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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Feb 28. 2020

D+30 | 퇴사하기 좋은 날

4부 | 꿈을 현실로 만드는 몽상가 - 퇴사하기 좋은 날

-D+30 | 퇴사하기 좋은 날

 

[그림27] 퇴사하기 좋은 날


오늘따라 날씨가 우중충하다.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세찬 바람이 불었다가 비바람이 불기도 한다. 오늘도 가장 먼저 출근해 커피를 한잔 마시고 뉴스를 보고, 마지막으로 사무실의 내 자리를 정리한다. 일주일 동안 야금야금 정리를 했더니 이제 작은 종이가방에 들어갈 만큼의 서류를 제외하곤 모두 정리가 되었다. 불필요한 문서를 오전 내내 파쇄하고, 괜스레 바닥을 쓸고 닦고 사무실 안과 밖의 여기저기를 산만하게 돌아다닌다. 남아있을 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얼굴로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구내식당에서 마지막 점심을 먹고 여느 때와 같이 동료들과 담소를 나눈다. 내가 쓰던 컴퓨터를 포맷하고 후임에게 모든 업무자료를 인수인계한다. 그동안 내가 일 하면서 체득한 노하우를 담은 '엑셀 꿀팁' 같은 쓸데없는 문서도 선물한다. 모니터 옆에 기르던 다육이를 맡기며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듬뿍 주면 되노라 알려준다. 내가 쓰던 인체공학 마우스와 블루투스 키보드도 후임의 자리에 가져다 둔다.


퇴근 2시간 전 갑자기 한 사람이 사무실에 찾아왔다. 1년 전 퇴사하고 고국에 돌아가 몽골판 슈퍼스타 K로 연예인이 된 K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언제나 가장 늦게까지 남아 노래 연습을 하고 연습 후에는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하던 자기관리의 왕이었다. 이주노동자로 고생스러운 한국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자신의 추억이 깃든 연습공간에 와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몽골에서는 얼굴이 너무 알려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다는 그는 몽골에서 한 손에 꼽히는 SNS 스타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의 근황을 동료들에게 소개하며 연예인이니 얼른 사진 같이 찍으라며 드립을 날린다.


"우리 회사 홍보해야지! 자 친한 척 옆에 서봐요. 하나 둘 셋!"


사진 속에 나는 없었다. 그렇게 몽골의 슈퍼스타와 함께 마지막 날 동료들의 모습이 담겼다.


퇴근 10분 전, 동료들에게 굿바이 메일을 보내고 마지막 퇴근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입사해서 반년만에 7명의 입사동기들을 먼저 떠나보냈던 동료 B는 오늘 나와 함께 퇴사 동기가 되었다. 우리는 꼰대 김철수의 방으로 갔다. 무언가 바쁜 척 열심히 일하고 있던 김철수는 모니터 앞에 앉은 채 우리 쪽을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동안 고생했어. 잘 가"


회사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퇴사하기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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