 인쇄 방식이나 제본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그동안 작업하면서 어려움이나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2021년도에 <얼음 펭귄> 원화전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전시를 찾아오신 분들이 그림책보다 원화가 훨씬 좋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 때 아쉬움은 조금 있었어요. 아무래도 그림책은 인쇄 매체이다 보니, 원화의 색감을 100퍼센트는 구현할 수 없다는 점이 어쩔 수 없지만 아쉬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회화는 큰 호수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거든요. 그림책은 그런 면에서 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어서 좋아요.  


2021년 '얼음 펭귄' 그림책 원화전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서양화를 할 때와 달리 또 다른 배움의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보림 출판사에서 진행한 부트캠프에 참여해서 그림책 작업에 관한 교육을 수료했어요. 제가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교육이 더 활발해졌어요. 저는 작년부터 여러 도서관에서 그림책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요, 앞으로도 학교나 도서관, 문화재단 같은 곳에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이 더 많아질 거라고 관계자분들이 예상하시더라고요. 



교육 수료 후에 그림책 한 권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에 작업을 이어 나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는 지금까지 여러 권의 그림책을 내셨는데, 계속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라든지, 동기는 어떤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정식 출간은 2권, 지역 주민들을 위한 홍보 그림책 작업까지 포함하면 3권이 되겠네요. 이외에 동화책 삽화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할 때마다 작업 형태에 따라 동기는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림책을 배우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어요. 그러다 출판을 하게 되었고 북트레일러와 굿즈를 만들고 전시도 하면서 그림책 콘텐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2차 저작물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재미를 느꼈어요. 이후에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동화책 삽화를 그렸어요. 그 전 작업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그림 그리는 게 재밌더라고요. 요즘엔 그림책 강의를 하며 직접적으로 독자들과 만나면서 얻는 에너지 덕분에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을 하는 사이사이에 공백이 있었고 스스로 많이 지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걸 도전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그림책에 대해 소통하는 일이 저에게 원동력이 되어주는 거 같아요.




KEYWORD 1. 집 


저는 첫 번째 키워드가 당연히 ‘펭귄'일 줄 알았어요. 예상을 깨고 ‘집'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펭귄은 그림책의 주요 제재이지만, 집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펭귄을 그림책 주인공으로 삼고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 펭귄들이 서로를 꼭 붙어다니며 집단 생활하는 모습, 뒤뚱뒤뚱 움직이며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모습들 등 한없이 사랑스럽기도 하면서 사람 사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는 모습은 여러 공간에서 보일 수 있는 것 같은데, 펭귄이 살아가는 공간을 집으로 특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저의 취향이 반영된 것 같아요. 저는 바깥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집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거든요. 그만큼 저에게도 소중한 집을 잃어가는 펭귄들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하며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책에 등장하는 집은 혹시 작가님의 집인가요?


맞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가구들은 특히 집에 있는 것들이에요. 주로 어머니의 취향으로 꾸며진 것들이에요. 침대나 목욕탕의 구조, 작은 화분들까지 직접 보고 그렸죠. 옷장에 걸린 옷도 당시의 제 옷장을 그대로 그린 그림이에요. 



작업할 때 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편이신가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빈틈 없이 작업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상상해서 그릴 수도 있지만, 정확히 존재하는 사물이라면 있는 그대로 담아냈을 때 더 진짜 같으니까요. 그런 디테일이 이야기에 대한 집중도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처음엔 이야기를 만들기 전에 ‘집’이라는 공간에 나 대신 펭귄을 넣고 스케치를 하며 고민했어요. 그래도 이야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았어요. 여러번 수정했죠. 하지만 학부 시절부터 펭귄은 자주 그려 온 소재였기 때문에 이번 작업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나 애정이 컸어요. 



그때는 어떻게 처음 펭귄을 그리게 된 건가요?


