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울했던 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아침부터 차에 치이고 싶었던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늘은 너무 하얘서 구름조차 보이지 않았고, 세상은 온통 탁해서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그 무렵엔 혼자 있을 때면 무엇이 슬픈지도 모르면서 자꾸 눈물이 나곤 했다. 화장실에서도, 집에 가는 버스에서도, 정거장부터 집까지 가는 200미터도 안 될 것 같은 길목에서도 그랬다. 느닷없이 울적해지면서 내가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울음부터 나왔다. 분명 눈물은 눈에서 흐를 텐데, 왜인지 눈보단 심장이 젖었다. 무거운 돌만 골라서 쌓은 돌무더기를 들추면 그 안에서 잔뜩 짓눌린 심장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박동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아무리 되짚어봐도 도무지 기억나질 않는다.
내 첫 상담은 대학 보건실 옆에 작게 딸린 상담실이 시작이었다. 3학년이 끝나가던 11월의 어느 날, 학교 건물 벽에 붙어있던 진로상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학습 상담, 시험 대비 불안 상담, 진로상담, 그리고 심리 상담. 매 학기 보던 종잇조각인데 그날따라 유난히 심리 상담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날 하늘이 맑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날은 학부 조교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몇 주 내내 골머리를 앓고 있다가, 그 일과 잘못 엮인 탓에 두 해를 내리 같이 일했던 사람과 크게 싸웠다. 바빠서 점심은 못 먹었고 이틀 전엔 이석증 진단을 받아서 숨만 크게 내쉬어도 토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제때 치료하지 못해 가만히 있어도 시큰거리는 발목을 가지고 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갈 길이 아득했지만, 어떻게든 올라가야지 싶어 난간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귀하게 움직여 봤다. 발목은 시큰, 귀에선 이석이 사락. 시큰, 사락, 시큰, 사락. 내 마음은 2층을 지날 무렵부터 계단 오르긴 포기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길 원했다.
나는 고작 계단도 못 오르는 병신인가 생각하던 차에 그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늘 동경하던 상담이, 속상하고 짜증 나 죽을 것 같은 순간에, 부수고 싶을 정도로 맑은 하늘이 보이는 창문 옆에 붙어있었다. 그래서 교내 근로가 끝나자마자 미친 척 상담소에 갔다. 핑계는 진로상담이었고, 진심은 심리 상담이었다.
첫날은 한 시간이 넘도록 검사지만 작성했다. 검사지의 문항이 뭘 묻는지 너무 빤히 보이는 탓에 작성하는 내내 마음을 다잡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솔직하게 작성하면 다음 주의 나는 우울증 환자다.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은데. 검사를 하는 내내 최대한 덜 우울해 보이게 작성하고 싶은 허울과 그러려면 뭐 하러 왔냐는 타박이 쉴 새 없이 싸워댔다. 이런 게 검사 오염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수십 번쯤 했고, 솔직하게 적기 위해 노력한 탓에 수십 번쯤 우울해지고 나서야 지독한 검사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시간이, 반나절 같았다. 그 검사지에서 내가 한 유일한 거짓말은 나는 때때로 죽음을 생각한다는 문항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게 유일했다.
본격적인 상담은 그다음 주였다. 기대도, 걱정도, 불안도 없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일주일 사이 상담은 내가 자처한 일인데도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런 마음이었던지라, 상담소에 들어간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의 모든 대화를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상담사 선생님은 꽤 나긋하신 분이었는데, 그 나긋한 말로 나를 칭찬하기도 했고 질책하시기도 했다. 내게 정말 열심히 살았다며 격려해 주시면서도, 그래도 끼니는 잘 챙겨 먹었어야 한다며 단호하게 말을 그었다. 그래서 마음이 갔다. 이 사람은 마냥 좋은 말만 늘어놓진 않겠구나 싶어 괜찮은 분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그날 상담의 끝자락에서 내게 심리학이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서 왜 전과를 안 하고 대학원을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때까지도 진로상담은 정말 핑계였기에, 나는 이미 오래전에 내려둔 답을 꺼냈다.
“처음엔 전과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름 좋잖아요. 로봇공학. 게다가 주위에서 다들 제 적성에 상담은 아닌 것 같다 그러기도 했고, 로봇도 하다 보니 나름 재밌어서 일단 이거 잘 배워뒀다가 대학원에서 심리학이 정말 아닌 것 같다 싶으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에요. 실패에 대한 대비책 정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실패에 대한 대비책은 실패하고 세웠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 지레 겁먹지 말았어야 했다. 그 대비책이 너무 훌륭해서, 내 목표는 시작조차 해보지 못했다. 차라리 그때 실패할 일은 생각조차 하지 말고 나를 내가 가고 싶었던 길로 밀어냈으면 좋았을 텐데. 그 길이 한 길 낭떠러지였더라도, 길 끝에서 뛰어내리지 못할 거라면 되짚어 돌아오면 될 일이지 않은가. 그랬더라면 그날 이후 내가 한 모든 선택에 후회를 꼬리표로 매달지도 않았을 테고, 아주 어릴 적부터 바랐던 미래를 더는 못 이룰 꿈으로 터부시 하게 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미래는 내가 이뤄가야 할 일이지만, 꿈은 꿈이다. 너무 이상적이라 항상 바라 마지않아도 이루지 못할 게 더 많은 것. 그게 꿈이다. 그래서 자면서 하는 상상도 꿈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꿈속에선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조선 시대에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건 모두 한낱 꿈일 뿐이니 말이다. 내가 동경해 오던 세상은 이제 꿈이 됐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내 대답에 선생님은 사람이 똑 부러져서 좋다고 그러셨다. 선생님도 그땐 모르셨겠지. 똑하고 내가 부러져 버릴 줄은. 그리고 그 상담이 내 마지막 상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