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찾기
"쉴 때는 뭘 하는 걸 좋아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어떤 일을 좋아해?"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게 있어? “
"좋아하는 이유는?"
"음.... 글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질문인데, 막상 대답하려고 하면 맴맴 도는 생각들이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아 '어렵다'고 느낀 경우가 종종 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남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까' '어쩌면 알고리즘에 의해 나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대답을 하긴 했는데 진솔하지 않다고 느낀 적도 있다. 내 마음속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꺼내어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왜 어렵다고 느끼는 걸까.
생각해 보면 내 감정에 집중하며 질문을 던져본 경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냥 하고 싶다. 먹고 싶다. 가고 싶다. 본능에 따른 1차원적 감정이 아닌 무엇을 경험했을 때 좋다고 느끼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그 생각을 정리해 보는 연습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 연습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려 한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받아들이기보다 어떤 점에 끌렸는지 생각해 보고, 이유에 대해 글로 풀어써보는 연습이다. 쓰다보면 진짜로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삶을 지키기 위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하루를 살아낼 테고, 그런 날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그저 그런 날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생동감 있는 날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 같다.
1. 여행자의 얼굴을 보는 걸 좋아한다.
어느 화창한 오후의 경복궁,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가득 찬 공간에서 여행자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낯선 언어 중간중간 들리는 웃음소리. 가만히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내 기분마저 싱그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알았다. '나는 여행자의 얼굴을 보는 걸 좋아하는구나.'
2. 9~10월의 화창한 날씨에 햇빛 맞으며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9~10월의 하늘, 햇빛, 바람, 공기. 이 중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가능하면 최대한 실외에 있으려고 한다. 그리고 실외에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은 바로 산책하는 것. (이 시기엔 야외에서 하는 크고 작은 축제들도 많다지)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10월이 되면 도시는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노란색, 연두색, 주황색, 초록색, 갈색, 빨간색. 자연이 주는 천연의 색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보고 나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3. 샐러드김밥을 좋아한다.
<김밥일번가>에 있는 샐러드김밥을 애정한다. 양배추와 마요네즈의 조화가 밥과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고소하면서 아삭한 게 혼자서도 두줄은 거뜬히 해치운다.
바쁜 일과 중에서도 내 배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한 샐러드 김밥
4.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는 걸 좋아한다.
다른 이의 생각이 담긴 기록을 보는 것만큼 영감과 동기부여를 주는 게 없다.
나에겐 최고의 동기부여 자기 계발서
5. 좋아하는 환경에서 몰입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 모티프원으로 북스테이를 다녀왔는데 완벽한 몰입의 경험을 하고 왔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행위가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잠자는 게 아쉽지만 내일 빨리 일어나서 다시 반복할 행위에 설레며 잠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집에서도 가질 수 있지만 이 경험이 왜 이렇게 소중했냐면 나는 환경에 꽤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것도 자연+책+통유리+원목책상!이라면 완전한 몰입 가능
6. 편지 받는걸 (무척) 좋아한다.
말이 짧은 호흡이라면 글은 긴 호흡이다. '쓰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무엇을 쓸지 어떤 마음을 전할지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으며 오직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그래서인지 편지를 받았을 때 유독 감동이 크다. 쓰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다.
편지를 받고 싶을 땐 종종 강요(?) 하기도 한다. 여행을 떠난 이에게 엽서를 써달라고 하거나 생일엔 꼭 생일카드를 잊지 말라고 하거나 등
한편으론 나는 편지에 매우 약하기도 하다. 이 말인즉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편지 한 장이면 모두 해결된다는 거다. 그러니 '미안해'라는 말보단 편지 한 장을 줘라.
7. 도서관(+책방)에 가는 걸 좋아한다.
새로운 도시에 가면 되도록이면 인근 도서관이나 책방에 들리고, 주변에 이러한 시설이 있다면 살기 좋은 동네로 인식한다.
