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서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1. "대화 즐거웠어요!"

2. "말이 신기할정도로 잘 통했네요."

3. "얘기 잘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4. "아까 그 말. 기분 좋았어."

처음 만남 사람과 대화를 하고나면 보통은 이런 이야기를 안부로 주고받는것 같습니다. 저는 단연코 4번이 가장 좋습니다. 1번은 가장 많이 듣는 말인데, 여기서의 즐거움은 무슨무슨 대화의 지식사전과 같은 책 제목처럼 서로의 지식을 교환해가며 지적 유희를 해야만 할 것 같아서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약간 기분이 상기되어 티키타카라고도 불리는 쿵짝이 잘 맞을 때도 있는데 꼭 그 시간이 장난꾸러기로 돌아간것처럼 재미가 있습니다. 3번처럼 서로가 감정적인 교감을 주고받는 공감(교감이나 동정을 포함해서)을 위한 대화도 마음의 회복력을 위해서 가끔은 따스하죠. 하지만 4번이 가장 좋은 이유는,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고 매우 특별하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대화 자체의 내용을 즐겼다기보단 대화를 하고 난 뒤 그날 밤에 혹은 주말에 생각해볼 때 어떤 의미에서든 기분이 좋았다고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히, 상대가 성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일 때, 그 감정은 단지 기분 좋음을 넘어 약간의 환상적인 쾌감을 동반했던거죠.

좋은 기분은 서로를 잘 알지 못할 때 가장 극대화 된다는게 너무나 신기합니다. 사람을 잘 알게 되면, 그러니깐 많은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과 일상을 알게된 후에 우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단 말이죠.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추측하고 단정해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이성적인 판단 뒤에는 미묘하게도 아름다움이라는 순수한 요소가 상실되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 경우에 대화가 즐거웠다는 말은, 어떤 순수한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말과 같다는 말입니다. 

 난 당신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멋있었어요.

 자주 겪는 상황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다가올 때 쾌감이 생깁니다. 우리는 감동을 받고싶고, 영감을 받고싶어하죠. 그런 방식으로 오늘 하루가 매우 고양되길 원하고, 기분 좋은 좋은 상태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가깝고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과 그런 경험을 하기 어렵고 그건 매우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과는 좀 더 대담한 말을 할 수가 있죠. 어떤 사람을 처음 보았고 난 그사람의 스타일과 외모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러가지 궁리를 해보다가 겨우 말을 걸어 봅니다.

 안녕하세요. 취미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을 하십니까.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라고 묻는 것은 조금 지루한 대화 같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합니다. 나는 몇 살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지루한 것 같구요. 나와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노먼이라는 주인공이 있고, 그에게는 아주 멋진 동생이 있어요. 노먼과 동생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며 아버지와 강물 낚시를 즐기는게 행복이죠. 노먼은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갔고, 아주 오랫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동생과 항상 그랬듯이 낚시를 합니다. 노먼이 없는 동안 동생은 낚시를 예술로 만들어버렸고, 동생은 아름다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실 동생은 시골에 살며 도박에 중독되었고 거칠게 살고 있지만 이 이야기속에서 동생은 아름다운 모습만 나옵니다. 동생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낚시를 사랑하고, 따뜻한 사람이죠. 동생은 도박빛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들의 마지막 낚시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우린 이런 아련한 이야기를 좋아한단 말이죠. 결코 현실이 되지 않는 이야기. 그리고 가끔 나도 그 환상의 일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이 책을 일고 있을 때 멋있었어요"라고 말해준다면,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은 더 이상 내가 아닌게 되고, 그 사람이 바라본 환상이 되어버린거죠. 그리고 난 지독히도 그런 말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환상을 사기 위해 그 사람을 더더욱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조차도 그림 속에 집어넣고 싶습니다.

우리의 일상의 많은 부분은 적어도 대화에 있어서만큼은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나의 생활과 나의 가치관들과 나의 경험들이 실상은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일과 분위기를 사랑합니다.(우분사) 그게 전부입니다. 나는 당신의 직업과, 당신의 친구들과, 당신의 생활습관과 당신의 생각과 의견을 좋아하는게 아닙니다. 나는 오직 당신의 스타일과 분위기와 쉽사리 변하고야 마는 그런 감정들의 파편들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외모를 사랑하는게 아닙니다. 오직 당신의 속눈썹 끝부분과, 어느날 묶은 당신의 머리스타일 중 하나와, 조금은 뻔하지만 바지와 잘 어울리는 가는 허리띠를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당신과 대화가 즐거웠던 것은 그 내용 때문이 아니라 내게 만들어주었던 환상적인 느낌 때문입니다. 혹은 내가 만들어줄 수 있었던 당신의 환상에 기뻐했기 때문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런일들은 자주 일어나는게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