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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준수 Jan 30. 2024

당신은 평균이 아니다.

'평균의 종말'을 읽고


평균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아마 보통의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통의 사람에 속할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즉 평균적인 것은 대다수를 포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또한 평균보다 나은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고 평균보다 못한 사람은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이 책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평균에 대한 개념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된 배경에는 몇몇 주요 인물들 때문이다.


아돌프 케틀레는 평균에 가까운 것이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여겼다. 프랜시스 골턴은 케틀레의 평균 개념에서 추가적인 개념을 더했다.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우등하거나 열등한 인간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사람을 우월층과 저능층으로 나누었다. 이러한 개념을 이어받아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는 평균적인 교육 방식을 정립했다.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골턴이 케틀레의 이론을 확장시킨 것과 유사하게 테일러의 평균적인 교육 방식에서 우등생과 열등생을 구분했다.


과연 평균이라는 것이 유의미한 것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는 사례를 통해서 납득시킨다. 그중 하나의 사례가 4,063명의 공군 조종사의 신체 치수 측정에 관한 것이다. 10개 항목의 신체 치수를 측정하여 평균을 냈을 때 모든 항목의 평균과 일치하는 조종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임의로 3개 항목을 고른 후 그 항목 평균과 일치하는 사람의 비율도 3.5%가 되지 않았다.  평균적인 조종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체 측정이 이뤄진 배경은 잦은 전투기 사고의 원인을 전투기 조종석의 설계에서 찾기 위함이었다. 결론적으로 평균에 의해 조종석을 설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평균을 기준으로 제작된 조종석은 그 누구에게도 맞지 않는 조종석인 것이다.


결국 평균은 허상이고 중요한 것은 바로 개개인성이다. 개개인성을 무시한 평균이 왜 허상인지는 개개인성의 3원칙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개개인성의 3원칙은 들쭉날쭉의 원칙, 맥락의 원칙, 경로의 원칙이다.


들쭉날쭉의 원칙

우리는 복잡한 특성을 일차원적 단위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의 체격이 크다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키는 물론이고 어깨너비, 팔, 다리를 포함한 몸 전체가 모두 큰 이미지를 떠올린다. 우리가 그렇게 만든 체격이 크다는 사람의 평균적인 모습은 사실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은 앞선 평균적인 조종사의 예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책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아래 사진에서 어느 남성의 체격이 더 클까?


출처 : 평균의 종말


다양한 항목에서 모두 평균 이상 인 사람은 둘 중 아무도 없다. 각 항목마다 평균 이상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누가 더 체격이 크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각각의 항목에 대해 점수를 부여하고 평균을 내는 방법은 적절할까? 그렇게 했을 때 두 사람이 평균 점수가 동일하다면 두 사람의 체격은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게 뜯어보면 누가 더 체격이 크냐는 질문 하나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개개인성은 어떤 평균적인 지표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항목과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들쭉날쭉의 원칙이다.


출처 : 평균의 종말


신체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지능에서도 동일하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두 여성의 IQ는 평균 점수를 냈을 때 동일하게 103이다. 그러면 두 여성은 동일한 지능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할 것이다. 하지만 각 항목의 평가 결과를 보면 두 사람의 능력은 동일하지 않다. 한 사람은 공통점 찾기에 약하지만 블록 짜기에서는 뛰어나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좀 더 간소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영수 평균 점수가 90점으로 동일한 학생이 있을 때 대학에서 평균에 기반한 선발을 한다면 두 학생 모두 선발하는데 무리가 없다. 그것이 국문학과인지 영문학과인지 수학과인지 관계없이 동일한 90점이라는 평균의 잣대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국어 100점, 영어 100점, 수학 70점으로 평균 90점인 학생이 수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면 그 학생이 국문학과나 영문학과에 진학했을 때보다 훌륭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만약 이것이 기업 채용이라면 어떤가?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데 학점과 같은 평균 점수가 과연 유의미하게 생각되는가?


들쭉날쭉의 법칙이란 것을 몰랐을 때에도 본능적으로 그러한 개개인의 차이에 대한 것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교육자로서 살고 있는 지금 개개인성에 대해 조금은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개인성을 인지하고 행동했다기보다는 행동의 결과를 개개인성의 법칙 중에 대입해 보니 얼추 궤를 같이 하는 것 같다. 그 행동은 바로 면담을 통해 이야기 나눈 것이다.


