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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Nov 11. 2023

그림책키워드인터뷰/여전히 그 자리에 남은 여름의 말들

'Summer Blows' - 깸깸이 작가 인터뷰

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지나간 #여름 #사진첩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림 그리고 책을 만드는 깸깸이 입니다.  



작가명이 특이해요. 깜깜하다는 뜻인가? 싶기도 했고 ‘깜빡깜빡’ 의태어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정확히는 어떤 뜻인가요?


‘깸깸이' 작가명은 단어를 갖고 노는 걸 좋아했던 학창 시절에 스스로 지었던 이름이에요. 마치 오래된 전구의 필라멘트처럼 버퍼링이 더딘 사람을 연상케 하는 뉘앙스인데, ‘모른 척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제 자화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눈을 깜박거리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에 대한 서문의 구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어요. 최후의 인간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진보된 인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것들이 고도화 되어 더 이상의 즐거움도 고난도 원치 않는 인간입니다. 그들은 그저 생의 권태로움을 견디며 눈을 가만히 깜빡거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죠.



현대의 인간을 정확히 예측했네요. 니체 텍스트에 반응하게 된 작가님만의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기억나는 일화가 있어요.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종종 낚시터에 가곤 했거든요. 좋아서 따라나서긴 했어도 사실 낚시라는 건 대부분의 시간이 기다림이고 어린 제가 옆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어요. 


자연스레 오랜 시간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는 일들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 내가 돌이나 바람이나 나무들 사이로 사라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고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요. 그런데 얼마 못 가서 그 끝에는 항상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와 파동을 일으켜요. 


가령 집에 가서 해야 하는 숙제들, 친구와의 약속이나 부모님 심부름 같은, 일상적이고 성가신 일들이요.  그 무렵부터 아마도 강하게 의문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왜 돌멩이나 바람이나 나무처럼 될 수는 없는지 라는 등등의 생각들이요.



삶의 버거움을 일찍 깨달은 어린이였네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책임진다는 것, 해야만 하는 것들을 대하는 것이 늘 어려웠었고 의미를 찾기 힘들 땐 모든 것들이 공허하고 권태로운 감정도 컸고요.



지금의 작가님도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의 조건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부끄럽지만 저는 여전히 깸깸이처럼 살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허무하기만 한 상태로 있고 싶지는 않아요. 모든 게 다 재미없어지더라도 한 가지는 붙잡으려고 노력하고 그게 무엇일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하는 이상은, 스스로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작가님의 책 작업은 그런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노력의 증거일 수도 있겠어요.


저는 그림이나 그림책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했었어요. 20대 초반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는, 힘들더라도 그런 삶의 방식에 스스로를 잘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미련하게도 결국은 부딪쳐 가면서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셈이죠. 여전히 정답을 찾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중요하고 필연적이었던 것을 한 번 놓아 본 경험 자체에 후회는 없어요. 그래서 지금 이런 이야기를 담아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KEYWORD 1. 지나간 


첫 번째 키워드는 당연히 ‘여름'일 줄 알았어요.


‘Summer Blows’ 제목처럼 이 책은 여름에 대한 이야기지만, 책을 만들 때 고민했던 지점들을 되새겨보면 ‘여름’ 자체보다는 ‘지나간’ 무엇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나간 것에 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 책에 담겨 있는 생각들이 구체화 된 계기는 몇 년 전 작가 공동체에서 ‘시간을 넘어 의미 있는 것'이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였어요. 당시에는 반드시 ‘책’의 형태로 결과물을 내놓고자 한 것은 아니었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을 찾는 것이 목표였었는데, 그때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의미가 있다’는 저만의 결론에 이르면서 해야 할 작업의 방향도 좁혀졌죠. 


이 과정에서 깨달은 건, 역설적으로 내가 ‘나’라고 믿고 있었던 예전의 나는 지금은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존재의 정체성은 불변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나 역시 변할 텐데, 그렇다면 매 순간 변하는 시간의 선 위에서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라지고 없는 것. ‘부재’라는 개념에 대해 영감이 깊어지는 시기였어요.   

‘모든 것이 변한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당연한 명제이지만, 이 사실을 머리로 아는 것과 겪어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삶의 전반적인 요소에서 이 유한성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이든 환경이든, 좋아하고 아끼던 무엇이든 나와 연결된 존재를 보내야하는 경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또 나를 변화시키고요. 


그동안 저는 보내야 하는 것들에 대해 그다지 미련을 두는 편이 아니어서 이런 일에 능숙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계기로 인해 감정의 잔재가 문득문득 올라올 때는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내 안의 설명되지 않는 감정에 대해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아티스트북 'Bon Voyage'



이런 ‘부재’ 혹은 ‘상실’이라는 개념이 제 작업의 주된 동기이자 맥락이 되고 있다는 것은 저조차도 최근에서야 알게 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작업했던  ‘Bon Voyage’ 역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여행이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오랜 기간 불가능해지면서 겪었던 감정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만들게 된 책이었거든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낯선 감정을 마주하는 것, 그 근원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많은 것들을 새로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 ‘나’라고 믿었던 것들에 균열이 생기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해 보고 싶어서 상실이나 애도에 대한 책들도 읽어보곤 했지만, 타인의 말로 완전히 설명될 수는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힘들다, 이해가 필요하다'가 포인트인 것 같아요. 힘들어서 견딜 수 없으니 이해되어야 하고, 그 방법을 스스로 만들기에 이른 거군요. 어떤 해답을 찾으셨을까요?