크로키 과제가 있었어요. 근데 아마 그림 그리시는 분들은 이해할 거예요, 정말 큰 고민 없이 가볍게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때 저도 그 과제를 그런 의미로 수행했던 것 같아요. 무얼 그리면 좋을까 고민했었는데 마침 <남극의 눈물>이 방영하던 때였고 거기 나오는 펭귄들이 귀여워서 조금씩 그렸어요. 크로키라서, 세부 묘사가 들어가기보다는 빠른 움직임을 캐치하는 정도였죠. 그 그림들을 이후에 발전시켜서 커다란 벽면에 그려 전시하기도 했어요.  





꾸준히 그려 온 소재이니 애정이 클 수밖에 없겠어요. 이 펭귄이 평범한 ‘사람 사는 집'을 만나 이 그림책이 완성되었군요.


잘 그릴 수 있는 소재 하나가 분명히 있더라도, 이 소재를 사용하여 어떤 이야기를 쓰고, 어떤 그림책으로 만들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걸 이 작업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집안을 누비는 펭귄들이 이렇게 생동감 넘치게 보일 수 있는 이유를 더 잘 알게 됐어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어떤 부모님들이 처음에 이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가 다시 감췄다고 하더라고요. 이유는 ‘아이들이 펭귄이 하는 장난기 넘치는 행동들을 다 따라 해서’라는 얘길 듣고 재밌었던 기억이 납니다.   


KEYWORD 2. 얼음 


'얼음 펭귄' 이야기는 “얼음에서 태어난 펭귄이 있었다"로 시작해요. 사실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전혀 현실성이라든지 개연성이 없는 부분인데 아예 이렇게 시작하니까 하나의 그림책 세계관으로 이해하게 되어 버렸달까, 참 재밌고 귀여운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떠올리신 건가요?


펭귄을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어떻게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예요. ‘왜 펭귄들이 집에 있을까? 펭귄이 사는 곳은 아주 아주 추운 곳이다, 추운 곳에는 얼음이 있을 테고, 집에 얼음이 있는 곳은 냉동실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오게 된 장면입니다. 처음에는 냉장고 문을 여는 컨셉이었는데, 아예 얼음에서 태어나는 설정이 더 재밌는 것 같아서 그렇게 바꿨어요. 



얼음은 그림책 주제를 말하기에도 용이한 소재 같아요.


맞아요. 펭귄과 얼음을 연관시키고 보니 그림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지구온난화라는 큰 이야기의 틀을 비로소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얼음이 펭귄의 수식어처럼 느껴지는 책 제목인데요, 제목을 정할 때 다른 후보나 고민은 없으셨나요?


제목에 관한 큰 고민은 없었어요. 얼음과 펭귄은 이 책의 주요 제재이자 주제와도 연관이 돼 있거든요. 책제목이 짧고 굵게 모든 걸 설명하고 있고 기억하기 쉬운 거 같아서 잘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KEYWORD 3. 지구 온난화 


 세 번째 키워드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그림책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집을 잃어버리고 마는 남극 황제펭귄에 대한 이야기예요. 직접적이진 않지만, 은유적으로 독자들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을 그림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풀어낸 것이죠. 전반적으로 환경오염에 대한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집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앞으로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원래 환경오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사실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림책을 작업하다 보면 소재가 주제를 끌고 올 때가 있어요.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고, 덕분에 저도 공부하며 지구온난화에 관해 공부하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원화전 했을 때 생각보다 이 주제가 더 중요한 것이구나 깨닫기도 했어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었나요?


그림책에는 주제나 이야기 외에도 신경써야 하는 것들이 많아요. 특히나 이야기 구조가 갖춰지고,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을 할 때는 특히 그림적인 부분에 집중하게 되어요. 구도나 레이아웃, 재료의 사용이나 무엇을 그릴지에 관한 고민 같은 거요. 그런데 막상 원화전에 오신 분들은 원화전 하면서 놀랐던 건 생각보다 사람들은 지구온난화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었어요. 전시에서는 방문객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으니까 더 잘 실감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 장면이 아마 지구온난화에 관한 작가님의 의견일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이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질문을 남겨두려는 의도로 마지막 장면을 작업하긴 했어요. 약간은 새드 엔딩이죠. 암울한 결론이라는 피드백도 많았어요. 그만큼 메세지도 더 강화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 그림책을 만들며 특별히 신경쓴 점이 있나요?