책으로만 둘러싸인 환경이 좋다. 내가 읽어야 할 (아직 모르는) 세계가 우주만큼 넓다는데서 느껴지는 감정은 설렘이다. (이 우주를 탐험해 봐야지!)
마음 가는 대로 탐구할 수 있다. 평소 잘 가지 않았던 철학, 과학 코너에 슬쩍 가보기도 한다. 어린이 코너에 가면 신이 난다. 동화책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쉽게 그림으로 풀어쓴 과학잡지는 초등학생과 나란히 앉아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너도 우주에 관심이 있니? 나도 그래." 이곳에선 편안한 호기심을 느낀다.
8. 낯선 환경에 놓여 있는 걸 좋아한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주는 긴장감과 설렘은 나의 집중력과 에너지를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낯선 환경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두려움 너머엔 내가 즐기고, 배우고, 행복해할 요소들이 반드시 있다는 걸 알기에 낯선 환경을 반기는 편이다.
여행을 사랑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신기한 물건들, 낯선 사람들, 보지 못한 광경, 먹어보지 못한 음식, 가보지 않은 길... 배우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고, 알아가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든다.
9.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든 오늘 처음 만난 사이든 우리가 대화를 시작했다면 서로가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마음에서 일테다. 이러한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소중하다.
대화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는 시원함을 얻기도 한다. 둥둥 떠다녔던 생각이 말하다 보니 말끔히 정리가 되고, 엉켜있던 마음이 하나씩 풀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와 대화하고 나면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진다.
10. 밤을 좋아한다.
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어릴 적 추억이 있다.
집 근처 큰 밤나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오빠와 나는 긴 나뭇가지를 들고 "엄마, 우리 밤 따고 올게요" 위풍당당 집을 나섰다. 그리고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큰 포대자루에 밤 한가득 담아 돌아왔는데 속을 열어본 엄마는 당혹을 금치 못했다. 가시가 잔뜩 돋쳐있는 밤송이를 잔뜩 담아왔던 것. 어렸던 우리는 알밤만 골라내는 법을 몰랐다.
그날 저녁, 엄마는 뜨거운 밤을 속껍질까지 벗겨내서 내 입에 쏙 넣어주셨는데 그 첫맛을 잊지 못한다. 부드럽고 달콤, 고소했으며 포근했다. 그 후로도 엄마는 항상 가을이 되면 내 입에 들어갈 알맞은 크기로 손질해서 입에 쏙 넣어주셨다.
그래서인지 밤을 떠올리면 엄마가 생각난다. 포근하게 달았던 맛과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간식이다.
11. 마트 가는 걸 좋아한다.
국내외 가리지 않고 마트 가는 걸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현지) 마트는 꼭 간다.
식자재에 관심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마트는 내게 컬러의 향연, 다채로운 디자인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그 말인 즉, 알록달록 예쁜 패키징에 끌린다는....
과자코너, 냉동식품코너, 음료 코너, 소스 코너, 생활용품 코너를 마음껏 탐미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패키징을 고른다. 물론 디자인이 전부는 아니지만 보통 예쁘면 맛도 좋다.
12.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추운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11월~2월이 반갑지가 않다. 겨울에겐 미안하지만 얼른 지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유일하게 반기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는 생각만 해도 신나고, 행복해지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음악. 일 년 공휴일 중 이렇게 음악과 잘 어울리는 휴일이 있을까. 재즈, 캐럴, 발라드, 팝송. 무얼 들어도 이 시기엔 '낭만' 그 자체다.
크리스마스를 '세계 사랑의 날'로 지정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이 샘솟는다. 가족, 애인, 친구, 이웃 그리고 모르는 이들까지도 이 날 만큼은 부디 따뜻하길, 행복하길 소망하게 된다.
이 시기엔 어디를 가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화려하기도 하고 소박하기도 한 장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해 동안 고생 많았다고 격려해 주면서 동시에 새 마음을 준비할 수 있게 응원해주는 것만 같다.
