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기록을 끊임없이 해 왔다. 그것도 굉장히 오래도록. 내 기록의 역사는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어져 온다. 그때는 작은 줄노트에 손으로 한 자 한 자 매일을 기록해 갔다. 이후에도 기록은 이어졌다.
무지노트로, 스케줄러로, 작은 메모장으로. 그러다가 컴퓨터로 기록하는 게 좋아졌다. 오래전 만들었던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로 일기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켜켜이 쌓인 내 기록은 어느새 700여 개를 넘어선다. 이후로는 노션으로도, 에버노트로, 구글 킵에도 다양한 플랫폼들을 넘나들며 나는 비공개로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기록을 남겼지만 정작 세상에 공개한 글은 몇 개 없다. 브런치에 합격만 하면 이렇게 켜켜이 쌓은 나만의 기록을 옮겨 넣어 <발행> 버튼을 눌러보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정작 브런치에 합격을 해도 시간이 없어서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퇴사만 하면 발행해야지.' 결심했다. 퇴사를 해도 <발행> 버튼을 누르기 쉽지 않았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바로 <매거진>의 문제였다. 나는 많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건 그저 내 기록들인지라 두서없었다. 그리고 <내 글의 질>에 대한 문제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쓴 글이 아니라 정리도 안 되고 산만했다.
매거진을 만들기에 앞서 ‘어떤 주제의 <매거진>을 만들어야 하지? 난임인 것? 퇴사일기? 리뷰? 아 머리 아파. 그냥 지금은 좋아하는 책이나 읽을래.’ 그러고 ‘책 읽는 것’으로 도피했다.
그러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 손화신 님의 글을 봤다. <“발행” 버튼 누르길 망설이는 당신에게>라는 글이었다. 그 글에서는 내 글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하라고 이야기한다.
너의 수치는 사실 그렇게 가치 있는 게 아니다.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데 못생긴 티셔츠를 입고 있어 부끄럽다고 당신의 외투를 벗어주지 않겠는가. 주목받는 게 부끄러워서 인공호흡을 하지 않겠는가.
소세키의 말처럼, 어떤 사람의 삶이든 그 화려함의 정도와 상관없이 다 나름의 가치와 소용이 있다고 여기기에 누구든 자신의 인생을 소재 삼아 거기서 길어 올린 생각과 감정을 글로 써서 ‘공개’할 수 있다.
많이 공감했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은 에세이를 통해 위로를 받았고 울림을 느꼈기 때문이다. 작가님들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그런 에세이집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아무 울림도 얻을 수 없었겠지.
그러니 내 글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고, 울림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이번에는 정말로 <발행> 버튼을 많이 눌러보자고 결심한다.
그래서 두서없지만 매일 한 편씩 이제는 정말 저장된 글들을 하나씩 꺼내어 다듬어서 브런치에 내어놓을 생각이다. <매거진>은 우선 글들이 쌓이게 되면 분류하는 형태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러기 전에 <매거진>부터 만드는 것이 망설임의 원인이 되므로.