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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림 Apr 22. 2023

혼자 살기엔 통조림 한 캔도 채우지 못할 세상이라서.

노멀 피플, 샐리 루니

노멀 피플은 몇 년 전에 읽었던 소설이지만, 이렇게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아니었다. 책의 내용 자체는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만큼 제법 괜찮다. 두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며 인간적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었어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노멀 피플은 극찬을 받은 것치곤 문장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작가의 표현이나 서술방식이 나와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두 번째 읽은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고 본다. 다시 본 샐리 루니의 표현들은 모든 서평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섬세했고 너무 내 취향이었다. 특히 주인공의 심리는 조금만 신경 써 책을 읽으면 작중 인물의 생각이 살에 닿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마치 그가 숨을 쉬는 평범한 동작조차 그녀를 아프게 할 만큼 강력하다는 듯, 눈앞에 존재하는 그의 육체에 극도로 섬세하게 반응했다.

이런 표현들이 그렇다. 이 책은 주인공의 심리를 단조로운 묘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감각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아플 때 느껴지는 통증처럼 강렬하다는 것. 저 표현만 해도 인상 깊은 구절이라 적어뒀던 것도 아니고, 글을 쓰려니 생각이 난 문장도 아니다. 그냥 책의 초반부 중 아무 데나 펼쳐서 가져왔다. 그만큼 이런 묘사가 책에 흔하다.


그리고 저 문장으로 내가 맨 처음 이 책에 끌리지 않았던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묘사 자체는 정말 괜찮았지만, 글의 맵시가 별로였다. 번역되며 글이 이상해진 것인지, 원래부터 그랬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저 확실한 건 문장이 내 입에 맞지 않았다는 거다. 그냥 읽어도, 소리 내 읽어도 글이 붕 뜬 느낌이었다. 아마 나였다면, 저 문장을 “그녀는 마치 코넬이 숨을 내쉬는 평범한 동작만으로도 자신을 아프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눈앞에 선 코넬의 움직임에 극도로 섬세하게 반응했다.” 정도로 쓰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노멀 피플은 아무래도 번역 소설이니 그냥 내가 멍청해서 문장을 이상하게 느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글이 쉽게 읽히고, 맵시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샐리 루니의 표현은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 많으니 말이다. 아래의 문장도 그렇다. 읽기는 불편했지만, 글이 소화되고 난 후 남는 느낌이 굉장히 뚜렷했다.    

 

다만 이렇게 짐작해 본다. 사실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끌리지만, 그녀의 세상에 결코 속할 수 없는 사람에게 깊이 끌린다는 것은 마치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농담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임을 그녀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처럼 특정 상황이나 감각을 빗댄 묘사들은 말로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한 번쯤 느껴봤던 감각을 떠올리게 했다. 단순히 우스꽝스럽다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기엔 어려운, 복잡 미묘한 감정들. 똑같이 우습다고 적더라도 그 우스운 감정의 모양은 모두 다르게 생겼다는 게 글에서 느껴졌다.      


노멀 피플의 묘사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주인공들의 생각이 그저 전개를 위한 생각이 아니라, 정말 누군가의 머릿속을 옮겨둔 것 같았단 것도 있다.


공기는 향긋하고 가벼우며, 엽록소처럼 푸르다. 코넬이 알기로는, 유럽에서는 엽록소를 넣은 추잉 껌을 판다. 머리 위 하늘은 매끄럽고 검푸르다.

저 문장은 코넬이 울고 있는 메리앤을 보다 문득 눈에 들어온 파란 하늘을 보며 떠올린 말이다. 하늘이 엽록소처럼 푸르다 해도 엽록소를 넣은 추잉 껌은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기에 굳이 글로 적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저건 코넬의 ‘생각’이었다. 상황이 엽록소를 넣은 추잉 껌을 떠올리기 적절하지 않더라도 넌지시, 불현듯 떠오를 수 있는 하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당시 코넬은 메리앤이 우는 것을 보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엉뚱한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나만 해도 피곤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집에 가고 싶다가, 괜히 집에 있는 물건들이 떠오르는 탓에 집중이 안 되곤 한다. 엽록소를 넣은 추잉 껌 하나가 마음이 복잡하다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직접적인 말 없이 코넬의 혼란스러움을 보여줬다. 그래서 나는 저 문장을 읽자마자 앗, 하고 옮겨 적었다.


여러 서평에서 말했던 것처럼 샐리 루니의 글은 감각적이고 섬세한 게 맞다. 그냥 그게 맞다.   

