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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스피디아 Jan 16. 2023

계류유산을 극복하기 위한 3단계

나의 첫 계류유산 극복기

이 글은 작년 5월 시험관 끝에 제가 계류유산을 하고 쓴 글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길 바라며 올려봅니다.


지난 12월부터 나는 난임 판정을 받고 인공수정과 시험관에 뛰어들었다. 먼저 숙제를 했고 그다음 인공수정을 했고 그다음 시험관을 했고 그다음 또 시험관을 했다.     


장장 6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1차 피검 수치 1005, 2차 피검 수치 2400이라는 더블링까지 무사통과되었다. 당연히 감격스러웠고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입덧이 두려웠으나, 입덧도 전혀 하지 않았고 아무런 이벤트가 없었다. 지금 돌아서 생각하면 가끔 새벽 4시에 잘 때 배가 조금씩 아픈 정도? 그러나 으레 있는 일이려니 싶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6주 차 아기는 무사했고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의 엄청난 감격이란….     


의사 선생님은 아기가 잘 크고 있으며 2주 후에 방문하라는 이야기만 하셨다. 그리고 나는 바쁘게 2주를 보냈고 출근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들렀다.      


그런데 질 초음파를 통해 보이는 것은 내가 봐도 미동도 없던 까만 덩어리.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아지셨고 선생님은 조심스레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냥 눈물만 주르륵 났다. 간호사가 소파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정신없이 눈물만 흘렸다.     


도망치듯 병원에 나와서 남편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다. 회사에 알리자 즉각 출근하지 말라고 지시가 떨어졌고, 그 즉시 귀가했다.     


귀가 후 엄마가 바로 집으로 달려왔고 보자마자 안아주셨다. 남편도 퇴근하고 집에 왔고 상심한 나를 달래줬다.     


그날부터 일주일간 그야말로 고통의 나날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고, 여러 영상과 자극들이 들어올 땐 괜찮았지만, 새벽에는 내내 울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훨씬 나아졌다. 내 고통과 아픔의 극복은 3단계로 나누어져 있었고, 이걸 공유해보고자 한다.     


1단계, 아기에 대한 미안함.

임신했을 때 후회할 행동을 많이 했다. 그게 제일 마음 아팠던 것 같다. 새벽 4시에 자지 말 걸, 좀 더 집에서 쉴 걸, 성별 고민 왜 했나 싶고 미안했다.


내가 1단계에서 했던 행동은 <익명 커뮤니티에 글쓰기>였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내 심정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이미 같은 아픔을 겪었던 이들은 정말 따뜻하고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그들의 조언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둘째, <먼저 간 아기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담은 편지 쓰기>였다. 이때 정말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아기에게 잘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며, 네가 꼭 다음에 다시 찾아와 준다면 그땐 정말 너를 훨씬 더 귀하고 소중하게 대해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때 진짜 엄마가 될 준비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다.     


2단계, 주변 사람들을 실망하게 한 것에 대한 속상함.

아기에게 편지도 쓰고, 다음의 기다림을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조금 나아졌지만, 2단계의 고통이 남아 있었다. 바로 기대했던 주변 사람들이 엄청나게 실망한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의 속상함과 죄책감이었다.

내가 유산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유산해서 나도 정말 너무너무 속상한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실망하는 것을 보자 죄책감이 들었다. 2단계에서 내가 했던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우연히 읽게 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참 많은 힘이 되었다. 책 속의 민준은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아서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삶을 선택한다.

민준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모범생이었고, 부모는 그런 민준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는 듯한 말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하게 해서 속상해하는 민준에게 서점 주인 영주는 이런 말을 한다.     


“부모님하고의 관계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더라고요.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사는 삶보단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안타깝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한테 실망하는 건. 하지만 그렇다고 평생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잖아요. 저도 한동안 후회 많이 했어요.

그러지 말걸, 말 들을걸. 그런데 이런 후회도 어차피 돌이킬 수 없으니까 하는 거더라고요. 과거로 돌아가면 똑같이 행동했을 테니까요.”
- <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 중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나 역시 이런 대사를 보며 공감하고 위로가 되었다. 물론 나는 당연히 재임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가 임신하지 못했을 때 실망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그로 인해 부담을 느끼면서 준비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단계에서 또 했던 일은 <남편에게 절대적 지지를 부탁한 것>이었다. 한 팀이었던 남편이 아기보다도 나를 먼저 위해준다면 나는 어떠한 슬픔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남편은 다행히 내 요청에 긍정적으로 응했고, 그 결과 더욱 끈끈한 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남편과의 결속은 2단계에서 나를 일으켜주었다.     


3단계, 그동안 준비해 온 것의 결과가 없음에 대한 허무함.

2단계의 고통도 잘 극복하고 나는 충분히 씩씩해진 것처럼 보였다. 소파술을 받고 나서 엄마는 친정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권하셨고, 나는 친정에서 마음 편하게 티브이를 보며 종일 쉬었다. 그리고 새벽. 또다시 눈물이 펑펑 났다.

그때 내가 한 일은 <일기 쓰기>였다. 일기에 속상함과 억울함을 잔뜩 토로했다. 지난 6개월간 나는 '임신'이라는 목표를 위해 쉼 없이 달려왔으나, 결과는 '유산'이었다. 아무 결과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소파술은 큰 수술이기 때문에 출산한 것과 똑같이 관리해줘야 한단다.

내가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그만큼 아프게 된다는 게 정말 억울하고 허무했다. 이만큼 허무했던 적이 없던 것 같다. 일기를 쓰며 또 펑펑 울었고 그다음 했던 일은 <엄마를 붙잡고 펑펑 울었고 솔직한 내 심정을 토로>했다. 엄마는 세상일은 다 그런 것이라며 노력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위로해 주었다.      


이런 부조리(조리에 맞지 않는, 즉 원인과 결과가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한 삶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해 줬던 책이 <노인과 바다>이다. 84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했던 노인은 85일째 큰 청새치를 만나게 되고 각고의 노력을 다해, 정말 천신만고 끝에 그것을 잡게 된다.

그러나 간신히 손에 들어온 청새치는 이후 상어 떼의 습격으로 인해 흔적도 없이 뼈만 남게 된다. 그야말로 결과가 하나도 없는 상황.

나는 이 상황이 유산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각고의 노력을 다해, 천신만고 끝에 임신하게 되었지만 유산을 해버려서 결과가 하나도 없는 상황.     


이 허무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의 뼈를 가져온 노인의 도전은 흔히 '의미 있는 실패'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노인은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고, 또 성장했기 때문이다. 노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청새치의 뼈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나도 그런 것 아닐까? 이번 유산의 경험 속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고, 또 성장했을 것이다.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임신이라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첫 계류유산은 준비된 엄마가 아니었던 나를 준비된 엄마가 되기로 결심하게 해 주었고, 남편과 더 애틋하고 단단하게 해 주었으며,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날 아끼고 사랑해 주는지 깨닫게 해주는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부조리한 삶을 조금 겪고 단단해지는 의미 있는 경험을 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은 모든 엄마들도 그럴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몸에 최선인 선택을 해보려 한다. 우선은 건강해지고, 아이가 없는 내 삶도 충분히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잊지 않고, 가치 있다고 여길 것이다.


참고한 책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클레이하우스, 2022.01.17. 발행

어니스트 헤밍웨이, 번역 강정규, <노인과 바다>, 삼성출판사, 2012.01.10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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