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만들고 도전을 막는 고정관념에서 나오는 공격
2022년, 팬데믹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기였다. 나는 80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글로벌 역량(Global Competence) 강의를 해야 했다.
하루 종일 여러 강의가 이미 진행된 뒤, 내 강의는 그날 교육의 마지막 순서였다.
강의 전 담당자와 인사를 하는데 담당자는 여성 강사님이라서 참가자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내가 오늘 강의하는 내용은 여성이랑 전혀 관계가 없는데 말이다.
“왜 여자 강사님이라 좋아하나요?”
담당자 “오늘 하루 종일 남자 강사님이셨거든요?”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남자 강사님만 종일 보며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어떤 여성성을 드러내면 그들에게 좋은 걸까? 잠시 고민했다. 여성스럽게 말해야 하나? 애교를 부려야 하나?
강의를 시작하기 전 담당자가 참가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드디어 오늘 여성 강사님이 오셨네요. 이제 아름다운 김지혜 강사님께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강의해 주시겠습니다.”
코로나로,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도 마스크를 쓰고 강의를 해야 했다.
그 소개를 듣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스크를 쓴 게 정말 다행이다. 오늘 절대로 벗지 말아야지, 만약 벗으면 사람들이 실망할지도 몰라.’
단 두 개의 단어 '여성'과 '아름다운'로 강의 내용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신감을 약간 잃었다.
이 두 단어는 내 강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나는 강의를 시작하면 ‘여성’이라는 이미지와 ‘아름다움’을 의식하게 되었다.
담당자의 말에 당황한 나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농담으로 강의를 시작하였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써야 해서 아쉽네요. 마스크를 벗으면 겁나 이쁜데 말입니다.”
3시간 강의 내내 나는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아무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비슷한 일이 독일에서도 있었다.
독일에서 17개국 국적을 가진 트레이너들과 함께한 연수에서, 세 명씩 팀을 구성해 활동 설계하고 발표해야 했다.
필리핀 참가자가 폴란드 여성 트레이너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제니가 다음 활동을 진행합니다. 모두들 환영해 주세요.”
바로 그 순간, 평가자가 활동을 멈추었다.
“방금 소개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모든 유럽 참가자는 손을 들었고, 아시아 참가자들은 아무도 문제를 눈치채지 못했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뭐가 문제라는 거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평가자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것이 바로 섹시즘(sexism)입니다. 진행과 상관없는 여성성, 외모에 대한 언급입니다.”
그렇다면 섹시즘(sexism)은 무엇일까?
섹시즘은 성차별과 같은 대놓고 하는 공격이 아니라 성별 고정관념(Gender Stereotype)을 강화하고 프레임에 갇히게 하는 미세 차별이다.
예를 들어, 남자아이가 분홍색을 좋아하면 놀림을 받거나, 술을 잘 마시는 여성을 보고, ‘여자가 왜 이렇게 술을 잘 마셔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별에 맞는 무엇인가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이를 언급함으로써 성별 테두리의 제약을 미세하게 강화하는 행동과 말이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소개가 나와 제니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 “아름다운”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능력이나 궁극적 기능을 위한 목표 외에 다른 곳, 외모라는 곳으로 관심을 흩트리게 한다. 콘텐츠 전달자뿐만 참여자에게 동일한 영향을 주게 된다.
- 개인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세 공격(Microaggression)이다.
미세 공격(Microaggression)은 대부분 의도하지 않고, 칭찬처럼 보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불편함을 준다.
유럽에서는 젠더 감수성이 높아 이러한 문제를 즉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표현과 말에 민감하다.
하지만 독일에서 교육받는 동안 아시아인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아시아 권에서는 아직 그 인식이 낮다. 반복적으로 이런 미세 공격에 노출되면 개인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하고, 영향을 받아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미세 공격을 가하는 사람이 이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 방법을 살펴보자.
이러한 행동이 잠재적 공격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대부분 의도하지 않게 일어나고 칭찬이라 착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공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을 맡은 역할과 전문성에 집중하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정체성의 집합체이다. 여성, 엄마, 아빠, 나이, 인종, 직위, 경력 등, 어떤 것이 그 상황에 맞는 정체성의 요소일까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의 특정 정체성의 요소가 그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인지 그 연결성을 확인한다. 연관성이 없는 것이라면 칭찬처럼 느껴지더라고 하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방의 능력과 자신감을 존중하며 불필요한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말에는 힘이 있다. 하지만 올바른 단어 선택과 인식은 상대를 고정관념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켜줄 수 있다.
한국의 규칙과 제도는 사람들의 행동변화에 빠르게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의식, 생각의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아주 작은 변화임에도 심지어 한 세대를 넘어가기도 한다.
우리는 한번 알게 되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작은 정보와 경험들이 쌓여 우리의 지식이 되고, 생각이 된다. 생각은 말을 변화시키고, 말은 행동을 변화시킨다.
오늘도 그 작은 변화를 꿈꾸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양념 한 스푼의 글을 작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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