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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

by 효문

영국 작가 존 번연(John Bunyan)이 1678년에 발표한 우화 소설 [천로역정]은 전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손꼽히고 있다. 원제는 The Pilgrim's Progress이다. 이 원제에 도대체 누가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중국 선교사들에 의해서 '하늘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뜻에서 '천로역정'이라는 제목이 붙었고, 우리나라에서 번역할 때도 그걸 그대로 차용했다고 한다.


'하늘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제목에서 짐작이 가능한 것처럼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한 남자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책(성경)'을 읽고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천성(하나님의 나라)을 향하여 길을 떠난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그의 여정이고, 2부는 그의 아내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내용이다.

크리스천은 길을 가면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고, 방해자들은 만나게 된다. 그가 겪는 고난과 그가 만나는 사람들, 그가 거쳐가는 모든 곳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며

또 모든 인간을

이렇게 만드는 내면의 부패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물을 뿌려 준 아가씨는 복음입니다.


아, 무지여,

당신은 아직도 어리석음을 못 버리는가?

열 번이나 주어진 선한 충고를 무시하다니.

그대가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

오래지 않아 악한 일을 당하게 되리니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기억하시오.

두려워 말고 서시오.

선한 충고를 잘 받아 간직하고 귀를 기울이시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를 경홀히 여긴다면

내가 장담하건대,

무지 씨, 당신은 길 잃은 자가 될 것이오.




나는 기독교도인도 아니고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본 적도 없지만, 그의 여정은 충분히 재미있다. 그는 '절망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 '허영의 시장'과 '의심의 성'을 지나며 갖가지 유혹을 겪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신실, 소망'이라는 좋은 도반을 만나 함께 믿음의 길을 걷지만, 동시에 '천박·나태·거만·무지'와 같은 방해자들을 만나기도 하고, 마귀 '아볼루온'과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표현은 인간 심리를 통찰과 이해를 담고 있다. 종교의 색채를 걷어내고 본다면,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따뜻한 가르침을 전해준다.


크리스천이 소망에게 '작은 믿음'이 강도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듣기에, 그는 나머지 길을 거의 슬프고 쓰디쓴 불평만 하면서 갔다 합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자기가 어디서 어떻게 강도를 만났으며, 누가 그 짓을 했는지, 자기가 무엇을 빼앗기고 어떻게 상처를 입었는지, 그리고 하마터면 목숨까지도 빼앗길 뻔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답니다.


크리스티아나 일행이 흉악하게 생긴 두 남자의 공격을 받자 구조자가 나타나 그들을 구해준다. 그때 크리스티아나가 가까운 곳에 이런 악한들이 잠복하고 있는데, 왜 주님께서 안내인을 딸려주지 않았는지 묻지 구조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청구하지 않는 것을 줄 필요는 없지요. 청구하지 않은 것을 주면 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필요를 느낄 때 주어지면,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유효 적절하게 사용하게 되지요. 만약 우리 주님께서 자진해서 안내자를 딸려 주셨더라면, 당신들이 미리 요청하지 못한 실수를 지금처럼 절실히 느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합하여 선을 이루게 되지요. 당신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좀 더 세심해졌으니까요.


이 책에는 영어 원문에는 없는 소제목이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80장에 달하는 '루이스 레드' 형제의 삽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세밀하고 유려한 곡선과 상징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그들 형제의 삽화는 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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