13.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이 형성됐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과 만남은 내 시각을 넓히고 나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22살 홍콩을 시작으로 미국, 태국, 중국, 일본, 대만, 영국, 두바이, 아부다비,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베트남, 캄보디아,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체코, 네덜란드, 포르투갈 그리고 하와이까지 적지 않은 여행을 다녔지만, 어느 한 곳도 내가 예상(계획) 한대로 흘러간 곳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여행에서 '뜻밖의 경험'을 했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뜻밖의 음식을 먹게 되고, 뜻밖의 만남을 갖게 되고, 뜻밖의 장소를 가게 되고. 여행은 놀라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나와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다 보니 설령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시련이 와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더 알게 되었다.
14. 춤추는 걸 좋아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게 춤을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2015년 댄싱 9이라는 프로그램에 빠져 그 길로 바로 발레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코로나 발생 전까지 약 5년간 발레 열혈 학생이었다. (내 인생 취미 통틀어 역대 최저 결석률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고는 현대무용에 빠지게 된다.
우선 몸을 움직이니 땀이 나는데 추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이런 물리적인 개운함도 있지만 춤에 더 끌리는 이유는 표현과 몰입 때문이다. 음악을 내 나름대로 해석해 몸으로 표현한다. (어떤 해석도 가능하다) 그리고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만) 집중한다.
또 춤출 때 기분 좋은 감정은 옆 사람에게도 전달되는 힘이 있다. 나의 움직임에 상대도 그 리듬에 맞춰 합류하게 될 때 우리의 기분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15.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위로가 필요할 때,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 제일 먼저 찾는 건 책이다. 항상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랄까. 마음이 힘들다 투정 부리면 괜찮다 다독여주고,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며, 흔들리면 방향을 잡아준다.
16. 요가를 좋아한다.
평생 가져가고 싶은 운동 중 하나가 요가다. 운동이라 함은 온 우주가 도와야만 겨우 갈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한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요가가 주는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내 몸의 작은 불편함도 요가로 풀어주면 몸이 개운해지고, 복잡한 생각으로 복잡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하곤 했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몸과 마음을 다잡아주는 운동은 요가가 으뜸인 것 같다.
17. 백팩을 좋아한다.
책을 읽고, 기록하는 이들은 챙길게 많다. 노트북, 다이어리, 필통, 책, 텀블러, 노트, 각종 문구류 등 언제 어떻게 필요할지 모르니 들고나갈게 많다. 그리고 이 모든 걸 수납해 주면서 두 손을 자유롭게 해주는 유일한 아이템은 백팩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18. 문구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일기를 쓰고, 기록을 시작한 후부터 어쩌면 당연하게도 노트와 펜, 메모지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포인트오브뷰, 롤드페인트, 파피어프로스트 등과 같은 문구점을 좋아하게 됐다.
기록을 아끼는 만큼 그 기록을 더 생생히 빛내줄 물건들을 보면 욕심이 난다. 어떤 이야기로 채울까. 그건 이렇게 써볼까. 이건 이렇게 활용해 볼까 상상하다 보면 어느새 내게 특별한 즐거움이 된다.
19. 엄마, 아빠의 미소를 좋아한다.
부모님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 두 분이 어떨 때 미소를 지으셨더라.
내가 밥을 잘 먹었을 때, 내가 건강해졌을 때, 내가 취직했을 때, 함께 여행을 떠났을 때, 아빠가 좋아하는 회, 엄마가 좋아하는 고기를 함께 먹으러 갔을 때, 함께 사진을 찍었을 때, 이러쿵저러쿵 혼자 재잘재잘 떠드는 나를 바라보실 때,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낼 때....
뭐야.... 다 나와 함께 있을 때잖아....
20. 이름이 불려지는 걸 좋아한다.
자기, 여보, 짝꿍, 베이비(?) 등 상대를 부르는 여러 호칭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내 이름이다.
김춘수의 대표작 <꽃>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는 것. 나를 나로서 받아들여준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