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끝나고 난 뒤, 신물류 열풍과 그 이면
2017년 05월 30일 clo 업로드 글
https://clomag.co.kr/article/2304
SNS를 켜면 지인이 추천하거나 공유한 물류 관련 기사와 영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물류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다. 하늘에는 드론이 날아다니고, 공장엔 키바(KIVA)가 움직이며, 도로에는 사람이 타지 않은 무인주행차량이 달린다. 혁신적인 WMS(Warehouse Management System)와 TMS(Transportation Management System)는 항상 찌푸리고 있던 배차계와 재고관리 책임자의 얼굴에 환한 미소를 안겨주었고,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장비는 작업자의 무릎과 허리에 휴식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 같은 물류세계를 보여주는 몇 분 동안의 영상이 끝난 뒤 화면 오른쪽 상단의 X버튼을 누르면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은 초라한 현실이다. 마치 한 바탕 꿈을 꾼 듯한 기분마저 든다. 많은 사람들이 공장 자동화와 물류 로봇, 최첨단 WMS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힘주어 말하며, 그것을 통해 물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투자자와 경영자는 물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더 빠르고 독특한 물류를 만들고 이를 통해 주목받고자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막대한 비용과 첨단 기술의 도입에도 물류는 그에 걸맞은 효율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기업 실적을 갉아먹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이번 글을 통해 ‘신(新)물류의 열풍과 그 이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물류 대행 스타트업 면접을 본 적 있다. 시간이 지나 그 자리에서 나눴던 모든 이야기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들었던 질문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게 기억한다. “물류의 성과를 정량적 지표로 나타낸다면 무엇이겠는가?” 필자는 고민 끝에 ‘물류 서비스의 고객만족도’와 ‘재구매율’이라고 답했다.
필자가 면접을 봤던 회사는 이커머스 화주의 물류 서비스를 대행하는 회사였다. 이커머스 물류라는 것은 서비스의 성격이 강하다. 이커머스 화주들은 물류 서비스가 고객을 얼마나 만족시킬 수 있는지, 그를 통해 제품의 신뢰도는 얼마나 높이고, 어느 정도 재구매를 촉진할 수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필자는 이것이 이커머스 화주들이 생각하는 물류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고객만족도’와 ‘재구매율’을 물류의 성과지표로 꼽은 근거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면접관은 필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면접관은 필자의 대답을 단번에 자르더니 다른 답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마저도 별로였는지 면접관이 직접 답을 말했는데, 그 답은 바로 ‘영업이익’이었다. 물론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 영업이익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경영자였더라도 그 자리에서 면접관과 같은 답을 했을 것이다. 애초에 물류학과 물류 기술은 ‘물류비 절감’을 목적으로 하여 탄생했다. 필자가 학부생이었던 시기까지도 물류비 절감은 절대적인 가치였다.
그럼에도 영업이익이라는 답은 면접을 보러 가기 전 필자가 회사에 가졌던 이미지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답이었다. 또한 필자는 당시 스타트업에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익’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필자는 면접관이 제시한 답에 수긍하기 힘들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필자는 이제 하나의 물류팀을 운영하고 예산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냉정하기까지 했던’ 그때의 답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근래 주목받는 물류 서비스와 물류 시스템에서 본질은 물류가 아니다. 많은 커머스 업체가 유통 과정에서 구매 증가를 위해 물류를 이용하거나,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물류서비스를 강화한다. 당연히 자사 서비스에 특화된 1PL이 주를 이룬다. 물론 이러한 물류서비스가 고객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재구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조금 더 냉정하게 이야기해보자. 고객은 기업의 물류서비스만을 보고 제품을 구매하고, 서비스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가? 물류서비스가 구매와 서비스 만족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지언정 그 비중은 결코 과반이 되지 않는다.
커머스는 제품력과 가격, 편리성 세 가지 요소로 고객을 유인한다. 고객에게 물류는 상품 구매 결정 이후에 고려되는 요소이다. 따라서 물류가 지원부서로서 판매에 관여할 수 있는 것도 구매 직후로 제한돼 있다. 2PL과 달리 커머스 물류에서는 대개 내부 거래가 발생하지 않고 물류가 서비스 지원부서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데, 이 때문에 물류서비스에 대한 고객만족도를 지표로서 추출할 수 있을지라도, 이 자체만으로는 재구매와 고객만족 전반에 걸친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을 커버하지는 못한다.
