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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Mar 23. 2023

선의(善意)의 배신

자, 이제 누가 '-레기'일까?

마음을 다스리는 영약.

사람의 선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연이어 뒤통수를 맞고 나니 인간 불신이 생긴다. 그리 거창하게 이름 붙일 건 아니다. 그럼에도 첫 번째는 알싸하게 기분이 나빴고, 두 번째는 분해서 씩씩댔다. 이해타산으로 움직이는 게 사람이라지만 그 사실이 좀 그랬다. 내가 선 바닥이 어디인지 새삼 깨달았다.


‘기레기’니 뭐니 멸칭을 붙여도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거대한 집단을 묶어 편의대로 휘두르는 폭력의 한 가지 방식일 뿐이다. 쓰고 기록하는 일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다만 멸칭으로 불리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속여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얼마 전 정부부처의 늑장대응을 지적하는 기사는 부처 관계자의 간곡한 홀딩 요청으로 출고 시간을 미뤘다.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입장 정리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믿었다. 다음날 입장을 듣기 위해 걸었던 전화 여덟 통엔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공기업의 이상한 정황을 듣고 서술한 기사는 이해관계가 얽힌 회사에서 정정 요청이 왔다. 양측 주장이 모두 사실일 수 없는 상황인데 사실 재확인 과정에서 한쪽이 입을 닫아 버렸다. 정황은 맞는데 물증은 없고 취재원이 입을 닫았으니 기사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이나 개인의 이해를 위해 거짓 정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선의에 대한 결과가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건 조금 실망스러운 면이 있다. 기사 제보해 봤자 득이 없는 건 모두가 안다. 그래도 이런 방식의 대응이 굳이 필요했나 싶다. 아닌 말로 ‘~라고 했는데 입장을 바꾸었다’ 라거나 SNS 기반 뉴스처럼 ‘~라고 하더라’로 기사를 마무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롯이 개인의 실패로 남은 결과가 한동안 자존심을 찔렀다. “갤럭시 쓰라”는 십여 년 전 선배의 권유는 하필 이럴 때 뇌리를 스친다. 살가운 목소리로 통화하더라도 (통화) 녹음이 필요한 사이라는 것을 자꾸만 잊어먹는다. "그러다 크게 한 번 덴다?"는 경고를 이 정도로 막았으니 이것은 '길(吉)'일까 '흉(凶)'일까, 그저 앙금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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