기온이 높아진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배경색이 차가운 한색에서 따뜻한 난색으로 바뀌어져 갑니다. 그래서 앞부분의 파란 벽지와 뒷부분의 빨간 벽지를 보면 완전히 대조돼요. 또 벽지의 무늬를 보면 펭귄과 어울릴 수 있는 눈 장식 또는 물고기 장식으로 꾸며보았어요. 얼음 펭귄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살바도르 달리 그림의 녹아내리는 시계에서 착안했습니다. 그런 디테일을 발견하면서 책을 보시면 더 재밌을 거예요.



이 작품을 꼭 보았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주제가 지구온난화이긴 하지만 저는 여러 방면으로 이야기를 처음에 구성 해본 것이기 때문에 ‘우리 집에 낯선 동물이 들어왔다면?’ ‘내가 동물이 된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등등 여러 가지 재밌는 상상을 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윤나라 작가



그림책 재료로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그리고 보통 많은 분들이 아크릴화로 생각하시는데요, 수성 유화로 작업한 그림입니다. 주로 지금까지 수성 유화를 사용했는데 최근 출간된 동화책 삽화는 디지털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수작업은 디지털보다도 시간과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는 단점이 있는데 또 그만큼 수작업이 주는 매력이 커서 앞으로 어떤

재료로 할지 고민되는 거 같아요. 재료보다도 그림 스타일의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다른 그림책들을 많이 보면서 그림책 구조에 대해 이해 하고 사진과 그림들을 수집하면서 저만의 레퍼런스를 만들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창의력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혼자 영감을 얻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대신 많이 보고 듣고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작업을 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스토리 구상과 그림 스토리보드 작업은 조용한 공간에서 집중해요. 채색하는 과정은 어떻게 그릴지 이미 정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작업을 해요. 작업실 안에 계속 있는 것이 지루해지면 아이패드 들고 카페에서 작업을 합니다.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한번에 글과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서 오랫동안 그림책 더미를 가지고 수정을 많이 하면서 고쳐나가야 해요. 그 과정이 힘들고 더뎌 보여도 그 고비를 무사히 잘 넘기면 내가 작가로서 한 발짝 성장했다는 스스로의 성취감과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마음껏 상상 하고 글과 그림을 통해 조화롭게 잘 표현해내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림책을 만들 때마다 항상 어떠한 변화를 넣어주고 싶어요. 이렇게 말해도 변화를 줄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과거와 현재가 같지 않으니까요. 그 다음의 책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함과 기대감을 주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그림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안녕달 작가를 좋아했고 유화로 그림책을 만들면서 숀탠 작가를 좋아했고 또 디지털 드로잉하면서 루크 피어슨 작가를 좋아했어요. 그 밖에도 시드니 스미스, 사라 룬드베리 가님들의 담백하고 차분하게 그려내는 책들, 서현 작가님, 강경수 작가님처럼 유쾌 발랄한 캐릭터 표현력이 좋은 그림책들을 좋아해요. 너무 많아서 어떤 그림책을 뽑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작가님의 다음 작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제목은 아마 <얼음 곰>이 될 것 같아요.남극펭귄 다음으로 시즌 투 북극곰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얼음 펭귄> 뒷면지의 곰 발바닥 자국을 통해 시즌 투에 대해서 궁금해하시고 계실텐데요. 여러 방향을 두고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면서 구상 중에 있습니다. 얼음 펭귄은 새드엔딩이라 얼음 곰만은 해피엔딩으로 만들고 싶어요.



나에게 그림책이란?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시절의 저를 특별한 삶으로 이끌고 삶의 가치를 찾아준 선물. 제 스스로가 굉장히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그림책만큼은 오기가 생기고 도전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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