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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즘(sexism) 그 모호한 경계선에 서서...

알게 되면 보이는 것들

by 김지혜

형식교육에 비형식 교육을 어떻게 잘 통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워크숍에 참여하였다.

17개 국적을 가진 참여자들로 이루어진 워크숍이었다.

참여자의 반은 아시아계이며 나머지는 유럽 국적의 참여자다.

3명이 한 팀을 이루어 함께 설계한 워크숍을 진행해야 했다. 워크숍 이후 피드백의 시간을 한 시간 이상 가진다.

서로 지적할 사항과 개선할 사항, 장점, 적용 방법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유익한 시간이다.

배움과 성장을 위해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많은 노력을 들였던 본인의 워크숍에 너무 많은 피드백으로 힘들어하는 참여자도 있었다.

참여자들의 피드백이 끝나면 전체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총괄 퍼실리테이터가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피드백을 준다.

퍼실리테이터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섬세한 안목으로 피드백 줄 만큼 경험과 다양한 관점을 보유한 실력가였다.


필리핀 남성, 폴란드 여성, 인도네시아 남성으로 구성된 팀의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 팀의 워크숍이 끝나고 서로 피드백을 주는 시간이었다.

참여자 간 피드백이 오가고 총괄 퍼실리테이터의 피드백 시간이 되었다.

총괄 퍼실리테이터는 “이번 워크숍은 sexism(섹시즘)의 문제가 가장 커서 사실 다른 것을 평가할 수가 없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sexism의 이슈를 알아 차린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나는 '뭐가 문제라는 거지?'라는 생각뿐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sexism이란 단어만으로 성희롱 같은 나쁜 행동인 큰 무언가를 상상했었다.

문제가 전혀 없어 보였던 워크숍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뭐가 뭔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Sexism(섹시즘)을 알아 차린 대부분의 사람은 유럽인이 이었다.

워크숍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너무 궁금했던 나는 유럽인 한 명을 찾아가 도대체 무엇이 섹시즘인지 물었다.

워크숍 진행 시 팀 내 폴란드 여성 팀원을 소개할 때 그녀를 아름답다고 칭찬하며 아직 싱글이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했다. 물론 얼마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인지도 함께 언급하며 소개를 하였다.

싱글이라는 부분은 굳이 이야기 안 해도 되는 부분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칭찬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언급이 과연 sexism 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섹시즘은 우리의 생활과 대화에 문화처럼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는 선입견의 모호한 경계처럼 느껴졌다.

무엇이 섹시즘이고 무엇이 아닌가?

누구나 알아차리는 성희롱이나 남녀 차별이 아닌 그 모호하게 느껴지는 상황에서 섹시즘의 명확한 기준이 뭔지가 궁금해졌다.


SEXISM 은 성차별로 번역되어 있다. 오랫동안 성차별이라는 말은 gender inequality로 통역하고 사용해 왔으며 sexism은 내게 새로운 단어이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www.dictionary.com/에서 정의한 sexism의 일부이다.

attitudes or behavior based on traditional stereotypes of gender roles:

the underlying sexism in the marketing of dolls to girls and trucks to boys;

discrimination or devaluation based on a person's sex or gender, as in restricted job opportunities.

성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에 근거한 태도 또는 행동:

인형을 소녀에게, 트럭을 소년에게 판매하는 드러나지 않는 섹시즘

제한된 직업 기회와 같이 개인의 성별에 근거한 차별 또는 가치 저하.


What causes sexism?

Sexism begins with prejudices. A prejudice is a bias against a person or group of people. It is often based on myths, stereotypes, and generalizations that a person learns from others.

Biases about sex and gender can be explicit, something that a person is aware that they have. And they can be implicit, in which case, a person is not consciously aware of their biases.


섹시즘의 원인은 무엇인가?

섹시즘은 편견으로부터 시작된다. 편견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선입견이다. 이는 주로 타인을 통해 학습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고정관념, 일반화에 근거한다.

성별과 젠더에 대한 선입견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게 명백히 드러나는 경우와 내포되어 있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독일 워크숍에서의 섹시즘 지적 이후 나는 일상에서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글로벌 역량 관련 강의를 진행하러 한 기관의 연수원에 도착했다.

교육 담당자는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여성 강사라서 수강생들이 좋아하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왜 여성 강사면 좋아하나요?”라고 물었다.

강사풀의 90%가 남자라 여성 강사가 많이 없어 여성 강사가 반가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의 시작 전 나를 소개할 때 여성 강사분이 오셔서 좋겠다는 말과 함께 나의 경력을 소개하였다.

이미 누가 봐도 나는 여성임을 알 수 있고, 나를 소개하는데 굳이 여성이라는 말을 먼저 해야 했을까?

명확히 정의할 순 없었지만 나는 그 소개가 불편했다.

하지만 여성 강사라 내가 혹시나 조금 부족한 강의를 하더라도 나를 더 너그럽게 받아 줄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불균등한 강사 성비율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였을 수도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은 나에게 플러스인가 마이너스 인가?

