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부럽다고 말하는 자들에게..
신이 숨겨둔 직장이라는 공기업이라던지 삼성같은 글로벌 대기업을 퇴사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브런치 글제목이 눈에 띌 때마다 읽어보곤 한다. 꿈과 희망을 주는 글들인 경우가 많아서 읽어서 해 될 경우가 별로 없다. 퇴사 후 신변을 깔끔히 정리하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던지, 통장을 탈탈털어 세계일주를 했다던지,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업개발에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든 사람들 얘기가 많다.(게다가 성공까지 해버리고!) 물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면 읽어서 무엇할까 싶기도 하다.
퇴사가 트렌드라느니 욜로라던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야기들이 멋있기는 하다. 나도 자리에 누워 잠을 못이루도록 꿈을 꾸곤 했다. 그렇다고 해도 연봉 몇 천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 자들의 이야기들이 모두 해피할 것이라고 부러워한다면 그건 자신의 일상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비교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가끔 그런자들 중에 여행작가나 스타트업 CEO같은 이상을 꿈꾸는 삶을 부러워 하다가 아무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자도 있을텐데 고생길이 구만리다. 먹고살기 고달퍼서가 아니라 그 알량한 이상향을 휘젓다가 몇년쯤은 고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퇴사를 밝힌 날, 사람들은 모두 충격과 의구심에 빠졌다. 혹자는 우리집에 돈이 많은가보다 했고, 또 다른자는 공기업 퇴사자들이 대게 그리하듯이 더 월급 쎄고 대우가 편한 공기업에 가나보다 했다. 좋은 집안에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심각한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시켜주기 위해 나는 좋은 사업아이디어가 있다고 뻥을 쳤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몇 년 일하지도 않았는데 자본도 없이 회사를 그만둔단 말이야? 집에 돈이 많은가보다~ 그래 이정도는 그래도 이유가 될 것 같아서 그리 말하고 그만뒀다. 내가 있는 공기업에선 이런일은 너무나 가끔 있는 일이라서 인사부나 나나 처리절차 또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나는 그곳에서 사라졌다.
실상을 말하자면 단지 공기업에 다니는 것이 싫었다. 현실감각이 그다지 없었던 나는 집에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부를 잘해서 늘상 잘하는 친구들 속에서 경쟁하고 비교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젤 잘된 친구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우겼다. SKY졸업생이라고 모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행복한 삶을 사는것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약 공공기관에서 일하고자 한다면 행정고시를 합격하는게 가장 좋은 일이고, 민간기업에 취직하고 싶다면 연봉이 높은 컨설팅이나 외국계금융기업, 삼성전자에 취직한다거나 공부를 더하고 싶으면 로스쿨이나 해외유학 합격생들이 늘상 눈에 띄기 마련이다. 나의 비교대상은 늘 내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내가 없는 곳이었다. 내가 있는 공기업은 우수한 사람도 많았지만 그냥 평범하고 딱딱하고 지루한 관료주의조직이었다. 사람들은 좋았지만 답답하고 서류작업이 일쑤인데다 위에서 시키는 앞뒤꽉막힌 일이 매일 같이 싫기만 했다. 그렇다. 나는 비현실주의자였다. 그 돈을 괜히 주는줄 알아?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꽤나 능력있는 모범생들이 시간낭비를 열심히 해서 받아내는 감정노동비 같은 걸로 생각하며 위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기업 조금 다니다가 퇴사하면 뭔가 꿈을 찾는 청년이라고 알아줄 줄 알았던 착각이 깨지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배낭메고 오지를 누비며 외국청년들과 해외여행을 하고 주변인에게 미래의 꿈을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그들에게 나는 겉으로는 멋있다고 말하고 뒤로는 이해가되지 않는다고 수근대는 쉽게 말하자면 사회부적응자가 되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계에 대한 고민도 없이 무작정 귀한 직장을 그만 둔 자는 밥에 대한 지엄함을 모르는자(김훈 에세이 中)일 뿐 아니겠는가.
그래도 낙오자로 자존심은 구기고 싶지 않아서 있는 돈 조금 모아둔 것 가지고 재밌는 것이나 열심히 하기는 했다. 미래가 걱정되어서 배낭여행 중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어학연수도 갔다오고, 퇴사자 단골메뉴인 명상, 템플스테이도 꽤나 해보고, 그동안 돈아끼느라고 고민만 하느라고 못해본 유흥도 족히 즐기기는 했다. 이런 것들이 나중에 지나고보니 절대 아까운 일은 아니긴 했다. 왜냐면 어찌되었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이긴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가 민낯을 깨달은 것은 그 과정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던(혹은 착각했던) 것들을 장난스럽게라도 건드려보면서 시작 되었다. 사업 팜플렛을 들고 빌딩 앞에서 서성거리다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발길을 돌려보기도하고, 어줍잖게 유흥이라고 좀 해보더니 음악이 좋아져서 연예업계에 일해보려고 갔더니 먹물에 경력도 없어서 차이고, 에세이 읽는게 재밌어서 글 좀 써보겠다고 이곳저곳 두들기다 글 솜씨 없다고 냉정히 거절도 당해보고, 알바를 해보다가 요리가 재밌어서 중국집에 갔더니 12시간씩 불앞에서 땀흘리다가 실신직전까지 가서 도망치듯 그만뒀고, 다시 모범생들 자리가 그리워서 대기업을 두들겨보니 공기업 경력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서류 광탈을 당하고... 그렇게 이런저런일을 전전 하며 삼년이 지났다.
밥이 그냥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이 자기 자리를 알아야 한다고 했던가. 나는 여행작가나 기발한 스타트업 CEO가 될 재주는 없었고 그렇다고 받던 연봉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낮은 월급과 끈기로 인생을 걸어볼 용기는 없는 자였다. 그래서 현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은 내가 꿈꾸는 이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하는 일이 결국 현실이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게 현실주의자다. 관료주의는 답답하고 가치없는 일이야라던지, 부자들보단 가난한자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라던지, 한번사는 인생 자유롭게 살고싶다라던지 하는 구호들은 생각보다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그런 구호들은 청년들을 낚기 위한 광고카피로 트렌디해지는 경우도 많다(인생 한번 사는거 누가모르나).
나는 결국 내가 학교 다닐 때 수학 영어 잘하던 재능을 잘 살려서 다시 살길을 찾았고 그 분야에 일을 하고 있다.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고 퇴사한 것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간 우여곡절이 많아서인지 지금하는 일을 사랑해라고 말할만한 낭만은 남아있지 않다.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둥 꿈을 찾아서 행복하다는 말은 오히려 삼가고 싶다. 사실 공기업 다닐때보다야 더 경쟁이 치열해졌으니 말이다. 사실 직종을 바꿔서가 아니라 허황된 꿈을 꾸지 않기로 한 나의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잘 해야하고 경쟁에서 이겨야하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 구실하고, 사람 만나 맛있는거 먹고, 잠잘 집 구하고 여유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가족을 포함해서) 무엇인가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퇴사의 민낯은 험난하다. 내게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힘겹게 들어간 직장에서 현실적인 기회를 보며 열심히 노력하며 조금씩 자신을 발전시켜 갈 수 있다면 머무르고, 박차고 나와서 민낯을 한번 깨끗히 씻겨내야만 적성이 풀리겠다면 그만 두고 나와서 용기만큼 한번 살아보는 것이다(삶이 몇년쯤 늦춰지기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로 조금씩 다가간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결론이다. 물론 두 선택중에 한가지를 선택한 내가 다른 선택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줍잖은 이야기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