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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자쟁이 Aug 01. 2021

서핑, 빠져듦에 대한 동경

다시 1년만에 파도를 만났다. 서핑이라는 단어는 내게 여전히 뭔가 삶을 멋지게 살고 있다는 자기 최면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올해 여름도 호기롭게 바다를 찾아본다. 직장인들에게 바다로 가서 서핑한다는 일이 도무지 간단하지가 않다. 재미삼아 한 두 번 강습을 받는 것 까지는 좋지만, 그 이후 꾸준히 서핑을 하려면 커다란 보드와, 바다 물 때를 맞추기 위해 기상예보를 확인하고, 역시나 비용이 꽤 드는 부수 장비들을 모두 마련하는 것들이 일년에 한 두번의 재미를 위하기에는 부담이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핑은 한 두 번 강습을 받아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다. 매우 고통스러운 실패를 꽤 오랫동안 참아내야지만 겨우 파도위에 올라설 수 있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만에 작심하고 찾은 제주의 파도는 전에 없이 매력적이다. 아니, 한국에서 서핑을 위해 찾았던 바다 중에 가장 뛰어난 파도다. 높은 절벽 위에서 파도를 내려다보았는데, 그 설레임이 나를 5년전 호주에서의 느낌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호주에서는 서핑을 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에 근처 언덕에 가서 파도를 넋놓고 바라보곤 했는데, 파도 - 정확히는 부서지기 전 상태의 파도(wave)라서 너울(swell)이라고 부르는게 맞다 - 를 볼 때 난 왠지 모르는 동경심을 느끼곤 했다.

  많은 서퍼들을 보며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허겁지겁 절벽 아래로 내려가서 서핑 샾을 찾았고, 약간 당 떨어진 사람이 음식으로 돌진하듯이 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아니 바다로 뛰어갔다는 표현이 맞겠다. 파도가 높았고 물은 차가웠지만 충만한 열정으로 가까운 파도선 - line-up이라고하는- 까지 50미터 가량 헤엄을 치고 들어갔고 호기롭게 파도를 잡았다. 아주 작은 파도였지만 어떤 쾌감이 밀려온다. 파도를 타는 느낌 자체의 쾌감일 수도 있고, 호주에서 자유롭게 보내던 시절의 행복감인 것 같기도 했다. 왠일인지 파도가 편안하고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두번째 파도를 잡기 위해 line-up 으로 헤엄쳐 돌아간다. 서핑은 이 헤엄치는 과정이 가장 힘들다. 파도를 거꾸로 헤엄을 치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든다. 모두가 싫어하는 이 헤엄은 오직 파도를 타기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팔은 단단해지고, 해수욕객들이 수영하는 지역보다 좀 더 먼 선상에서 바다위를 유영하는 약간의 우쭐한 기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난 사람들이 모여있는 라인보다 조금 더 뒤로 헤엄쳐 가서 지평선 방향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 개, 두 개, 세 개.. 작은 파도들이 지나간다. 꽤 큰 파도도 지나간다. 나는 파도를 넘실넘실 타면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걸 가장 좋아한다. 파도는 끊임없이 온다. 영원히 계속된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잡으면 그만이다. 잡지 않아도 된다. 옆으로 지나가는 파도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기다리면 또 다른 파도가 계속 오고, 나는 지나간 파도보다 다가올 파도에 집중한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파도가 바로 내것이다.

  마음에 드는 파도가 왔고 두 번째로 파도를 잡아보려 했다. 결과는 실패. 난 물속으로 내동댕이 처졌고 허둥대며 물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그 때 멀리선가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나오세요!” 설마 나를 보고 하는 소린가 싶어서 다시 헤엄을 치는데 그는 내 가까이로 오며 미소를 짖더니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타일렀다. “여기는 보드 잘 타는 사람들이 타는 곳이에요. 초보자는 사이드로 빠지셔야 합니다.”

  사이드로 빠지라니.. 적지 않게 상처되는 말이었다. 사실 호주에서 지낼 때 서핑을 꽤 오래했지만 절대로 잘하진 못했다. 그래도 한국에 와서 서핑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아직은 한국에서는 내가 서핑으로 폼을 좀 잡아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게 사실이었다. 한국 파도는 꽤 작은 편이니깐 여기서는 내가 잘 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난 한국에서 다른 사람들이 서핑하는 걸 본적이 없었고, 한 5년간 타지 않았으니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려서 스스로의 실력을 왜곡하는 단계에까지 와있었다. 호주에서 난 상급자 보드를 들고 다녔고, 높은 파도에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실력과 관계없이 나를 꽤 우쭐해 하는 기분으로 기억을 왜곡하고 있었던거다. 어찌되었던 나는 이제 다시 서핑을 하기로 했고 지금 내가 빌린 초급용 보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누가봐도 나는 초급자가 맞다. 난 사이드로 가서 헤엄치는 연습부터 다시 해야했다. 멋진 서핑은 아직 한참 멀었다. 그제서야 이 생각을 사실 호주에서도 늘 하고 있었던게 기억이 났다.