답을 내릴 순 없는 것 같아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데 어떤 시간은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의미가 보이는 그런 지점이 있잖아요. ‘지나가 버린 것’을 대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억할 수 있을지 라는, 내가 던진 물음표에 한 번 생각을 정리해 본다는 자체에 이 책이 갖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KEYWORD 2. 여름 


작가님께 여름이란 어떤 이미지인가요?


무언가 무모하게 시도하는 즐거움이 있는 시기죠. 그렇기에 여름은 대개 마음속에 아련한 이미지로 남고요. 



아까 ‘여름'보다는 ‘지나간'에 방점을 둔 작업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지금 말하는 키워드 ‘여름'은 ‘지나갔다'는 개념과 연관된 계절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요?


네 동의해요. 감정을 시간성과 연결해서 이해하는 편인데 사람의 일생에도 계절이 있다고 본다면 여름은 지나가고 난 후에만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안에 있을때에는 그저 치열함을 살아낼 뿐 이유를 명확히 깨닫지 못하지만 지나가고 나서 이해하고 명명하는 거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시기’라고.



작가님 설명을 들으면서 제 안의 어떤 지나간 여름'들'이 몇 개는 떠올랐어요. 어쩐지 마음이 아파요.


유한한 무엇을 마주하는 일은 마음이 아프죠. 제가 이 책을 본격적으로 작업하던 즈음에 겪었던 일이 있었어요. 예전에 알았던, 굉장히 오래된 노래를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는데 신기한 건 그 노래를 수없이 플레이했던 기억은 선명해도 그 시기가 분명치도 않고 어디를 가면서 어떻게 들었는지 구체적인 일상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어요. 


붙잡을 수 있는 기억의 실마리는 없는데 그저 감정만 남아 있어서 듣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그건 그 노래와 함께 했던 시기에 제가 사로잡혀 있었던 너무나 불안하고 좁아진 마음,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그런데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과 같은 감정들이었어요.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학창 시절 주제곡이 매우 유행했던 ‘달빛 천사'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당시 성우가 콘서트를 하는 프로젝트가 생겼었어요. 20년 만에 캐릭터가 살아나는 순간이었죠. 그때 콘서트 영상을 보는데, 전주가 흐르기 시작할 때부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때 제 머릿속에 앞뒤 없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구나…’ 문장만 계속 떠올랐어요. 노래도 너무 좋고 즐겁고 행복한데, 눈물은 계속 나는 희한한 순간이었어요.


맞아요. 기억과 감정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얽혀 있다가 시간이 흐른 뒤 전혀 다른 맥락으로 떠오르는 경험들이요. 제가 다시 그 노래를 듣고 그렇게 눈물이 났던 이유는 아마도, 한때는 분명 나의 일부분이었던 것들인데 이렇게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싶은, 말씀하신 것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그 절대적인 거리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나간 건 다 아름답다'라는 상투적인 말도 있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름답다는 의미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일까요?


누군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는다면, 제 대답은 ‘아니오'예요. 거칠고 무모하고 앞뒤 재지 않는, 그런 불안한 시기를 또 겪고 싶지는 않거든요. 되찾거나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데, 더 이상 그때의 감정이 온전히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슬픈 거죠.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림을 보면 추상과 구상 사이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지나간 여름'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원래 그림 스타일이 묘사가 섬세하고 색 대비가 강한 편이었어요. 다양한 색과 많은 요소를 어쩌면 쏟아내듯 그려왔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꽤 오래전부터 들었던 터라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하나씩 빼 보면서 뺄 수 있을 때까지 뺐을 때 무엇이 남을지 실험해 보고자 하는 시기에 있었어요.


이전보다 조금 추상적인 요소들로 대치된 부분들이 많은데, ‘Summer Blows’ 책은 제가 경험한 여름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속에 존재하는 여름을 꺼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책인 만큼 이런 작업방식이 책의 의도에도 좀 더 부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KEYWORD 3. 사진첩

 

 사진첩처럼 책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 번째 키워드는 책의 형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정한 것인데요, 흩어져 있던 기억의 묶음이란 은유를 담고 싶어서 이렇게 낱장을 모아서 묶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어요. 




 

작가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손으로 직접 작업해야하는, 이런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어떤 감정의 높낮이가 작업의 주제인데, 이 내용이 물리적인 형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야 작업이 힘을 갖게 되고 독자와도 더 정확히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일반 출판물이 제작되는 방식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아이디어니까 직접 만들게 되었어요. 원래도 양산형 책 형태에는 흥미를 못 느껴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책 작업을 할 것 같아요.