들쭉날쭉의 법칙에 대입해 볼 수 있는 면담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사람마다 다르다. 빠르게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느리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A를 잘하는 사람이 있고 B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본인은 A를 잘하는 사람인데 B를 잘하는 사람, C를 잘하는 사람 ... Z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서 본인이 부족하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본인이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른 누군가도 당신을 보면서 비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잘하는 것, 당신보다 본인이 못하는 부분만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잘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잘하는 사람인가? 잘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할 수 있는가? A를 잘하면 잘하는 사람인가? B를 잘하면 잘하는 사람인가? A, B 모두 잘하면 잘하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A, B 둘 다 할 줄 모르지만 C, D, E를 잘하는 사람은 잘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본인만의 무기를 만들어라

모든 것을 다 잘하려고 하지 마라. 모든 것을 전부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본인이 좀 더 관심이 가거나 좀 더 잘하고 있는 부분을 갈고닦아서 본인만의 무기로 만들어라. 그 외 부분은 일정 수준까지만 만들어 놓고 천천히 높여가라.


맥락의 원칙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MBTI는 어떤 사람의 기질을 하나로 못 박고 있다. 이것이 평균적으로 내향적인 편인지 외향적인 편인지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지표일 수 있다. 하지만 상황과 무관하게 내향적인 사람은 항상 내향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항상 외향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나? 어떤 한 개인이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일 수는 없는 걸까? 아동 발달 연구 분야 권위자인 워싱턴대학교 교수 유이치 쇼다가 아동들을 조사해 본 결과 실제로는 모든 아동에게 두 성향이 모두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아이는 운동장에서는 외향적이지만 수학 수업에서는 내향적이었다.


쇼다의 다른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2명의 소년을 표준적인 공격성 척도 질문지를 활용해 평가했을 때 두 소년은 거의 동일한 수준의 공격성을 나타냈다. 이런 본질주의적 사고로 보면 두 소년의 장래 전망은 비슷하고 비슷한 형식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 아이는 어른들에게 높은 공격성을 보이지만 또래 아이에게는 공격적이지 않다. 다른 아이는 반대로 어른들에겐 공격적이지 않으나 또래 아이에게 공격적이다. 어떤 상황이었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왜 그 아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맥락을 파악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또래 아이에게 공격적인 아이는 또래 아이들이 남몰래 괴롭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른다면 선생님은 문제아로 생각하고 부모님을 호출할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어른들에겐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까. 집에선 얌전한 아이니까.


출처 : 평균의 종말


더욱 놀라운 내용도 있다. 성실성이나 친절함과 같은 타고난 성품이란 것이 존재할까? 결과적으로 천성이란 없었다. 천성이라 여긴 것도 맥락에 의해 다르게 나타난다. 성실성에 관한 실험으로 학생들에게 감독을 받는 조건과 감독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시험지를 직접 채점하도록 했다. 첫 번째 조건은 부정행위를 할 경우 적발이 위험이 있고 두 번째 조건은 적발이 위험이 없는 환경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을 저지르는 학생은 어떤 환경이든 부정을 저지르려고 시도할 것 같다. 아니면 소심해서 감독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학생은 모든 시험에서 부정을 저지를 것만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시험 중에 다른 학생의 시험지를 커닝한 학생이 직접 시험지를 채점할 때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 수학 시험을 본인이 채점할 때는 부정을 저지른 학생이 언어 시험을 채점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출처 : 평균의 종말


모든 맥락에서 평균적으로 성실한 사람 거의 없다면 도대체 성실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가 타고난 성품이라고 믿었던 것마저 맥락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다.


맥락의 법칙에 대해 알고 난 뒤에 떠오른 평소의 생각과 경험이 있다.