  Lenox Head, Australia, 2015. 한국과는 스케일 자체가 다른 호주라는 대륙에서 난 아주 먼 곳으로부터 출발해 여러 날동안 운전을 하며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에 되어 나는 별 생각없이 아주 조용한 바닷가에 머물기로 했다. 인근의 서퍼들에겐 꽤 알려진 파도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사이트라서 늘 그렇듯이 몇명의 유럽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2명의 이탈리아 친구, 1명의 독일 친구, 1명의 영국 여행객, 1명의 미국 여행객 정도만 있었다. 일반적인 호주의 backpacker’s guest house에 비하면 관광느낌이 거의 없는 정말 조용한 곳이었다. 두 명의 이탈리아 남자는 꽤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이 주변의 호주 식당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중 한명의 남자가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레스토랑 일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20대 중후반으로 꽤 오랫동안 잔뼈가 굵은 식당 매니저인 셈이지만, 스페인어도 잘하고 굉장히 자유분방한 성격이어서 호주로 잠시 이주했고 무엇보다도 그는 지금 서핑에 미쳐있었다. 서핑에 관해서라면 나는 빠져있다라는 표현보다는 미쳤다는 표현을 쓰길 좋아한다. 서핑을 한번 빠지면, 미칠정도가 되는 사람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스테파노라고 하자. 스테파노는 다음날 저녁 나를 지역 파티에 초대했다. 아주 작은 바베큐 파티였고, 그곳에 꽤 오래 머무르며 알게된 주변의 젊은 친구들을 초대하는 커뮤니티 파티였다. 호숫가에 가서 이야기하고 술마시는 기회는 내가 마다할리가 없다. K-pop을 좋아하는 19살 독일 여자애인 크리스와, 다리가 부러져 휴가를 얻은 영국의 스노우보더인 앰버와 술을 사들고 같이 갔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엔 바베큐장에서 불과 몇 발자국 떨어진 동화속에나 나올법한 아주 깨끗한 호수에서 수영을 하고 장난을 치다가 바베큐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스테파노와 크리스는 늘상 장난을 주고 받는 친한 남매같은 사이다. 주로 스테파노는 짖궃은 장난을 치고 크리스는 왈가닥으로 소리르 지르며 쫓아다닌다. 그날은 해질녘쯤 둘이 술이 취해서 스테파노의 모자로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여느때의 장난끼 어린 두 남매 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좀 더 흘렀을까, 좀 더 어두워지자 둘은 어느새 키스를 하고 몸을 붙인채로 다정한 춤을 추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뒤엉켜 춤을 추던 둘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점점 멀리 호숫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술에 취하긴 했지만 춤을 추며 무척 행복해보였고,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낯설었다. 불현 듯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번이라도 감정과 분위기이 충실한채로 즐겨본적이 있었던가. 갑자기 나 자신이 되지 못한 모습을 느꼈다. 나는 둘의 춤과 너무나 대조되는 별이 쏟아질듯이 깜깜한 하늘을 바라봤다. 지금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홀로 파티를 빠져나왔다. 홀로 꽤나 산책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내가 그 둘 사이를 질투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마도 자유롭지 못한 나 자신을 미워했던 것 같다. 나는 겉으로는 꽤나 사교적인 편이지만 한국에선 늘 이방인처럼 지냈다. 어떤 조직에 속하든지 그 조직에 내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더 쉽게 말하면 그 순간에 빠지지 못했다. 어떤 일을 하면, 이 일이 내게 맞지 않는 쉬운일이라 생각했고, 어떤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내게 어울리는 곳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어딘가에, 또 누군가라고 생각했다. 난 늘 지금 내 주변을 만족하지 못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몇일 뒤, 나는 미국인 친구 제니퍼와 함께 남쪽으로 운전하여 내려가기로 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자유분방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제니퍼는 미국인이었고, 아마 미국인과 여행을 떠나는게 영어실력이라도 늘이는 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몇일이 지나서 난 후회하며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서핑을 더 좋아했고, 그곳의 자유롭고 느긋한 로컬 문화를 좋아했지만 그건 내가 한참 후에 깨닫게 된 사실일 뿐이었다. 늘 더 좋아하는 것은 한참후에나 알게된다.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해야할 일 사이에 늘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내가 떠나던날 스테파노와 나는 오전에 함께 바다로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상어가 나올 것처럼 바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으므로 일찌감치 나는 밖으로 나왔다. 돌고래와 갈매기가 많은 날은 물고기 때 가 많으므로 상어가 나올 수도 있다. 호주의 백상어는 성인의 다리를 끊을만큼 공포스럽고 위험한 존재다. 제니퍼와 난 스테파노에게 인사하고 싶었지만, 스테파노는 여러 시간동안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보다 큰 파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본 사람중에 뭔가를 정말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탈리아인 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고수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서핑을 생각하면 늘 스테파노가 떠오른다. 아니 뭔가를 시작한뒤 푹 빠져들지 못할 때마다 그가 생각난다. 뭔가에 미쳐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늘 다른 핑계를 대며 그것을 그만둘 때마다 스테파노를 생각한다. 나는 호주에 1년간 있었지만 결국 서핑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호주에서의 비자는 끝나가고 서핑을 마스터하지 못한채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결정을 내렸다. 그 무렵 나는 나이가 더 들기전에 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서 정상적인 직업을 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퍼와 호주, 일용직 아르바이트와 난 어울릴 수 없었다. 어쩌면 난 아마 스테파노처럼 서핑에 빠져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 후로 호주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 - 시드니, 조하네스, 빌푸.. - 그들 역시 호주의 삶이 마지막일것처럼 살았고, 그 시간이 끝났을 때 돌아갔다. 물론 그들은 서핑에 미쳤고 내게 서핑에 대해 이제 어느정도 만족감을 찾았다며 연락을 해왔다. 종종 나는 스스로에게 왜 좀 더 서핑에 몰입하지 못했는지를 묻곤했다.

  내게 이번 휴가는 2주다. 휴가 치고는 참으로 긴 휴가다. 난 이번엔 서핑을 하기 위해 2주를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두려움 없이 한번 빠져볼 수 있을까. 해야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들을 잠시 포기하더라도 말이다. 해야하는 것들보다 하고싶은걸 할 때 더 좋았다는걸 이제는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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