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람쥐 쌤 May 05. 2022

제 이상형은요.

2학년 말하기 듣기 수업 시간이었다.  

오늘 가르칠 단원의 제목은 '외모'였다. 한국어로 외모를 표현하는 형용사와 다양한 어휘를 학습할 예정이었다.  '키가 커요', '둥근 얼굴이에요', '키가 작아요', '얼굴이 하얀 편이에요' 등 외모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을 배우고, 활동지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활동지에는 배운 표현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적용해 보는 다양한 문제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나의 이상형'이었다.


"여러분, 좋아하는 스타일, 외모에 대해 배운 표현을 사용해서 문장으로 써 보세요."


아이들은 키득거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외모를 한국어로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한국어 전공 2학년은 모두 39명인데 그중 남학생은 단 한 명뿐이다. 아무래도 일본어, 한국어 전공은 여학생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시피 하다.  


승우라는 이름을 가진 남학생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항상 숙제나, 활동지 진행상황을 한 번씩 더 봐주곤 했다. 오늘도 슬그머니 승우의 옆에서 활동지를 들여다보면서 틀린 글자나 문법을 고쳐주려 했다.


'제가 좋아하는 남자는 키카 커요. 얼굴이 하얀 사람이에요. 엑소의 백현이에요.'


승우가  문장을  순간 나는 약간 당황했다. 처음에는 '여자' '남자' 잘못 썼다고 생각했지만 엑소의 백현은 분명히 남자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태국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들을 많이 볼 수 있고, 그것이 또한 관광, 의료 산업으로도 발전했다. 나도 그 사실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맞닥뜨리게 될 줄 몰랐다.


알고 보니 3학년 교실의 남학생 2명도 모두 게이라고 했다. 그리고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깨달음 이후 내 눈에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 스쿨버스인 롯르앙을 올라타고 인문대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도서관 앞에서 덩치가 큰 학생 하나가 버스에 올라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남학생의 얼굴을 하고 있고, 수염도 거뭇거뭇한데 여학생 교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태국은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다.)  


정말 이들의 자유분방함과 거침없음에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이후 전해 듣기로는 교복은 성별과 상관없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여학생용과 남학생용  선택하여 입을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조깅하다 보면 만나는 세 친구

이제는 태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외모 그대로 그 사람의 성별을 감히 단정 짓지 않게 되었다. 교수들 중에서도 스스로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페이스북을 방문해보면 좋아하는 이성의 성별을 메인 페이지에 표시해 놓았다.


남학생이나 여학생들에게 괜스레 '너 여자 친구 / 남자 친구 있어?'라고 묻는 것도 조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선생님 인문대 남자들은 모두 남자 아니에요. 남자 친구를 공대에서 찾아야 돼요."


여학생들의 농담 섞인 말에 괜히 겸연쩍어 함께 웃었다.  

오늘도 태국 학생들은 나에게 편견 없는 세상, 다양성과 개성이 인정받는 세상을 조금 열어 보여준다.





작가의 이전글 가르치며 배우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