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라면 모두 아는 초코파이의 광고의 CM송,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오리온 초코파이. 정."
이후에 초코파이 광고는 말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느냐, 표현해야 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변경된 광고 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광고가 더 유명하고 오래 남는다.
회사이든, 결혼생활이든, 아이든, 말하지 않아도 눈치 있는 상대를 우리는 '잘하고 있다'라고 평가한다
한국은 ‘눈치의 나라’이다.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 이해 강의를 하면서 빠지지 않고 질문하거나 외국인들이 학습을 통해 알고 있는 단어가 '눈치'이다.
눈치는 한국인의 삶에 중요하다.
무언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면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된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누군가 눈치를 주고, 눈치를 보게되고, 눈치를 챙기고, 눈치껏 하게 되고, 눈치 빠른 인간이 되어 간다.
일본의 공기를 읽다(空気を読む) 와도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존재한다. 일본의 '공기를 읽다'라는 것은 집단의 분위기·암묵적 규칙을 파악하는 것에 비해 한국의 눈치는 개인의 기분, 의도, 상황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것으로 좀 더 개인 맞춤화된 행동이다.
가족이나 동료 사이에서는 짧은 말 한마디, 혹은 말조차 없는 눈빛으로도 의도가 전해졌다. 언어적 맥락을 이해하는 관계는 효율성을 높였다. 통역사로 일할 당시, 무언가 설명을 하고 싶어 하지만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는 경우나,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을 하지 못해, 어려운 용어들로 가득한 대화를 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나의 특장점은 그 개떡 같은 말들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능력이었다.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없는 주어와 목적어를 잘 찾아 주었기에 통역사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 능력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일부인 눈치였다. 하지만 고객들은 통역사인 나에게 "통역 잘하시네요"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이런 눈치가 요구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점점 더 발휘하기 힘들다.
온라인 회의가 많아지고, 원격근무 화면 속에서는 눈치를 챙기기가 쉽지 않다. 메신저 대화창에는 표정도 뉘앙스도 남지 않는다. “말 안 해도 알지”라는 말은 이제 위험한 착각이 되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T. 홀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기준으로 문화를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와 저맥락 문화(low-context culture)로 구분했다. 고맥락 문화는 말보다 관계와 분위기, 비언어적 요소를 중시한다. 설명을 길게 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들을 것이라 기대하며, 묻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 한국은 고맥락 문화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회이다. 획일적인 교육, 강한 집단주의, 장기간의 관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저맥락 문화는 다르다. 정보와 의도를 말과 글로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설명이 부족하면 곧바로 오해로 이어진다고 여긴다. 미국이나 독일 같은 서구 사회가 대표적이고,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이 방식을 따른다.
오늘날 한국 조직은 더 이상 전통적인 고맥락 문화만으로는 운영될 수 없다. 세대는 달라졌고, 일하는 방식은 바뀌었다. 한 팀 안에서도 전혀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모두가 같은 교과서를 보고 자라던 시대는 끝났다. 각자가 가진 눈치와 맥락은 이제 서로 다르다. 따라서 암묵적 이해에 기대는 소통은 쉽게 왜곡되고 갈등을 낳는다.
특히 원격근무와 디지털 협업이 보편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분명해졌다. 과거에는 표정이나 뉘앙스를 통해 부족한 설명을 채울 수 있었다. 한국말의 특징인 주어와 목적어가 없어도 앞뒤 문맥을 통해 누가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대략 파악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화면과 글자만 남아 있기 때문에 의도를 풀어 설명하고, 배경을 공유하며, 논리와 기준을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서로 다른 해석으로 흩어진다.
“말 안 해도 알지”라는 말은 권력을 가진 자의 커뮤니케이션 역량 부족을 드러내는 표현일 뿐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안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 해석이 모두 다르다. 오늘의 조직과 사회는 ‘맥락적 공유’가 필수가 되었다. 설명하고 공유하며 묻고 답하는 것, 이 시대가 요구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며 살아남는 소통의 기본이 되었다.
김지혜 (Jane Jihye Kim)
글로벌 역량 강화/문화간 이해/외국인 대한 한국 사회,비즈니스 문화 이해(영어진행)
퍼실리테이터/DEI trainer /영어 통역사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문화 토크 커뮤니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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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G (Korea Consulting Group)
Cultural Consulting, Korean Business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