내 마음은 무엇 때문이 불편함이 느껴졌는지 정의할 수 없었다.

독일 워크숍에 참여한 유럽과 아시아 친구들이 함께 있는 채팅방에 나의 혼란스러운 생각을 공유했다.

과연 이건 섹시즘일까? 채팅방의 모든 참여자들은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가 강의 역량과 전문성을 소개하기 이전 성별을 언급한다는 것은 그 전문성을 흐릴 수 있는 멘트였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 모호함의 경계에 대해 더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온라인에서 만났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나 흔할 것 같은 섹시즘이 유럽인들도 여전히 경험하는 일상의 불편함이었다.

칭찬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표현들과 그러한 말들 속에 정의할 수 없는 나의 불편한 감정들 속에서 우리는 많이들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섹시즘은 어쩌면 칭찬과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이점이라는 생각에 묻혀 나를 오롯이 나라는 한 인간으로 설 수 없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과연 나는 나라는 인간으로 어떠한 성별에 따른 이점도 가지지 않고, 오롯이 능력으로 당당할 수 있는가?

이는 유독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스스로에게 던져볼 질문이다.


분명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들에 비해 기회를 가지지 못한 부분도 있겠지만 나는 분명 남성보다 기회를 더 가진 경우도 있었다.


나는 싱가포르 회사에 일하며 중국 지사에서 영업으로 일했었다.

나는 싱가포르 회사에 일하는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중국어를 못하면서 중국 지사에서 일을 했었다. 남성들이 대부분인 기술과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나라는 여성, 외국인이라는 점은 분명 남들보다 튀었고, 그 점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기 쉬운 큰 장점으로 작용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여성이라서 중국말을 잘못해서 혹시나 무시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 터프하고 강하게 행동했었다. 회사의 동료들은 나에게 '타이거'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의도된 나의 이미지 ‘타이거’는 객지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혹시나 여성이 내 일보다 먼저 보이지 않기 위해 내가 만들어간 부캐 같은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감이 사회가 가진 선입견으로 인해 저하될까 우려한 내가 만들어낸 나의 아이덴티티(Identity)였다.

그런 나는 업무에 있어 소통하기 쉬운 동료라기보다 세 보이기 위해 애쓰느라 쉽게 발끈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상대였다.


나는 내가 가진 이점과 단점을 모두 우려한 나머지 내가 아닌 다른 아이덴티티로 살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나는 오롯이 나일 수는 없었을까?

강하게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과연 나를 약하다고 여겼을까?

센 언니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면 사람들은 나를 무시했을까?

좀 더 부드러운 대화를 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일을 해내는 영업력 보다 다양성을 이해하는 리더십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까?


내가 노력 없이 거저 가진 그 무엇인가가 사라진 나는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자.

내가 젊어서 기회를 가졌다면 젊지 않은 나는 그 기회를 가질 역량을 가졌는가?

아름다움으로 인정받는다면 그 아름다움이라는 나의 특장점을 버리고 나로 설 수 있는가?

내가 공평하게 가져야 할 기회를 잃었다면 그 기회를 찾기 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노력하지 않고 원래부터 거저 가져왔던 그 어떤 혜택은 용감하게 버릴 수 있는가?


섹시즘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 일상에서 많은 사례들은 보이기 시작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축구와 농구 수업을 다니는 둘째 딸에게 여전히 “여자가 무슨 축구냐, 농구냐!”라는 말을 한다.

어느 한 모임에서 남성분이 여성으로 둘러싸인 테이블에 앉으며 “아이고 제가 꽃밭에 왔네요”라고 했다.

우리가 개인이 가진 한 인간으로서 보이기 이전에 여성들로 모여 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는 남성.

약간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보내는 찬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는 찬사로 느껴지는가? 무감각해진 것인가?

함께 회식을 마치고 난 후 남성의 한마디 “여자들이 왜 이렇게 술을 잘 마셔!”

부정적인 마음이나 반감이 아닌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쉽게 던진 농담이었을 텐데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인지하지 못한 채 던진 말들과 긍정이라 여겨지는 표현들에 어떻게 상대가 상처받지 않게 섹시즘을 인식시켜 줄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 상황을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섹시즘에 대해 알게 된다면 나처럼 조금씩 인지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 난 섹시즘의 그 모호한 경계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위해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기억하고자 한다.

첫째, 내가 노력 없이 거저 가진 그 무엇인가가 사라진 나로 오롯이 당당할 수 있는가?

둘째, 섹시즘의 상황에서 누군가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Culture does not make people. People make culture. If it is true that the full humanity of women is not our culture, then we can and must make it our culture.”

-Chimamanda Ngozi Adichie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완전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문화가 아니라면 우리는 누군가 완전한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문화로 만들 수 있고 또 만들어야 한다.”

(상기 번역에서는 '여성'을 '누구'라는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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