책 외형은 마치 폴라로이드 사진을 여러 장 묶어 놓은 것 같은데, 가로가 더 긴 비율이에요.


책을 독자가 손에 잡았을 때 회상을 불러일으키는 형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외형은 폴라로이드 사진첩의 형태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지만, 편안하게 넘겨볼 수 있도록 가로가 좀 더 긴 비율로 정했습니다. 



 

 

왼쪽에 있는 고무줄을 풀면 아예 낱장으로도 볼 수 있겠어요. 독자가 임의로 순서를 바꿔서 묶어놔도 되는 건가요?


책을 구상할 때 흩어져 있는 지난 여름의 기억이 우연한 계기로 다시 떠오르는 것을 상상했었고 그래서 각각 낱장으로도, 또 하나로 모은 형태로도 가능한 모양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고민과 수정을 거듭했어요.  

사진첩을 한 장씩 넘겨보는 동작도 그 속도나 순서도 각자에게 좀 더 와닿는 방식으로 책을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문장이 조금 어색해질 순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큰 상관은 없어요.



내지에 불규칙한 문양이나 텍스처가 드문드문 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기억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 좀 더 빛이 바래고, 어떤 기억에는 뜻하지 않게 조금 얼룩이 묻고, 그래서 지금은 이런 기억이 되었다’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표지 때문에 아주 많은 초록색 종이를 찾았다고 들었어요. 최종 선택된 이 표지의 초록색은 어떤 기준으로 선별된 건가요?


여름은 한창 푸른 시절이니까 초록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처음엔 초록색을 띠는 종이는 할 수 있는 한 수집했죠. 그런데 한 번 지나갔으니 너무 생생한 느낌의 초록색은 아니길 바랐어요. 그래서 한 톤이 날아간 초록의 느낌과 가까운 색을 고르려고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종이를 접었을 때 쉽게 터지지 않는지도 확인했고요. 


 

내지는 만지면 되게 포근한 느낌이 들어요.


내지는 문켄프린트크림 종이를 사용했어요. 연한 미색이고, 만졌을 때 가슬가슬한 쿠션감이 있어요.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종이 중 하나라서 이전 작업에서도 사용했었는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빛이 드는 곳에 두면 색이 바랜다는 점이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시간이 지나 변화를 겪고 이 과정에서 재해석되는 ‘지나간 여름’의 느낌과 맞는 것 같아 그대로 채택했습니다.   

글과 그림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그림책에서 글과 그림을 작업하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양하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텍스트를 정하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큰 틀에서 메시지가 정리되면 거기서부터 그림을 최대한 많이 펼쳐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번 작업에 수록된 그림들은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여름에 대한 여러 기억을 담고 있어요. 어둑어둑할 때 바닷가에서 보았던 불꽃놀이라던지, 너무 더워서 한 발짝 떼기도 힘들어 주저앉아 보았던 풀 한포기 같은 것들입니다. 그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내 안에 남아 있는 이유를 들여다보고 조금 더 정리된 언어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페이지가 완성되었어요.


특히 ‘Summer Blows’ 책은 정해진 시작과 끝이 없는, 연결된 듯 그렇지 않은 듯한 흐름으로 이어진 하나의 긴 문장이 되도록 글의 구성과 배열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다소 은유적으로 표현된 글과 그림 사이로 각자의 고유한 여름이 살아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한 장면 골라주세요. 

가장 첫 번째 페이지요. 여름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초반에 떠올라 그린 그림이거든요. 한 톤 날아간 여름을 다시 기억한다는 인상과 가장 가까운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깸깸이 작가  



그림책 재료로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차콜, 색연필, 크레용, 오일파스텔 등의 건식재료를 주로 사용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제 성향 때문인데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사전 준비가 길고 많아질수록 그림에 힘이 들어가고 잘그려한다는 강박이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가볍게 시작할 수 있고 생각나면 바로 손에 들고 그릴 수 있는 재료들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아이디어를 내야지 생각하면 오히려 생각이 막혀버리는 것 같아요. 책을 읽거나 산책하고 여행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잘하게 메모를 많이 합니다. 사실 어떤 메시지가 되기에는 너무 단편적인 것들이라 당장 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뭔가 발전시키고 싶은 주제를 만났을 때 그런 작은 생각들이 힌트를 주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작업하는 순간에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생산성이나 필요 혹은 불필요의 검열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을 수 있고요. 다만 저는 드러내는 것보다 익명 속에 숨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작업을 들고 나서야 할 때는 조금 괴롭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그림은 어떠해야 한다, 책은 어떠해야 한다’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저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가츠미 고마가타의 ‘Little tree’ 책을 좋아합니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지만 시간을 말하고 있는 책이고, 시적인 언어들과 여백이 있어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작가님의 다음 작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저에게 있어 그림이 되는 것과 책이 되는 것은 분명 서로 다른 지점인 것 같아요. 아마도 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으로 인해 괴로워할 때, 새로운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에게 그림책이란?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싶은 소망이자 작은 목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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