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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림 Apr 20. 2023

intro. 나도 잘 모르겠는 시작

글을 발행하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 매거진의 모든 글에 지독하게 우울한 이야기를 쓸 거다. 누가 뭐래도 그럴 거다. 한다면 하는 거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 아직 우울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이 우울에 관한 이야기를 써도 되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는 만큼 많은 우울도 있을 텐데, 좋은 것도 아닐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르고선 바람마저 불어주는 격이 될 것만 같았다. 그건 정말 싫은데.


그래서 남들은 어떻게 쓰는지 구경이나 할 겸 브런치에 우울을 검색해 봤다. 결과가 많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 놓인 검색물들을 보니 아차 싶을 정도로 많았다. 무얼 키워드로 검색해도 그보다 더 많은 글이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이미 이 세상엔 내 감정을 보태지 않아도 차고 넘칠 정도로 우울이 만연해 있었다. 


이런 판국에 좋은 얘기는 못 할망정 우울의 한복판을 그려도 될까. 발에 채이도록 많은 이야기 중 하나를 그저 써낼 뿐인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생각에 이 글을 쓰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든 글에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브런치를 그렇게 발에 채이는 무언가를 토해내는 곳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내 우울을 미화하거나, 긍정적으로 해석할 생각이 없었기에 더 그랬다. 지독한 건 지독한 거고, 추한 건 추한 거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긍정은 그저 긍정이겠지. 원체 포장이란 걸 못하는 사람인지라 슬프고 힘든 이야기를 그럼에도 좋았다며 애써 예쁘고 고운 말로 써낼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내가 앞으로 쓸 이야기들은 내가 여태 쓰고 싶었던 글과 정반대에 놓여 있다. 오래도록 글을 써오면서 그동안은 기왕 쓸 글이라면 읽기 재밌고, 방구석 121열에 앉아있을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쓸 이야기들은 조금도 재밌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이 매거진은 시작부터 글러 먹은 듯해 쓰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생겼다.


그렇게 며칠만 고민하려던 게 몇 주가 되고, 몇 달이 지나도록 해결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다 내린 대망의 결론은 아, 모르겠다-이다. 어느 늦은 새벽녘에 문득, 나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자 앞으로도 답을 찾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수없이 많은 우울 중 먼지 한 톨만도 못할 이야기라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끄적여서 세상에 내보내도 되지 않을까. 게다가 세상에 꼭 우울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이야기만 써내야 하는 법은 없지 않은가. 브런치던, 서점이던 항상 우울과 엮인 다른 단어는 극복이다. 마치 우울증은 극복해야만 얘기할 수 있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처럼 우울을 치료한 얘기만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규칙을 깨기로 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우울도 똑같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이라도 살만해지면 우울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우울을 극복한 이들이 다른 이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것일 테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직 우울과 화해하지 못해서 그런 건 못한다. 언제 화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 지독하고 죽을 것 같은 우울의 한가운데에 빠져서 그 진창에서 느끼는 가장 끔찍한 감정을 쓸 거다. 좋은 생각에 희석되지 못한 가장 추하고, 나쁘고, 지독하고, 읽기 싫어질지도 모를 이야기를 만들 거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내게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 안 좋은 것들을 구태여 꺼내놓느냐고. 혼자만 가지고 있어도 충분하지 않냐고. 그런 것도 글이라고 할 수 있냐며. 음, 맞다. 이건 글이라고 하기엔 조악하고, 속앓이 가득 섞인 단순한 불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뭐든 글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이라 그냥 쓸 거다. 나보다 더 우울한 누군가가 고작 그런 것들로 괴로워하느냐고 욕하면 나는 고작 이런 거로 힘들다고 할 거고, 차라리 극복을 위한 과정을 쓰라고 하면 싫다고 할 거다. 무언갈 이겨내려면 그만큼의 힘이 든다. 그리고 그 힘들었던 이야기를 쓰는 것 역시 힘이 든다. 힘이 두 배로 든다!


이 글은 그저 내가 적고 싶어서 적는 이야기이니만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쓸 거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욕심을 부려보자면, 나처럼 우울의 한복판을 지나는 사람들이 내 부정적인 감정들을 보고 공감해 줬으면 좋겠다. 더 슬퍼지지 말고, 그저 단순하게 '나도 그래. 나도 똑같이 힘들어.' 하고 티 내지 않으려 버티던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껏 우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슬픈 감정의 끝에서 세상에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게 당신만 있는 게 아님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누군가의 우울에서 조금이라도 나와 닮은 부분이 느껴질 때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세상에 이런 개 같은 감정을 나만 느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늘 답답하던 숨이 편히 쉬어진다. 내가 별나고 모자라서, 남들보다 뒤떨어진 머저리라서 이토록 괴로운 게 아니라는 게, 누구나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내겐 가장 큰 위로가 됐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지금보다 우울이 깊어지면 그 사람도, 나도 그저 별난 머저리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 깊은 골방 한구석에선 그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저 지금 당장 너무 슬퍼서 스스로를 바퀴벌레라고 여기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뿐이다.


쓰는 나마저도 이런 꼴이기에 앞으로 쓸 내 글에서 누군가 힘을 얻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길 바라진 않는다. 그런 건 나도 없고, 그럴 만한 내용을 적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저 잠시나마 공감해 주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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