페르소나, 내 아이가 그럴 리 없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드라마 등에서 비행을 저지른 학생의 부모가 말하는 진부한 대사가 있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누군가는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친구에게 보이는 모습과 부모님에게 보이는 모습은 다르다. 이것을 페르소나라고 생각했다. 맥락의 법칙도 일종의 페르소나의 영향을 받는 영역인 것 같다. 아니면 그 반대이든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과거에 어떤 조직에 있을 때 팀장님이 나의 과묵한 성격을 바꿔보고 싶어 했다. 본인도 비슷한 성격이었지만 많이 달라졌다고 성격은 노력하면 바뀌는 것이지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 분이었다. 솔직히 나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 마음도 없었다. 다만 바뀔 수 있는 여지에 대해서는 생각했다. 바로 내가 팀장이 되는 것이다. 팀에서 막내였던 나의 상황과 팀장이라는 상황은 다르다. 아마 그분도 점점 직급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상황들이 변하면서 과묵한 성격을 벗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본다.


과거와 현재의 회사 생활

지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과거의 팀원들이 현재의 나를 보면 낯설다 못해 깜짝 놀랄 것 같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수다스럽다곤 할 수 없겠지만 과거만큼 과묵하진 않다. 무엇보다 내가 회사에서 농담을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의 맥락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주요 요소가 몇 가지 있다. 난 말보다 글이 편하다. 그래서 슬랙으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환경이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조직이 젊고 연령대가 비슷하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비슷한 것 같다. 수평적인 문화와 내가 나이가 들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조합인가? 스스로를 냉철하게 판단해 보면 나는 나보다 어른들에겐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맥락의 성격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좀 어려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수평적인 문화에서는 나이를 신경 쓰지 않다 보니 훨씬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거기다가 나이도 들어버려서 좀 더 심적으로 부담이 알게 모르게 적은 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그냥 좀 더 능글맞게 되는 것 같다. 아무튼 맥락에 맞는 것이 fit이 맞는 것이고 결국 케미가 폭발한다고 생각한다.


경로의 원칙

아이들이 걸음마를 떼기까지 정상적인 경로가 있을까? 1단계로 엎드려야 하고 2단계로 기어 다니기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걸음을 떼는 것과 같은 경로 말이다. 그리고 1단계는 몇 개월 내로 이뤄져야 하고 2단계를 몇 개월 내로 이뤄져야 한다는 경로 말이다. 이제는 눈치채겠지만 없다. 심지어 저자의 아이는 기어 다니기 전에 걸음부터 떼었다고 한다. 그 후 기어 다니기로 오히려 퇴보했다고 한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미리 정해진 청사진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모든 아기들이 몸 움직이기 문제를 저마다 독자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트레이서는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인 오족아기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대신에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서 끌고 다니는 '엉덩이 끌기 단계'가 있었다. 이 현상에 대해 조사해 보니 오족이 아기들은 거의 75퍼센트의 시간을 몸이 똑바로 펴진 자세로 아기띠에 업혀 다녔다. 간혹 바닥에 내려지더라도 엎드리지 못하게 했다. 바닥에 오해 닿으면 치명적 병에 걸리거나 기생충 감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깨끗한 바닥을 가진 환경이라면 아기가 기어 다니는 것이 걷기 전에 당연한 단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평균적 행동 패턴을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경로를 강요하는 사회적 관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경로의 원칙 또한 면담에서 이야기했던 내용에 알게 모르게 녹아 있었다.


결국 상향 평준화될 것이다.

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 수료 시점에는 모두 실력이 상향 평준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믿지 않는 눈치이긴 하다. 실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모든 내용을 다 잘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 기간인 10개월 안에 모든 것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면 어떤가? 행여라도 그런 친구가 있다면 3년 후라도 그 친구와 비슷해진다면 그만 아닌가? 들쭉날쭉의 법칙에서도 말하듯이 사람마다 어떤 부분은 빠르게 이해할 수 있고 어떤 부분은 느릴 수 있다. 인생이 100년이라고 가정하면 하필 지금 느린 시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롤 모델이 있어서 그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하는데 본인은 잘 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그 사람과 본인은 다르니까. 그와 같은 경로로 가지 않아도 결국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프로그래밍 학습법에 대해 오래된 논쟁에도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론부터 공부하기 vs 프로젝트부터 진행하기

둘 중 뭐가 더 나은가. 애초에 이렇게 나눠서 생각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부터 공부하면 당연히 그 후에 프로젝트를 진행해 봐야 할 것이고 프로젝트를 하려면 모르는 내용을 책이나 기타 다른 방법을 통해서 학습을 해야 한다. 순서는 관계없고 자신의 스타일을 따르면 된다. 하지만 성장하려면 결국 둘 다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경로가 있을지도 모른다.