  


책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노멀 피플은 메리앤과 코넬의 별다를 것 없는 사랑 이야기다. 인간관계조차 어리숙한 아이가 서툴게 사랑하고, 상처받고, 오해하고, 틀어지는 등 먼 길을 에둘러 함께하는 그런 이야기다. 메리앤과 코넬은 자기 자신조차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적부터 서로에게 끌렸다. 메리앤은 주변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탓에 다른 사람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했고, 반대로 코넬은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에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어릴 적 메리앤은 왕따였다. 반대로 코넬은 학교에서 꽤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 코넬은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자신이 왕따인 메리앤과 어울리는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코넬의 행동들은 메리앤에게 큰 상처를 줬고, 두 사람은 그때부터 한없이 엇나가기 시작했다.


둘의 관계는 대학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물론 메리앤은 전과 달리 자신을 꾸밀 줄 알게 되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반대로 코넬은 말수가 적은 촌스러운 학생이 되었다는 점은 달랐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끌렸고, 여전히 자기 자신을 가꿔나가는 것도 벅찼다. 코넬이 가진 사회적 열등감과 메리앤이 가진 낮은 자존감은 둘을 수차례나 틀어지게 했다. 메리앤과 코넬은 그렇게 한참을 돌아서 서로에게 돌아갔다.


두 주인공은 이야기의 끝에서도 각자의 결점을 해결하진 못했다. 게다가 서로 엇나갈 때와 다르게 드라마틱하고 열정적으로 연애를 하지도 않았다. 노멀 피플은 메리앤과 코넬이 너무나 덤덤하게,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함께하며 끝났다. 심지어 곧 둘이 떨어지게 될 것을 암시했기에 이 평화가 폭풍전야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평범한 일상에 서로를 들여놓은 느낌이 드는 게 책의 취지와도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 꽤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결정들을 내리고, 그러고 나면 삶 전체가 달라진다는 건 재밌는 일이야. 지금 우리는 사소한 결정들로도 삶이 크게 바뀔 수 있는 그런 기묘한 나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껏 넌 나한테 대체로 아주 좋은 영향을 미쳤고, 나는 내가 확실히 더 나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 네 덕분이지.

메리앤과 코넬은 서로에게 딱 맞는 모양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의 약점을 건드리는 모양을 타고난 탓에 함께하는 것보단 찌르는 게 훨씬 쉬워 보였다. 하지만 메리앤은 코넬과 함께하고 나서야 자신이 보통의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건 아마, 코넬이 메리앤의 치부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메리앤을 아껴주기에 그랬을 거다. 메리앤에게 있어 코넬은 자신을 숨기거나 더할 필요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제 모든 것을 보여준 사람이 자신을 받아줬으니, 여태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거나 제가 별난 아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미용실에서 웃기게 잘렸다 생각한 머리도 누군가 예쁘다 말해주면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는 것처럼 메리앤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코넬이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다 알면서도 좋아해주니 여전히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진 않아도 자신도 특별히 모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받아들 게 아닐까.


노멀 피플은 언뜻 보기엔 단순한 연애 소설인 듯 보이지만, 마냥 가벼운 내용의 책은 아니었다. 소설 군데군데에 메리앤과 코넬 나이대에서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고민과 불안들이 조금씩 묻어있었다. 친구들의 평판을 두려워하는 어린 마음, 반대로 평판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서 생기는 고립감, 집안 형편에서 오는 경제적 어려움이나 애정 결핍,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 여러 가지 불안이 조금씩 담겨 있다.


샐리 루니는 이에 대해 어떠한 답도 제시하지 않았다. 예시에 가까운 그림도 그리지 않았고, 그것들을 그저 늘어놓기만 했다. 난 특히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누구도 같은 결말을 가지진 않을 테니 어떠한 답도 내놓지 않는다. 무엇도 확실하게 알 수 없어 끊임없이 불안할 테지만, 그걸 알 수 없는 만큼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런 점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얄미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타인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그런 시도를 그만두는 게 어떨까. 차라리 타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상대 또한 기대오도록 내버려 두는 게 어떨까.

나는 소설에서 대놓고 교훈적인 문장을 던지는 걸 싫어한다. 글자들이 갑자기 이야기를 깨고 나와선 내 멱살을 잡고 현실로 끌고 오는 듯한 느낌이 싫다. 그래서 노멀 피플에서 저 문장을 읽었을 땐, 솔직히 반항적인 마음이 가득했다. 알 사람은 다 알 텐데 굳이 그래야 했을까. 연애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에세이를 만난 것도 같고. 이게 샐리 루니가 말하고 싶었던 그 한 문장인 건 분명한데 일단 좀 그랬다. 사실 바로 위에 적은 문장도 그래서 별로 안 끌리긴 하다. 그래도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라는데 어떡하겠어.




이거 쓰기 정말 힘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무 어려웠다. 읽기 어렵다면 그건 글을 쓴 내가 힘들어서... 글에다 화를 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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