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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상 속 사회적 신뢰

효율성과 속도를 만드는 신뢰 문화

by 김지혜

어느 날 저녁, 나는 아이와 함께 홈플러스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기로 했다.
키오스크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번호표를 받은 뒤 자리를 잡았다. 주문 번호가 전광판에 번호가 뜬 것을 을보고 번호표를 찾아보니 찾을 수가 없었다.
“엄마, 그냥 가서 달라 그래도 줄 거야!”

잠시 망설였지만, 이상하게도 ‘음식을 안 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들지 않았다. 카운터에 가서 “번호표를 잃어버렸어요”라고 하니 식당 직원은 “잔치국수 맞으시죠?”라고 하고 그냥 주었다.


고속도로 휴게소 처럼 붐비는 곳에서는 번호표를 좀 더 자세히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사실 주문을 안 한 사람이 음식을 가져갈까 라는 우려보다는 같은 메뉴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고 먼저 주문한 사람에게 음식이 먼저 나가야 하는 순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충 확인하거나 확인도 안 하고 음식을 건네준다.


택배 기사님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가 가득 든 트럭 문을 열어둔 채 여러 동을 오가며 배달을 한다.
우리는 커피숍에서는 가방이나 노트북을 테이블에 놓고 커피를 주문하러 간다. 때로는 핸드폰 하나만 올려두어 자리 표시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핸드폰이 사라질까 걱정보다는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까 봐 더 걱정한다.


스티븐 M. R. 코비는 『신뢰의 속도(The Speed of Trust)』에서 신뢰가 경제적 성과와 조직의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신뢰가 높으면 불필요한 절차와 통제를 줄일 수 있고, 의사결정과 실행 속도도 빨라진다. 반대로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확인하고 증명해야 하며, 이로 인해 효율성과 속도가 떨어진다.
만약 주문 번호표가 없어서 이를 증명해야 한다면 어땠을까? 카드 주문 내역 찾아서 보여주거나 키오스크에서 이전 주문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추가 기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혹은 서비스센터 가서 이런저런 증명을 통해 겨우 음식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런 신뢰 문화를 형성했을까?

한국 사회에서 높은 신뢰가 형성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첫 번째로 체면 문화와 서로를 의식하는 사회적 규범은 책임감 있는 행동을 장려한다.

두 번째로 빨리빨리를 중시하는 효율 지향적 문화는 스티븐코비가 말하는 신뢰는 속도를 높인다는 빠른 실행을 가능하게 한다.

세 번째로는 집단 목표를 위해 살아온 집단주의 성공 경험은 협력과 책임감을 강화했다.


누군가는 CCTV가 많으면 범죄율이 낮아진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CCTV 수와 범죄율은 반드시 반비례하지 않는다. 신뢰는 단순한 감시 장치가 아니라 문화와 경험,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되어 온 사회적 자산이다.

사회적 신뢰는 불필요한 절차와 비용을 줄여 사회적·경제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있어서는 끊임없이 주의하고 불안해하며 상대를 의심하는 데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를 줄여준다. 말레이시아에서 근무할 당시 점심을 먹으러 갈 때면 차 내부 부품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라디오를 빼서 다른 곳에 두거나 핸들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치를 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한국 사회의 신뢰는 경제 활동과 업무의 속도를 높이고 사람들 간의 협력과 공동체적 유대감을 강화한다.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전제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와 안정감을 제공한다. 사회적 규범과 기대는 마치 울타리가 있을 때 아이들이 더 마음 편하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것과 같이 공통된 기준 안에서의 심리적 자유를 보장한다. 한국 사회의 신뢰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사회와 조직을 효율적이고 원활하게 움직이게 하는 핵심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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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Jane Jihye Kim)

글로벌 역량 강화/문화간 이해/외국인 대상 한국 사회,비즈니스 문화 이해(영어진행)

퍼실리테이터/DEI trainer /영어 통역사/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문화 토크 커뮤니티 운영자

janekim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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