책의 후반부에는 개개인성의 원칙으로 성장하는 기업의 이야기와 교육 모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시점에서 돋보였던 것은 인도 최대 IT 기업인 조호 코퍼레이션이 설립한 조호대학교였다.


조호대학교

조호대학교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학교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돈을 주면서 이 대학에 다니게 한다. 이곳에서 프로그래밍, 수학, 영어, 시사 문제를 배운다. 거의 모든 교육이 자율적 학습 속도에 따라 진행되며 프로젝트 중심이다. 등급은 아예 없고 그 대신 학생들에게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을 준다. 우아한테크코스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놀라웠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은 일차원적 등급 매기기에 가하적일 정도로 초점을 맞추면서 모든 학생이 평균적 학생과 똑같이 하도록,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모든 학생과 똑같이 하되 더 뛰어나도록 강요하고 있다. 조호대학교와 우아한테크코스는 확실히 이런 점에서 차별점이 있는 것 같다.


아래의 문장도 과거의 어느 조직에 있을 때 생각했던 것이라 반가웠다.


재능과 연령대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섞어놓으면 실제로 더 뛰어난 제품이 나옵니다.

제품을 만드는데 최종 결정권을 가진 어느 분에게 보고를 하는 자리에 문서를 가져다줄 일이 있었다. 회의실 내부를 보니 직급이 높으신 분들만 있다 보니 연령도 높았다. 우리 제품은 여기 모인 사람들보다 연령대가 낮은 사람들이 주요 고객일 텐데 어째서 그 연령대의 목소리를 낼 사람이 없는지 의아했다. 결국 그 사업 망했다.


마지막으로 개개인성의 원칙을 고려한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한다. 전반적으로 수긍이 되지만 현실적으로 반영하기까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존 시스템을 버리고 새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 자체에서 오는 거부감과 수많은 정책들과 이해관계자들이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교육 모델은 개개인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저자가 주장하는 가설이기 때문에 여러 사례로 입증한 개개인성의 원칙보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앞으로 실제로 도입하는 실험적 사례가 늘어나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새 시대의 교육 모델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 학위 시스템 대신 교육적 성취도의 기본단위로서 자격증을 수여한다. 자격증은 경우에 따라 딱 한 번의 수업 혹은 몇 번, 1년 이상 필요할 수도 있다. 여러 자격증이 누적돼 보다 상급의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다.


성적을 실력으로 대체하기 : 대학의 등급과 평점 대신에 실력의 측정으로 대체하자. 실력이 입증됐는지 않으니 명확하며 어떤 식으로든 자격증에 필요한 실력을 쌓아야 한다. 단순히 과목을 이수했다는 것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온라인에서 독학을 하거나 직장생활에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만의 속도로 학습하며 자신의 능력에 따라 평가받을 수 있다.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 허용하기 : 학생 개개인에게 더 많은 통제력을 양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실력 중심의 자격증 수여를 토대로 단 한 곳의 대학을 선택해 교육받는 방식을 넘어서고 자격 인정 절차가 특정 조직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 그래야 자격증 취득 방법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격증을 쌓아나갈 수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지역 대학이든 온라인 수업이든 단체 수업이든 일대일 대면 수업이든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다. 6개월 동안 주 1회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2주간 단기 집중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새 시대의 교육 모델(자율 결정형이며 실력 중심의 자격증 수여 시스템)은 개개인의 원칙과도 보다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 먼저 이런 시스템은 들쭉날쭉의 원칙을 실현해 학생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뭔지, 어떤 것에 재능이 있는지, 이런 흥미를 살려서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를 파악하도록 해준다. 맥락의 원칙도 고려해 학생들이 장차 실제로 일하게 될 직업 환경과 최대한 가까운 맥락에서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다. 경로의 원칙 또한 적용해 학생들 각자가 자신의 속도에 맞춰 자신에게 적절한 순서에 따라 학습할 수 있게 해 준다.


교사, 학부모 필독서라는 문구가 표지에 적혀 있 만큼 교육적 관점에서 평균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교육자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느꼈던 개개인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증명해 준 이 책 덕분에 앞으로는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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