이렇듯 물류의 성과라는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이에 반해 물류에 들어가는 돈은 어마어마하다. 물류의 이런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물류 투자를 진행할 경우, 고객만족도와 효율성 증가 정도에 비해 너무도 큰 비용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영업이익만으로는 물류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가령 1년에 1억 원의 물류비용을 지출하는 기업이 있다고 해보자. 해당 기업의 영업이익이 10%로 비교적 높다고 할지라도, 1년간 물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10억 원 이상의 매출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실에서 대부분 이커머스 기업이 지출하는 물류비는 이보다 더욱 높고 반대로 매출액은 이보다 훨씬 낮다. 물류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 것과 별개로 물류에 대해 기업이 갖는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지금은 물류에 대한 관심과 이에 수반되는 투자금이 새로운 물류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곧 투자금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생존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다. 기업은 물류를 더욱 발전시킬 것인가, 혹은 일단은 생존할 것인가 결정해야 할 텐데, 전자를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가물류비는 GDP 대비 약 11%, 기업물류비는 평균 8.25%이다. 이 지표만을 가지고 물류비용을 논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고객에게 청구하는 배송비와 실제 배송단가의 차이가 꽤 있는 현재 상황(백마진)을 감안한다면 기업의 물류비용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투자와 효율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커머스의 물류시스템과 운영 프로세스에 커다란 발전이 없는 것처럼 보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한 가지로 ‘물류가 원하는 투자와 경영진이 실제 행하는 실제 투자’ 사이의 간극을 꼽을 수 있겠다.
한 커머스의 물류업체는 현재 필자가 운영하는 물류센터보다 약 스무 배 정도 큰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업체의 SKU(Stock Keeping Unit)를 감안하면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성장세가 둔화된 해당 업체의 상황을 생각할 때 그 물류센터의 크기는 커도 너무 크다.
사실 기업의 성장세가 둔화되어 더 이상의 제품 보유량 증가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만큼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센터의 규모를 결정하는 사람은 물류 실무자가 아니라 경영진이다.
경영진은 왜 그토록 커다란 물류창고를 만든 것일까. 그 저의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필자가 운영하는 센터보다 20배 큰 물류센터를 짓고 운영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은 물류비용으로 계산되며, 해당 비용에 대한 책임과 실적 평가는 고스란히 물류팀이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물류 자동화와 시스템 발전에 투자되어야 할 비용이 비어있는 센터의 임대비용으로 지출되는 탓에, 물류에 투자되는 막대한 비용에 무색하게도 현장의 물류는 아직까지 ‘노동집약적’인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다.
커머스 물류에서 만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런 상황이 비단 한 업체의 문제만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물류팀에서 필요 없을 것이라 판단하는 곳에 엉뚱한 돈이 투자돼 오히려 후속 투자와 발전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물류를 홍보의 수단으로,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서비스의 일환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커다란 창고와 그 창고에 가득 찬 제품을 배경 삼아 “물류서비스의 고도화를 통해 고객만족을 실현하겠다”는 식의 인터뷰는 너무 많이 봐서 이젠 지겨울 정도다. 이에 반해 “본인의 선택에 따라 물류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으며 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적자는 본인이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경영자의 숫자는 턱없이 적다.
물론 경영진의 선택은 절대적이다. 물류팀이 그 선택을 따르면서 동시에 물류비용의 절감을 위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필자는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정도의 물류비가 투입되는 상황에서, 경영진에 의해 투자된 비용을 절감하고 재조정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한 말을 정리해보자. ‘신물류’라는 것이 화려한 무대 위에 올라있다. 하지만 무대 뒤편의 현실 물류는 그에 비하면 한참 초라하다. 정작 실무적으로 필요한 부분에 투자는 이뤄지지 못하고 물류가 홍보나 마케팅의 수단으로 쓰이는 탓이다. 무대 뒤 현실 물류가 정체된 가운데, 필자는 화려한 무대에 오른 연극이 끝난 뒤가 두렵다. 지금은 모두 신물류를 우러러보며 ‘발전의 가치’를 노래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러한 가치가 퇴색되면, 그때는 또 어떤 가치가 물류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과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확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물류가 최첨단과 화려함으로 주목받는 미래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류를 대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결국 어떤 상황이라 할지라도 더 나은 물류를 만들어가는 것은 물류인(人)의 몫이다.
혁신이 끝나고 투자의 정체기가 오기 전에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물류의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동료’들을 쉽고 간결하게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며, 조금 불편하고 수익성이 낮더라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고객’ 중심의 물류서비스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투자 열풍이 지나간 뒤에도 물류가 인정을 받고 오랜 시간 다양한 길을 통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정통물류를 떠나 커머스 물류로 첫 발을 내딛을 때 누군가 필자에게 “그곳에서는 평생 조연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연이고 아니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주연은 무대 뒤 어두운 곳에서 헌신하며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조연과 스태프가 있기에 빛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주연으로서 부담감과 화려함을 포기하고, 대신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하다보면 그것이 쌓여 결국 또 다른 위대함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가 두 번째 커머스 물류에 입사할 당시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명언 한 마디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