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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미 Feb 27. 2020

D+5 | 가족여행

4부 | 꿈을 현실로 만드는 몽상가 - 퇴사하기 좋은 날

4부 | 꿈을 현실로 만드는 몽상가

[그림25] 꿈을 현실로 만드는 몽상가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 - 정철 <꼰대 김철수> 중에서 -


나는 언제나 조용한 아이였다. 친구들은 내가 생각이 많다고들 했다. 나는 자기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거리를 걸으며 건물 외벽에 즐비한 간판을 보며, 텅 빈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공상에 빠져있는 날이 많았다. 머리 속에 생각을 잔뜩 쌓아두고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아예 입을 다물고 있는 날이 많았다. 첫 번째 인도 여행에서도 그랬다. 군대를 전역할 때 선임이 물려준 낡아빠진 통기타를 들고 떠난 인도 여행에서 나는 타지마할도 보지 않고 바라나시의 한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에서만 3주를 머물렀다. 숙소 베란다에서 갠지스 강을 내려다보며 하루 종일 기타를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도미토리에 묵는 사람들이 옥상 파티를 열었고 여행자들의 요청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그들 앞에서 처음으로 내 자작곡으로 노래를 했다. 꽁꽁 숨겨두었던 내 공상들이 멜로디가 되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방에서 매일 기타만 치던 나에게 게스트하우스 마스터 샨티 할아버지가 인도 이름을 지어주었다. Gitanjan, 뱅골어로 '멜로디를 세상에 퍼뜨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시인 타고르의 '기탄잘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나는 기탄잔처럼 살았다. 대학생활의 꿈이었던 '대학가요제'에 나갔고, 친구들과 함께 음악영화제의 '거리의 악사'가 되었고, 라이브클럽에서 활동하며 20대의 졸업앨범 같은 <소년 핑크> EP앨범을 발매했다. 조금씩 조금씩 몽상을 현실화하는 딴짓들을 추진해 나갔다.


-D+5 | 가족여행

[그림25_2] 우리집 막내 몽실이의 등장

사표를 내고 회사 여름휴가 기간 동안 고향에 내려왔다. 가족들을 보니 마음 한편이 시큰하다. 못난 아들을 키우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의 주름이 오늘따라 더 깊게 파여 보인다. 동생이 데려온 작은 강아지 '몽실이'가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밥벌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아들을 보는 것보다 꼬리 치며 졸졸 따라다니는 몽실이의 애교를 보는 것이 부모님의 정신건강에 더 이로울 것 만 같았다.


가족들이 함께 차를 타고 영덕으로 여행을 떠났다. 게 껍데기에 밥까지 쓱싹 비벼서 게걸스럽게 먹고 나서, 아버지의 잔에 술을 기울이며 말했다.


"아버지 저 퇴사해요"


순간 엄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아버지에게 하는 이야기들을 잠자코 듣고 있던 엄마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가 따라드린 소주를 원샷하신 후 앞으로의 계획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내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내 뭐 네가 카면 아나 우야든동 올라가믄 똑띠 해레이"


그날 밤 엄마는 내 방에 찾아와 자초지종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회사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나는 머리 속의 행복 회로를 풀가동해가며 최상의 조건만을 가정해서 말했다. 내 계획이 그럴싸해 보였는지 엄마가 내 방을 나가며 말한다.


"아무튼 잘해, 올라가믄 빠릿빠릿하게 살아레이"


사실 부모님이 나를 신뢰할 수 있는 가장 큰 근거는, 그렇게 아침잠이 많고 느릿느릿하던 내가 매일 아침 7시 수영반에 다니며 3개월 동안 8Kg을 감량한 나의 뱃살이었을 것이다. 아들 녀석이 무언가 열심히 해보려고 꽤나 부지런을 떨고 있나보다 하는 믿음. 어쩌면 이 못난 아들은 이제 걱정하기도 지쳐 귀여운 몽실이 육아에 더 신경 쓰고 싶으셨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싸준 반찬을 두 손 가득 들고 기차역에서 내리며 다짐한다. '다음엔, 아버지 어머니 자랑거리 만들어 갈게요. 빠릿빠릿 똑띠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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