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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 ; 정보는 힘, 권력, 경쟁의 도구

조직에서 정보의 흐름을 막는 한국의 문화

by 김지혜

한국 지사에 주재원으로 온 핀란드인 이사의 한국 조직 문화 교육과 코칭을 담당하게 되었다. 핀란드 이사는 한국에서 몇 달간의 업무를 통해 느낀 몇가지 협업에 있어 어려운 점을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그중의 하나가 오래 근무한 직원 한 명이 정보를 나누지 않으며 협업을 제대로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핀란드인 이사는 회사에서 획득한 지식과 노하우 정보를 왜 개인의 소유물과 자산으로 여기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조직에서는 정보가 개인의 자산이자 경쟁력의 원천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흔하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문서화에 익숙하지 않다. 문서화되지 않는 정보는 결국 구성원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보를 가진 사람에게 의지한다. 이러한 정보 독점이 개인의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되어 결과적으로 중복된 업무와 비효율의 반복이 일어난다. 이는 협업이 아닌 경쟁 중심의 조직문화를 만들게 되고, 정보를 가진 개인은 그 영향력이 커진다.


멈추어 흐르지 않은 정보는 누군가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내가 해봤는데 안된다, 안 해봐서 잘 모르나 본데..”와 같은 대화로 이어진다. 결국 정보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가진 자의 판단에 저항하기 힘들고, 결국 새로운 시도나 실수, 실패를 통한 학습과 성장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미 사고과 문화로 고착화된 마인드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조직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정보를 미리 아는 사람들이 부동산 투자로 부를 축적한 경우를 수도 없이 보고 살아온 한국인에게 정보는 힘이다. 정보는 힘이고 돈이라는 개념은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목격한 우리의 믿음, 사고 체계에 가깝다.


핀란드인 이사가 생각하는 정보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조직에서 알게 되는 정보는 개인의 자산과 노하우가 아니라 ‘공유’ 하고 회사 내에서 필요시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달하지 못하거나, 전략적 이유 없이 차단될 때, 조직은 빠른 의사결정과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유럽의 많은 조직은 정보를 개인의 힘이 아니라 조직의 자산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문서화(documentation), 프로세스 매뉴얼화, 지식 관리 시스템(Knowledge Management System)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다. 유럽과 미국 기업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lessons learned(교훈)' 문서를 의무적으로 남기거나 회고 회의를 통해 충분히 과정에서 알게 된 새로운 인사이트를 공유한다. 이러한 정보의 공유는 연락해야 할 담당자를 쉽게 찾을 수 있고, 과거의 문제 사례를 통해 반복되는 실수나 실패를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문서화된 정보들은 지식이 퇴사자와 함께 사라지는 것을 방지한다.


한국의 기업에서도 이러한 정보 공유의 노력은 이루어지고 있다. 한 부서에서 고객 클레임에 대한 유용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ISO 인증을 통해 문서화의 체계를 갖추어 간다. 하지만 실제 정보의 활용과 정보의 적시 공유는 제대로 이루어지는지는 의문이다. 왜 정보의 체계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정보화 작업은 내 일에 더 많은 일을 가중 시키는 부담이 된다. 실제 체계적 정보에 접근하여 활용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이러한 정보화는 귀찮고 피하고 싶은 일이다.


부서 간의 경쟁이나 갈등은 ‘우리 부서만의 노하우’로 정보를 보유하는 것을 암암리에 묵인하게 한다. 구성원이 과거 프로젝트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개인의 경력 자산으로 보유하여 퇴사하고 개인 회사를 차려 그 노하우들을 활용하는 것에 우리는 윤리적 가치 보다, 영리한 사람으로 여기며 축하한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모든 정보를 공개할 필요는 없지만 누가 어떤 정보가 필요할 경우 그 정보는 정리되어 있어야 하고, 접근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보에 접근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 접근성에 대한 권한으로 인한 문화적 갈등도 있다. 한국에서 정보는 이렇게 높은 가치로 여겨지다 보니, 정보가 존재해도 접근 가능성에 제한을 두어, 공유하기 힘든 경우를 마주하게 된다. 여러가지 이유가 존재 하겠지만 원하는 정보가 있는데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당사자는 내 직급이 낮거나, 내가 외국인이라서, 내가 관련 부서가 아니라서 등의 이유라고 여긴다. 정보에서 소외 되는 것은 소속감을 저해하고, 정보 접근을 위한 승인의 절차를 거치는 불편함과 관련 이해관계자들에게 정보의 필요성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게 된다.

조직의 특정 그룹에서 다루는 개인정보, 대외비와 같은 정보가 아닌 필요한 정보의 접근성이 필요한 사람에게 열려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정보 공유는 기술이 아닌 문화이다.

정보의 공유를 위해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성공 사례/실패 사례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자동 공유하는 디지털 플랫폼을 도입하거나 업무 인수인계나 회고 문화를 정례화하여 정보가 사라지지 않게 구조화하는 것이다.

조직 내 정보 공유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장기적 관점에서 생존 전략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직의 목표가 ‘부서별 성과’가 아닌 ‘조직 전체의 집단 학습’을 위해 공유되어야 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정보는 개인의 경쟁력이 아니라 우리 조직의 경쟁력이라는 사고의 변화를 추구한다.


정보는 개인의 소유가 아닌 공유의 데이터라는 인식의 전환을 위해 심리적 안정감과 신뢰, 의도적 공유 문화가 필요하다.

조직 내 구성원의 사고의 전환을 위해서는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명확한 전제와 행동의 기준이 있어야 하고 이런 전제와 기준은 일상의 업무에 실천되고 있음을 경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리더는 ‘정보 보유자’가 아니라 ‘정보 순환자’ 역할을 하며 리더의 위치에서 확보한 다양한 정보들을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보의 가치가 직위에 따라 평가되지 않도록 질문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원의 입장에서 알게 된 고객의 작은 불만 사항이, '어쩌면 위에선 이미 수도 없이 들었을 알고 있는 사항이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는 가치 있는 정보 누락을 의도하지 않게 하게 된다. 구성원이 공유한 정보의 가치를 존중하는 리더의 태도는 구성원에게 긍정적 모델링이 될 수 있다. 또한 정보의 공유로 인해 이루어지는 가치 창출을 경험하고 정보 공유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정보의 기여자를 인정하는 문화도 필요하다. 정보와 노하우의 공유가 전체 가치를 얼마나 높였는지 인정(appreciation) 하는 이벤트도 중요하다.

정보의 소유자가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팀이 가진 각자의 정보들이 공유되어 더 나은 해답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이 목표이다.


김지혜 (Jane Jihye Kim)

글로벌 역량 강화/문화간 이해/외국인 대한 한국 사회,비즈니스 문화 이해(영어진행)

퍼실리테이터/DEI trainer /영어 통역사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문화 토크 커뮤니티 운영자

janekim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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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anekim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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