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를 불고, 얼굴이 동글동글한지, 말랐는지, 등 본인의 대략적인 생김새를 설명하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묘사하였다.
현장에는 수어 통역과 문자 통역 서비스도 제공되었다.
소소한 소통이라는 사회적 기업의 홍사강 디자이너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강연을 통해 발달 장애인을 위한 가독성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더 쉽게 정보를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쉬운 정보 만드는 건 정말 안 쉽구나’ 어려운 일이란 것도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워크숍도 이어졌다.
우리는 박물관 전시물 두 가지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면 더 쉬운 정보로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실습도 하고 발표도 했다. 모두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퍼실리테이터인 나는 결과물을 활동지로 만들어 냈다.
반면 발달 장애인과 함께 하는 활동가 한분은 오감을 모두 사용해서 그 전시물을 설명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의성어도 많이 쓰고, 설명도 하고, 목소리 높낮이도 다르게 하며 발달 장애인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물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의문인 점은 그날 그 모든 통역과 서비스가 준비되었음에도 그 서비스를 누릴 장애인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 모두 돈을 주고 고용하고, 현장에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모두 비용과 자원이 소요되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 준비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한 이벤트는 아쉽기도 하고 돈 낭비가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스친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등(Equality)과 공평(Equity)의 차이를 보자.
평등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양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Equally distribute)
하지만 공평(Equity)은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차별화된 자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Distribute to meet the same goal)
그날의 행사는 충분히 공평성이 고려되었다.
하지만 그 공평성을 누리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내게 돈 낭비처럼 순간 느끼게 된다.
자원의 분배에 있어 더 많은 차원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목적이 나를 위한 목적이 아니기에 나에게는 낭비처럼 보인다.
누군가가 누리고 있고 적절하게 활용된다고 낭비라고 느끼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쉽게 낭비로 인식한다.
마치 비어 있는 장애인 주차장과, 비어 있는 지하철의 임산부석처럼 누군가 앉아 있다면 그곳은 유의미한 곳이고 비어 있다면 순간 낭비처럼 보인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당장의 현상과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 생각을 멈추지 않고 한 발자국만 더 가보자.
현상에 질문을 더해보자.
이 행사의 기획의도는 장애인들이 참여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을까?
왜 장애인들은 비 장애인과 동일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었음에도 오지 않았을까?
장애인들은 이런 심포지엄에 대한 정보를 알고 오고 싶었지만 못 온 것일까, 알지 못한 것일까?
참가하고 싶었다면 이곳까지 와야 한다는 접근성에는 어려움이 없었을까?
이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 만으로 비 장애인이라는 생각의 한계에서도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여전히 공평의한계가 느껴진다.
나히드 도사니 박사는 평등과 공평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Equality is giving everyone a shoe. Equity is giving everyone a shoe that fits." - Dr. Naheed Dosani "평등(Equality)은 모두에게 신발을 주는 것입니다. 공평(Equity)은 모두에게 맞는 신발을 주는 것입니다." - 나히드 도사니 박사
누군가의 목적 달성을 위해 공평한 환경을 만들어도 그 환경에 닿기까지에는 여전히 더 많은 고려와 배려가 필요하다.
나히드도사니 박사의 정의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다.
포용
Inclusion (포용)은 모두가 맞는 신발을 신고 세상을 나올 수 있도록 고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