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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 쌤 Feb 16. 2022

신입생 이름 작명소

너의 이름은

내가 지금 근무하는 태국의 대학은 1학년 신입생들을 위해 한국어 이름을 지어주는 전통이 있다. 신학기를 앞두고 65명이나 되는 신입생들의 작명 과제 앞에서 나는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태국에는 닉네임 문화가 있다. 원래의 이름이 너무 길고 부르기 힘들어서 어릴 때부터 닉네임을 들어 부른다.  닉네임은 원래 이름에서  수도 고, 좋아하는 , 캐릭터 심지어 맥주 이름까지도 사용할 정도로 자유롭다.


기존의 태국 이름, 닉네임, 그리고 자신이 선호하는 이름까지 빼곡하게 적힌 출석부를 놓고  고민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 그리고 아름답고 우아한 외모를 지향하는 태국의 여학생들은  의미를 자신의 한국 이름에도 담고 싶어 했고 태국의 무덥고 지루한 여름, 녹음보다는 ‘가을’, ‘’, ‘단풍’, ‘얼음등의 이국의 기후를 닮은 이름을 갖고 싶어 했다.


아직 신입생의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한자 자전과 국어사전, 그리고 최근 유행하는 이름 리스트로 무장한 나는 그야말로 즉석 작명소를 열었다. 요즘 인기 있는  그룹 멤버들의 이름부터 시작해서 엄마들이 선호하는 아기 이름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부를  있는 국경과 성별을 초월한 이름까지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혹시 선배들의 이름과 겹치는 불상사가 있을까 엑셀 프로그램으로 중복 검사까지 하면서 이름 짓는 일에 공을 들였다.


태국어로  의미를 담은 이름을 갖고 있던 학생에게는 ‘ 자를 주었고 맑고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에 ‘크리스털 의미까지 담아 ‘수정이라는 이름이 탄생하는 식이었다. 희고 차가운 눈을 닮고 싶은 학생에게는 ‘눈송이에서 따온 ‘송이라는 이름을 주었고, 한국의 서늘한 날씨를 좋아한다는 학생에게는 ‘가을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드디어 새 학기 첫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나와 태국인 선생님  분이  조가 되어 신입생을 한 명씩 불러 얼굴을 마주하고 한국어 이름의 뜻을 설명해 주었다. 이름의 뜻을 놓칠세라  기울여 다가 마침내 의미를 알고   얼굴에 번지던 미소가 참으로 예뻤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비로소 나에게  꽃이 된다고 하였던가? 처음 마주한 낯선 얼굴들은 내가 지어준 이름을 달고 마침내 우리 학교, 우리 학생이 되었다. 마지막 학생까지 모두 이름을 았고 나는 65명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태국 대학교 한국어 학과의 인기는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넘어서고 있다.  인기와 영향력은 1학년 새내기에게 지어준  한국 이름에서부터 에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현수라고 이름을 지어준 여학생이 며칠 뒤 찾아와 볼멘소리로 ‘쌤 저는 왜 남자 이름이에요?’라고 하여 ‘장미’로 바꿔준 건 또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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