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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림 Sep 20. 2023

아이의 꽃

이제 막 풀린 날에 그저 햇살이 좋을 뿐이었던 어느 날, 작은 봄꽃 하나를 어린아이에게 쥐어 줬다. 아이는 처음 가져본 꽃을 손에서 놓을 줄 몰랐다.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아이는 제 손만큼 작은 꽃과 함께했다. 이른 봄에 이르게 피어 운 없이 꺾인 가지 하나를 주워다 줬을 뿐인데, 아이에겐 그 꽃이 온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운 제 꽃이었다.


꽃은 여느 다른 것들과 다름없이 날이 갈수록 시들었다. 그래도 제 몸에서 떨어진 가지에 달린 꽃 치고는 꽤나 오래 버틴 이었다.


아이는 꽃이 시드는 것을 보면서도 제 꽃을 꽉 쥐고  않았다. 물을 충분히 주지도 않았고, 오래도록 볕 좋은 곳에 두는 일도 없었다. 아이의 꽃은 언제나 아이의 곁에서, 외로이 죽어갔다. 그런 꽃에게 아이는 시드는 모습조차 어여쁜 꽃이라며 끊임없 애정을 쏟아부었다. 간간이 목이나 겨우 추릴 물을 뿌려주며 관심 어린 눈길만을 가득 주었다. 그렇게만 하면 제 꽃은 영원토록 자신과 함께할 거라 믿었다.


그렇게 꽃잎 하나가 떨어지던 날, 아이는 시든 꽃을 부여잡고 안절부절못하며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떨어진 꽃과 떨어질 꽃을 소중히 들고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꽃을 되살릴 방법을 물었다. 하지만 누구도 바짝 말라 무엇도 하지 못할 꽃과 가지를 되살릴 방법은 알지 못했다. 동화 속 마법이라도 부리지 않고서야 그건 안 될 일이란 걸 아이를 뺀 모두가 알았다. 꽃에게 필요했던 건 그저 따듯한 햇빛과 적당한 물이란 걸, 그마저도 오래 살진 못했을 거란 걸 아이만 몰랐다.


아이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꽃은 작은 잎 한 장도 남기지 않은 채 말라비틀어졌고, 꽃이 붙어있던 가지 앙상한 막대기로 남았다. 아이는 그제서야 나뭇가지손에 꼭 쥔 채로 떨어진 꽃잎을 모으기 시작했다. 떨어진 잎을 잘 모아두면 꽃이 살아나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는 꽃이 활짝 피었던 그 모습으로 시든 꽃잎 조각을 맞췄다.

 

그 무렵 아이는 모두 스러지고 잎맥만 파리한 낙엽을 고이 모셔두고 그것조차 어여쁜 제 꽃이라며 애달픈 마음으로 그것들을 건드려 보곤 했다. 손이 닿을 때마다 무너지는 잎을 보며 울고, 그럼에도 자꾸만 손이 가는 마음을 놓지 못해 울었다.


사람들은 아이에게 그만 낙엽을 버리라 말했다. 그건 이미 낙엽도 되지 못할 것이라며. 아이도 알고 있었다. 제 손에 있는 것이 더는 제가 아끼던 꽃이 아니며, 무얼 해도 되돌릴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할 수 없을 뿐이었다. 제게 처음 쥐어진 그 꽃은 제 기억속에서 지독하게 고왔고, 자신은 그 꽃을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았기에 도무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셈하기 어려운 며칠이 지, 아이는 거짓말처럼 꽃을 놓았다. 끝끝내 벗겨져 가던 나뭇가지의 끄트머리에 손이 쓸려 상처가 난 게 화근이었다. 아팠다. 시들어버린 것을 보고 있는 마음도, 그것을 놓지 못하는 제 처지도, 자신을 아프게만 하는 그 가지뿐인 꽃도. 모든 것이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서 놓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어려웠던 일작은 상처 하나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어버린 듯 했다. 그래서 아이는 아침 해가 뜨듯, 어디선가 바람이 불 듯, 그렇게 손을 놓았다.


꽃은 아이의 작은 손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꽃은 이미 없었다.  가지는 불어온 바람에 실려 자유로이 바닥을 나뒹굴었고, 스러진 꽃은 그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꽃은 단 한순간도 비어버린 제 손을 보며 망연해하는 아이를 돌아보지 않았다.

 

몇 개의 철이 지났고, 아이의 곁으로는 그 철만큼이나 많은 꽃이 스쳤다. 곁에 온 꽃에 마음이 동한 적도 있었고, 쓸쓸해하는 아이를 위해 주위에서 권해준 꽃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중 어떤 것도 손에 쥐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아이는 다른 꽃을 볼 때마다 처음 제 손에 쥐어졌던 봄꽃, 그 꽃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래서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작은 봄꽃이 제 손 가득 쥐어져 있던 느낌이 그리웠고 풍성하게 열린 꽃잎이 제 손을 간지럽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제 곁을 스치는 꽃들을 어여삐 여기며 바라 보곤 한다. 그저 햇살이 좋을 뿐인 봄날, 바람결에 실려 오는 이름 모를 꽃내음봄꽃을 그리워하며 하염없이 바라만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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